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니스트리 Sep 17. 2024

정성의 선물

추석에 떠나는 추억 여행

우리는 아직 전통 방식으로 차례를 지냅니다. 전을 부치고 송편을 빚습니다. 어머니께선 식혜도 옛 방식 그대로 만드십니다. 올해 추석은 예년과 달리 너무 더워서, 쉽게 식재료가 상할까 걱정하십니다.


명절은 화합하고 화해하라고 조상님들께서 만드신 시간 같습니다. 평소 여러 가지 이유로 갈등의 시간을 겪다가도, 가족들은 명절이면 어김없이 모여 습관처럼 전통의 의식을 이어갑니다. 최근에도 사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갈등이 이어져 ‘올해 추석은 차례 안 지내는 것 아냐?’하는 생각을 했지만 기우였습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자 어김없이 ‘송편 빚게 일찍 와라’, 아버지의 문자 메시지가 도착합니다.


과정이 어떻든, 모여서 송편을 빚다 보면 이야기꽃이 핍니다. 주제는 주로 과거입니다. 이미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생전의 추억과 아버지의 어린 시절과 같은, 들어도 들어도 늘 흥미로운 레퍼토리가 시작됩니다. 생긴 것과 다르게(?) 제법 전통의 경험을 했던 저도 몇 마디씩 보탭니다. 손뼉 치고 웃으며 하는 추억의 기차 여행은 이렇듯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빚는 다양한 송편을 연료로 달려갑니다.


송편을 빚으며 오래전 기억이 떠오르는 건, 어떤 맥락에서는 송편과 추억이 하나의 키워드로 모이는 공감의 주제라서가 아닐까 합니다. 모여 윷놀이를 하거나 TV를 보면서는 그런 대화가 잘 오가지 않습니다. 차이는 바로 ‘정성’이 아닐까요. 기계 송편과 달리 우리가 직접 반죽을 치대고 뭉쳐 동글동글 굴리며 속을 넣어 만들고 쪄내는 수작업의 과정은 분명 비 효율적이고, 그 결과가 늘 일정하지 않고 조금 투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내가 만든 송편이 어떤 모습이 되어 찜통에서 나올지에 대한 기대와, 갓 나온 뜨거운 송편을 후후 불어 먹는 따끈한 송편의 맛과 같은 즐거움은 모두 기계는 주지 못할 우리들 정성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합니다.


올해는 일곱 살 조카도 첫 송편(처럼 안 생긴 쌀가루 떡)을 빚었습니다.




추석 당일에는 모두 일찍 일어나 전날 빚은 송편과 준비한 음식들을 차려내 차례를 지냅니다. 딱히 ‘누가 무슨 일을 한다’와 같이 정해진 역할은 없지만, 자연스럽게 일은 분담을 합니다. 저는 설거지를 하고 동생은 식기의 물기를 훔쳐내는 것으로 곁에서 돕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초등학교 선생님인 동생에게 물었습니다.


“요즘에는 아이들이 직접 교실 청소 안 하지?”


동생은 웃습니다.


“아이고, 요즘 청소 시키면 난리 나”


지금은 청소 용역을 고용해 교실이며 복도, 화장실을 청소한다고 합니다. 옆에서 듣던 어머니께서 탄식 섞인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참 학교에서 일 많이 했는데. 마룻바닥에 색 입히고 기름칠하고, 왜 너 어릴 때도 학교 커튼 다 빨아다 주고 했잖아 어머니들이”


어머니의 이야기로부터 그 시절의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어릴 때 교실 어디에서도 우리들, 우리 어머니들 손길이 닿지 않고 빛난 곳은 없었습니다. 마룻바닥, 창틀, 커튼이 그랬고 당번이 깨끗이 닦아두던 칠판이 그랬습니다. 화장실 바닥도 변기도 윤이 나게 반짝반짝 잘 닦고 나면, 선생님의 칭찬이 (아주 가끔 간식 선물이) 있곤 했습니다.


“그래서인가, 그 때나 졸업했을 때나 학교에 정이 많이 가더라고. 내가 가꾸고 잘 배우다가 후배들에게 물려줘서 그런가? “


집이 좁기도 하고, 돈이 아까워서이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내 집 청소를 남에게 맡기는 것이 참 어색한 것은 분명 그때부터 ‘내 손을 탄 애착 공간’ 개념이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내가 직접, 내 손으로 돌보고 가꾸는 공간의 의미. 그랬던 것은 교육의 일환이었을까요 아니면 부족한 재정에 어쩔 수 없는 자생이었을까요? 교실을 돌보는 일은 우리에겐 너무도 당연한 일로 여겨져서 당시에 그 이유를 궁금해하지는 않았었습니다.


사람도, 공간도, 송편도, 우리가 정성을 들여온 마음으로 가꾸고 돌본 존재들은 쉬이 잊히지 않고 추억에 자리하며 여전히 따스히 기억되는 듯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온도차의 결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