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살롱 '크리에이터 클럽' 첫 느낌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에게는 목적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이 있다. 최선을 다해 페달을 밟으며 가장 빠르게, 누구보다도 먼저 목적지에 도달하고 싶은 목적의 '레이싱'의 모습, 그리고 유유자적 페달에 발을 얹고 더 멀리 앞을 보며 주변 풍경도 감상하는 '여행'의 모습이 그것이다. 물론 더 많은 형태의 라이딩이 있겠으나, 확실한 것은 두 모습 모두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서 감각의 일부는 '신경을 꺼'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달리는 그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둘 때 주위의 풍경은 사라진다. 반대로 주위를 편안히 둘러보며 달릴 때, 오로지 빠르게 달리기 위한 그 행위 자체에 집중하기는 상대적으로 어렵다. 이 말을 조금 다르게 하면, 우리 주위엔 본연의 목적 추구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참 많다.
자연스럽게 만나는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모임의 목적은 다양할 수 있다 하더라도, 분명 그 만남으로부터 추구하고자 하는 관계의 본질은 선후가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 상대의 어느 모습에 시선을 고정시키느냐에 따라, 의도치 않게 그 관계의 지향점이 달라질 수 있다. 이해관계가 얽힌 업무적 만남이 아닌, 구성원의 자발적인 참여가 기본인 모임의 경우는 더 그렇다. 상대에게 궁금한 첫 번째가 직업, 나이, 사는 곳, 출신 학교, 고향 등 본질과 상관없는 다른 흥미로운 주제들을 접하고 나면 어느새 나의 시선은 그곳에 쉽게 머물게 된다. 그 사람의 이름, 취미, 관심사와 같은 정성적 요소들보다 단답으로 떨어지는 그러한 잣대가 우리에게 더 쉽고 익숙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것으로 인해 자리 잡는 본질 추구의 방해 요소에 있다. 우리는 그것을 선입견(先入見), 즉 나의 시선이 본질을 향하기 전 먼저 자리 잡는 '이해의 틀'이라 부른다.
그렇기에, 이번에 참여하기로 한 소셜 클럽의 첫 규칙이 꽤나 인상적이다. 이미 이전부터 익숙한 스타트업 '열정에 기름붓기' 팀이 운영하는 소셜 살롱 '크리에이터 클럽(크클)'의 첫 규칙은 '서로의 나이와 직업에 대해 묻지 않기'. 우리는 흔히 사회에서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눠야 한다면 자연스럽게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묻는다. 조금 이야기가 오고 가면 또한 "어디 사세요?"나, "혹시 나이가...?"라고 묻기도 한다. 이런 류의 질문들이 관계의 본질이고, 목적이고, 친밀함 정도의 7부 능선인 모임도 있겠지만, 대체로 그 추구하는 목적이 다양한 여러 모임에선 타인이 불편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모임 본연의 목적과 서로의 다양성이 이 한 가지 규칙으로 존중되는 이 규칙은 참 인상 깊었다. 오랜 관계에선 어차피, 서서히 알아갈 수 있는 부분들이기도 하고.
크클은 강남과 망원에 센터가 있고, 매 시즌은 3개월간 여섯 번의 정규 모임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그 여섯 번의 모임 외에도 얼마든지 다른 기회로 해당 클럽을 이용할 수 있다. 나는 매주 금요일의 모임을 신청했다. 내가 속한 팀 이름은 '쓰다 보면'. 이름 그대로,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그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모임이며, 주제는 다름 아닌 '글'이다. 이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글을 잘 쓰거나, 글에 관심이 많거나, 혹은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들일 것이다. 혹은 어린 시절 백일장(90년 이전 출생자들이 기억하는 글짓기 대회명)이나 방학 일기 숙제처럼 의무적 글 몰아 쓰기 트라우마에 흥미도 재능도 전혀 없던 사람들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여기 모인 모두 이 분야 성장의 목마름 혹은 성취의 즐거움을 위해 함께하길 택했다는 것이다.
첫 모임의 주제는 서로 알아가기. 그리고 다양한 열정의 모습으로 모인 이들도 첫 모임의 어색함은 피할 수 없으므로, 진행을 돕는 메이트(리더)가 우리들 마음의 소리를 이끌어낸다. 말하기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더라도 꽤 공평하게 발언의 기회가 주어지며, 그만큼 더 풍성하게 경청의 기회도 주어진다. 그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으며 찬찬히 살펴보니 말투나 목소리, 생김 외에 서로 다른 세계가 있다. 스타강사의 강의를 들어도 잘 외워지지 않던 어느 이론보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각자의 관심사가 기억나니 신기하다. 첫 시간을 마치고 다음 만남이 기다려졌다. 이 모임도 역시 마침표보다는 쉼(,)이 어울린다.
이어질 이야기가 궁금한.
여러 가지 질문으로 어느 정도 서로에 대해 조금 알아갈 즈음 시작한 '쓰다 보면' 첫 번째 공동의 과제는 '첫인상 이어 쓰기'였다. 각 종이 상단에는 이름을 적고, 그 사람을 떠올리며 해당 종이에 돌아가며 글을 적되 그 글이 마지막 사람까지 이어져 어색하지 않게 맺는 미션이다. 우리가 흔히 누군가를 위해 적는 롤링페이퍼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다만 이 미션은, 각자의 하고 싶은 이야기로 끝맺지 않고 우리 모두가 완성하는 특정인의 이야라는 점이 특별하다. 바르게도, 비뚤게도, 진지하게도, 웃기게도 쓸 수 있다. 상대의 연상되는 모습에 따라 내용은 자신이 정하되, 이어짐엔 끊김이 없어야 하므로 좀 더 고민해 적고 쉼표를 찍게 되는, 함께 밖에 할 수 없는 좋은 글쓰기 연습법이기도 하다.
연결과 조화의 산물이 '글'이라면, 이번 활동은 글이 사람을, 사람이 글을 조화롭게 연결하여 탄생한 '나에 대한 모두의 이야기'가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