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신의 프로토콜 1.3
Kilo로 돌아가는 버스 안.
흥분이 가시지 않은 아이들은 태블릿에 열중하며 여운을 이어가고 있다.
뒤엉킨 의문의 실타래를 정리하려던 Ian의 복잡한 머릿속에, 또 하나의 질문이 피어올랐다.
'왜 모두들 대화가 허용된 공간에서조차 무선 이어폰을 끼고 있을까?'
어제 단체 식당에서 용기를 내어 말을 건 동기 역시, 그녀가 무선 이어폰을 끼고 있지 않았던 까닭에서 비롯했다.
자동차의 엔진과 차체에서 만들어지는 소리,
운동 기구의 마찰음,
식판 내려놓는 소리,
숟가락과 식판이 부딪히는 소리,
아이들과 파트너 로봇들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소음.
Ian에게는 그런 일상의 소리들이 오히려 익숙하고 따뜻했다.
의문은 꼬리를 물었다.
'아침 7시부터 저녁 10시, 정해진 일과를 빼고도 평균 7시간은 자유로운데, 왜 걷는 동안에도, 식사하는 중에도 태블릿에서 눈을 떼지 않는 걸까?'
Ian은 여간해서 태블릿을 사용하지 않는다.
차가 흔들릴 때 저마다 다르게 반응하는 아이들의 몸짓,
러닝 머신 위에서 땀 흘리며 달리는 아이,
아이가 흘린 음식이 식판을 벗어나 식탁 위로 떨어지는 장면,
복도 양쪽 벽에 그려진 자연의 풍경들,
시야에 들어온 사물이나 현상은 언제나 Ian을 사유하게 했다.
버스 안에서의 작은 사유가 끝나고 Ian과 Oli가 byte로 돌아왔다.
"오늘도 결국 빈손으로 왔네. 포인트는 언제 쓸 작정이야? 지금 보유한 포인트가 거의 Encourager급이야."
"살 만한 게 없었어. 대신 머리만 가득 채우고 왔지."
"하하, 참 너 다운 답이다."
Ian이 Oli 앞으로 다가가 양팔을 잡고 눈을 맞추며, 숨을 고르듯 천천히 깜빡인다.
"드디어 오늘부터 제한 없이 질문할 수 있는 거지?"
"맞아."
"그럼 새 영상 업로드 되는 시간 전까지 작은 질문 몇 개 해볼 게."
"업로드? 혹시 991 댓글 기대하고 있는 거야?"
"응. 혹시 모르잖아. 현실 세계에서 내가 처음 소통한 사람이니까. 낮은 확률이지만 기대는 해 보는 거지."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Ian이 검지 손가락을 세워 Oli에게 보이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한다.
"자! 이제 첫 번째 질문을 할게."
"그래. 준비됐어."
Ian이 턱을 괴고, 실눈에 힘을 주며 묻는다.
"왜 다들 대화가 허용된 공간에서도 무선 이어폰을 끼고 있는 걸까?"
"혹시 다음 질문이 '왜 태블릿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걸까' 아니야?"
Ian의 눈이 동그래지며 한 걸음 물러섰다.
"어! 어떻게 알았어?"
"옛날에 처음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다양한 콘텐츠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짙어진 개인화 경향이야. 실생활에서 말과 글이 점점 없어지기 시작했고, Giga 시스템은 그 경향을 욕망으로 인식했지. 그래서 제어가 아닌 권장과 포인트 보상 방식을 택했고, GIGA의 아이들이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결과야."
"그럼, 다른 아이들의 byte 생활은 어때?"
"우리만 특별하다고만 답할 게."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는 없어?"
"아이들, 로봇 모두 GIGA 시스템이 정한 원칙에 따라 행동하게 되어 있어. 파트너 로봇은 프로토콜을 따르고, 아이들은 욕망을 좇아 사는데, 지금까지는 모두 원칙 안에서 행동하는 걸로 알려졌어."
잠시 골똘하던 Ian이 질문을 이어간다.
"옷은? 옷은 왜 다 똑같아?"
"남녀의 신체 특징을 모두 없애서 평준화하려는 의도야.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줄까? 장애인 본 적 없지?"
"응."
"장애를 가진 아이들만 사는 별도의 Kilo가 존재해. 장애 종류에 따라 구분하기도 했고. 그 안에서도 역시 평준의 프로토콜이 실행되고 있어. 어떤 Kilo는 모두가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기까지 해."
"명품 옷이나, 옷에 달린 배지 같은 게 평준을 깨고 계급을 만드는 거 아니야? 사람들이 Encourger를 우러러 본다면서? 그거 뭐였더라...... 아! 우상화."
"ER 이전 시대에는 더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물려받은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의 불평등이 뚜렷했어. 그런데 GIGA에서는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출발하지. 그게 바로 시스템이 추구하는 평준이야."
다음 질문을 이어가려던 찰나 모니터가 자동으로 켜지고, Ian의 HDD 채널에 올라온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된다.
Cell 내부 곳곳의 카메라들이 포착한 장면들.
Steve Barakatt의 'Dreamers'가 배경음악으로 흐르고,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Ian과 그의 그림은 여러 편집 기법에 의해 영상미가 더해졌다.
평가의 기준이었던 질문과 대답은 인터뷰 형식의 작품 소개로 바뀌었고, Ian이 'Giga의 모든 사람들이 깨끗한 환경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담았어요'라고 답하는 장면은 여러 색의 큰 자막으로 강조되기까지 한다.
영상을 보는 Ian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진다.
"P2요일에 그렸던 그림하고 P4요일에 그린 그림을 편집했어. 어! 가운데 그렸던 숟가락도 사라졌네?"
"그러게. 복장이 똑같으니 구분할 수도 없겠어."
"와! 내 존재를 무시했네. 왠지 선동하는 사람이 된 기분이기도 하고."
"하하하! 그게 HDD의 본질이겠지."
화면 위에 '업로드 완료' 문구가 뜨고, 곧이어 조회수와 '좋아요' 수가 빠르게 늘어난다.
댓글도 줄줄이 달리기 시작한다.
"저게 뭐가 좋다는 거지?"
"하하하! 그것도 HDD의 본질이야."
그 순간 이색적인 댓글 하나가 올라오고,
그것을 본 Ian의 얼굴이 급히 굳어진다.
글자 없는 이모티콘 하나,
숟가락.
Ian이 Oli를 보며 외치듯 묻는다.
"991...... 맞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과 온라인에서 첫 교감이 이뤄졌다.
감정이 섞이지 않은 글, 이모티콘 교환이 아니었다.
둘 사이 벌어진 사건을 매개로 한 진짜 소통이었다.
더 놀라운 건 그가 자신의 채널을 찾아왔다는 사실이다.
Encourger를 제외한 모든 아이들의 닉네임은 랜덤으로 주어진 긴 코드 형식이라 구별이 어렵다.
희박한 확률, 엄청난 우연이다.
하지만 Oli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띤 채 전혀 놀라지 않은 눈치다.
"Oli! 어떻게 할까? 답글 어떻게 남기지?"
"너도 조심스럽지?"
"그렇지. 아무래도."
Oli는 옅은 웃음기로 팔짱을 낀 채 Ian의 표정, 의식의 흐름을 즐기고 있다.
"그 친구 채널에 남길까?"
"글쎄, 그건 좀 불안한데. 너 근래에 다른 채널 영상 본 적 없잖아."
"그 정도로 조심해야 해?"
"그럼, 조심해야지. 며칠 전에 시스템과 양자 컴퓨터 알고리즘에 대해 물었잖아?"
"응, 그랬지."
"시스템은 양자 컴퓨터에 연결돼 알고리즘에 의해 운영되고 있어. 그 기능은 너의 상상 이상이야. 연관된 모든 일들 분석해서 관계를 추궁할 수도 있단 뜻이라고."
"그럼 어떻게 하지?"
잠시 고민하던 Ian이 말끝을 흐리며 조심스레 답을 내놓는다.
"모든 댓글에 손바닥 이모티콘을 남길까?"
기다리던 현명한 답이 나왔다는 듯 Oli가 손가락으로 Ian을 가리킨다.
"훌륭해! 의심을 피해 가는 동시에 991에게 네 호응을 확실히 전달할 수 있을 거야."
"정말 그럴까?"
"응, 991이라면"
Oli의 대답에 Ian의 표정이 애매해진다.
"그게 무슨 의미야?"
"너에게 전해야 할 이야기가 우선이라고 한 말 기억하지? 그 이야기 흐름에 깊이 연관된 질문은 답해줄 수 없어."
"내게 전해야 한다는 얘기, 거기에 991도 조금은 관련된 거야?"
Oli가 무거운 침묵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
"하하하. 그래 알았어. 나 샤워 좀 하고 나올게."
Ian이 샤워하러 들어간다.
물방울 하나까지 여실히 보이는 투명한 유리벽 너머로, 여성형 로봇 Oli가 남자아이 Ian이 씻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그 시각, 991도 샤워하러 들어간다.
같은 구조의 욕실에서 991이 샤워하는 모습을 남성형 파트너 로봇이 지켜보고 있다.
차이 없는 평준의 현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Ian과 Oli가 마주 앉았다.
"샤워하면서 생각해 봤는데, 네 얘기를 먼저 듣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래, 오늘 너는 991이라는 인간관계의 첫 조각을 찾은 거야. 만약 시스템 전체를 이해했다면 여러 조각을 한 번에 얻을 수도 있었겠지. 내가 전해야 할 이야기도 마찬가지야. 조각의 질문에서 하나의 답을 얻는 식으로 퍼즐을 맞춰나가기보다, 전체를 먼저 이해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거지."
"알았어. 준비됐어."
Oli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곧 펼쳐질 이야기의 무게를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