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신의 프로토콜 2.1
Oli는 AD 2025년의 시대 배경 묘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형 언어 모델 등장 이후 AI 사용은 더욱 활발해지고, 영역은 급격히 확장되던 시기.
드론을 포함한 각종 무기 체계에 새 기술이 적용되며, 전장에서도 AI의 판단에 의해 사망자 숫자가 예측되고, 실제로 많은 사망자가 속출했다.
휴머노이드에 AI를 탑재한 로봇이 인간을 대신해 싸우는 상상의 전투장면도 조만간 현실이 될 분위기였다.
전술형 AI 최고 전문가였던 Dr. Daris는 그 분야를 넘어 AI 기술 전반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그의 아내 Claire는 평화주의자이자 환경주의자로 무기를 연구하는 남편이 늘 불만이었다.
"그만 좀 봐. 날아가고 터지는 게 뭐 그리 좋다고 맨날 그런 것 만 봐. 지겨워 죽겠어, 그놈의 무기."
"아이고, 또 그 얘기네. 여러 번 말했잖아. 좋은 무기를 지니는 그 자체만으로도 평화를 유지하는 작용을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무기 팔아서 돈 버는 사람들이 전쟁 부추기고, 작은 전쟁 키운 게 어디 한 두 번이야? 이 나라 전쟁 역사 반 이상은 그랬어. 다른 나라 하고, 또 이 나라 안에서 경쟁하면서 더 위협적인 무기만 만들어 대고. 그거 모순 아니야?"
"그런 당신은? 전쟁 끔찍이 싫어하신단 분이 한창 미사일 오고 가는 팔레스타인으로 가겠다는 거. 그건 모순 아닌가? 하하하"
"참나. 편집국장은 계속 몰아붙이지, 젊은 기자들은 안 간다고 버티지. 별 수 있어? 늙은 나라도 가야지."
"당신이나 나나 둘 다 같은 입장이야. 다른 지역 다 두고 왜 하필 팔레스타인이야? 그래도 난 반대는 안 했다고. 예전에 당신이 성지순례하고 싶다고 한 말 떠올라서가 아니라 당신 선택을 존중했으니까. 그러니 제발, 내 선택도 존중해 줘."
아이언 돔을 뚫고 도심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미사일.
무고한 팔레스타인 희생자를 낳게 한 미사일.
끊이지 않는 긴장 속에 6개월이 흘렀다.
그 기간 내내 Daris는 아내를 걱정했다.
사람의 손길이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경관을 사랑했던 Claire.
정반대의 환경, 인공적 파괴가 난무하는 현장에 갇힌 그녀의 처지가 Daris를 괴롭게 했다.
휴전 협상이 점쳐지는 짧은 고요를 틈타, Daris는 딸 Lyra를 데리고 팔레스타인에 도착했다.
열네 살 Lyra에게는 첫 해외 여행이자 힘겨운 여정이었다
가족과의 재회가 큰 위안이 되긴 했지만, 잠시라도 Lyra에게 전쟁의 상흔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Claire는 그들과 함께 성지순례를 하기로 계획했다.
"전쟁 지역 피해서 온다는 게, 옛날에 수많은 사람들 목숨 바쳐 싸웠던 지역으로 와버렸네. 하하하"
그 비웃음에 자조 섞인 웃음을 참지 못하던 Claire.
주변 경관을 사진에 담고 이제 막 돌아온 Lyra가 묻는다.
"왜들 웃고 계세요?"
"여기가 베들레헴이라는 지역이야. 과거에 여기서 크고 작은 전투가 꽤 벌어졌거든. 많은 사람이 죽었지. 아빠가 전쟁 싫어하는 엄마 또 약 올리는 거야."
더운 날씨에 지쳐있던 Lyra의 얼굴에 화색이 돌자 Claire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Lyra! 여기 한 번 서볼래?"
"여기?"
"아니 잠시만. 음......"
주위를 둘러보다 뭔가 꺼림칙한 듯 인상을 찌푸리는 Claire.
"الدمار من أنفسنا (Al-damaar min anfusina)"
"엄마! 그게 무슨 뜻이야?"
"아랍어로 파괴는 우리 안에서 일어난다는 뜻이야. 인간이 전쟁 벌이고, 인간이 자연 파괴한 흔적이 곳곳에 있잖아? 온전한 자연 안에 있는 널 찍고 싶은데 말이야."
"Al-damaar min anfusina, Al-damaar min anfusina."
"어머! 우리 딸 잘하네?"
돌아가기 전날 밤, 잠든 Lyra를 침대에 눕히고 거실로 나온 Daris가 Claire에게 다가간다.
"별탈 없이 지내는 모습 내 눈으로 직접 봐서 안심이긴 한데, 빨리 돌아와서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
"안 그래도 저번 주에 편집장이 전화해서 곧 북귀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어. 나도 빨리 돌아가서 당신하고 Lyra랑 같이 지내고 싶고."
15년간 큰 다툼 없이 살아온 부부의 애틋한 대화는 늦은 밤까지 어어졌다.
팔레스타인의 뜨거운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 Daris와 Lyra는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Claire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엄마, 몸 조심히 있다 와!"
"그래, Lyra. 엄마 금방 갈게. 아빠 말씀 잘 듣고 있어."
"도착해서 연락할게, Clarie."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Lyra는 엄마에게 배운 Al-damaar min anfusina를 되뇌었다.
비행기 안에서도 여전했다.
"그게 무슨 뜻이야?"
"'파괴는 우리 안에서 일어난다' 엄마가 가르쳐줬어."
아버지와 딸이 한 목소리로 Al-damaar min anfusina를 반복한다.
집에 도착해 씻고 나온 Daris는 침대를 내려보며 아내의 빈자리에 한숨 쉰다.
잘 도착했다고 알리기 위해 수차례 화상통화를 시도하지만, Claire는 응답하지 않는다.
연결되지 않는 화면을 바라보며, Daris의 불안은 서서히 몸 안에서 쌓여만 간다.
답답한 마음에 거실로 나가니 TV를 보고 있던 Lyra가 심각한 얼굴로 묻는다.
"아빠! 저기 우리가 갔던 곳 아니야?"
Daris가 볼륨을 높인다.
"오늘 오후 이스라엘군이 하마스 소속 고위급 요인 암살을 위해 투입한 자율 타격 드론의 공격으로 5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 당국은 사망한 이들 모두 하마스 소속이라 주장했지만, 현지 의료진은 5명 중 3명은 민간인이고, 그중 한 명은 미국인 여기자라 밝혔습니다."
충격스런 소식에 당황한 Daris는 떨리는 손으로 편집장에게 전화했다.
"편집장님! 혹시 제 집사람과 연락되세요?"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편집장.
"오...... Daris......"
"말씀해 보세요. 저희 집사람 지금 괜찮은 거예요?"
"저도 아직 모르겠어요. 정확히 확인된 건 아닌데, 미국에서 파견된 여기자는 Claire가 유일하다고 해요."
새어 나오는 음성을 들었는지 Lyra가 울음을 터뜨린다.
위로할 겨를 없이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은 Daris.
전화기 쥔 손을 이마에 대고 눈을 감아 기도한다.
"제발. 무사히 보내주세요. 제발......"
잠시 후 이스라엘군이 사용한 드론에 자신이 개발한 인공지능 타깃 시스템이 탑재되었다는 사실이 머리를 스친다.
마음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후회와 죄책감이 그의 온몸을 짓누른다.
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온다.
그리고 이제 막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한 한 문장은 그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Al-damaar min anfusina'
Oli는 그 문장을 두 번 되풀이했다.
단 한마디 없이 듣고만 있던 Ian이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혹시 이야기 속 Daris박사가 '창조의 세 영웅' Daris님과 동일 인물이야?"
"맞아. 딱 거기까지만 답해줄 수 있어."
"어! 하나만 더 물어보면 안 돼?"
Oli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안돼. 다음 질문"
"엄마, 아빠는 전에 네가 설명해줘서 알겠는데, 딸은 뭐야?"
Ian과 Giga의 아이들은 남녀의 차이를 모른다.
그래서 아들, 딸 구분 없이, 그저 자식의 개념으로만 이해한다.
사랑의 의미도 Oli, Ian의 관계를 통해 정의했다.
"사람은 남자, 여자로 구분해. 그건 다음에 기회되면 설명해줄게."
"그래, 좋아. 그럼 무기를 팔려는 사람들이 전쟁 부추기거나 키운 사례가 정말 있어?"
"그런 주장이 있었지. 어느 정도 근거 있는 주장이기도 해. 과거 총기협회는 총기 규제 법안 통과를 저지하려고 정치권 로비에 막대한 자금을 지출했거든. 그 내용을 확대하면 어느 정도 개연성을 가지지 않을까?"
"도무지 이해가 안 돼."
"맞아. 지금 이 Giga 세계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잖아? 과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 기계, 사람 둘 다 세상의 균형을 잡는데 실패했지. 그나저나 10시까지 이제 2시간 남았는데 미리 간식이라도 사다 줄까? 너 점심 이후로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그렇긴 해. 절전 모드에서는 움직일 수 없으니까 미리 사다 주면 좋겠어."
"뭐 먹고 싶어?"
"음...... 에너지 음료하고, 김치볶음밥"
"하하하! 너 오늘 늦게까지 안 자려고 작정했구나? 알았어. 금방 다녀올게."
The Buggles의 'Video killed radio star' 클래식 버전 연주곡이 흐르는 복도를 따라 Oli가 식판을 들고 byte로 돌아온다.
화면을 마주 보는 영상 위주의 세상에서 그 둘은 다시 눈을 맞추고 목소리로 대화를 나눈다.
"김치볶음밥 질리지도 않아?"
"전혀. 덕분에 너무 잘 먹었어. 고마워, Oli"
"천만해. 준비됐으면 계속 이어나갈까?"
"응"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난민촌 제닌(Jenin).
상공을 맴돌던 드론 카메라에 흰 케피예(Keffiyeh)를 머리에 두르고, 흰 폴로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남성이 포착된다.
건물을 나와 골목을 걷던 남성이 노상 카페 앞을 지나는 장면이 확대되며 그 옆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의 형체도 명확해진다.
현지인과 인터뷰 중이던 여기자, 그 두 사람의 얼굴이 점점 뚜렷해지더니 갑자기 화면이 꺼진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 숙여 우는 Daris.
왜 Claire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왜 하마스 고위 간부가 그곳을 걷고 있었는지도 이유가 되지 않았다.
Claire의 죽음도, 본인의 슬픔도 원인은 모두 본인 안에서 비롯됐다는 자책뿐이었다.
일주일 후 심하게 훼손된 상태로 송환된 Claire의 시신과 유품으로 돌아온 스마트폰 마지막 영상은 그를 더욱 깊은 고통으로 밀어 넣었다.
"الدمار من أنفسنا (Al-damaar min anfusina)"
"엄마! 그게 무슨 뜻이야?"
"파괴는 우리 안에서 일어난다는 뜻의 아랍어야. 인간이 전쟁을 벌이고, 인간이 자연을 파괴한 흔적이 곳곳에 있잖아? 온전한 자연 안에 있는 너를 찍고 싶은데 말이야."
"Al-damaar min anfusina, Al-damaar min anfusina."
"어머! 우리 딸 잘하네?"
죽고 싶은 심정이 살고 싶은 의지를 꺾으려 할 때마다 Lyra를 찾아 위로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아빠!"
"그래. Lyra"
"아빠! 엄마 보고 싶어."
"Lyra! 아빠 봐봐."
희미해진 Lyra의 시야를 눈물을 닦아 맑게 해 주는 Daris.
"엄마는 그 누구보다 자연을 사랑했잖아? 신께서 엄마를 자연으로 살게 해 주실 거라 믿어. 어느 날은 바람으로 나타나서 널 시원하게 해 주고, 어느 날은 햇빛으로 변해서 널 감싸주겠지. 그리고 네가 지쳐 있을 때는 나무가 돼서 기댈 수 있게 해 줄 거야. 엄마는 그렇게 항상 네 곁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 슬퍼하지 마, 우리 딸."
Claire의 장례식에 모인 추모객들의 표정에는 엄숙함과 애통함이 교차하고 있었다.
Lyra는 흐느낌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나 두 남자의 분위기는 달랐다.
Daris는 슬픔이라기보다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고, Daris를 찾고 있던 남자는 그를 발견하고 나서야 옅은 웃음기를 지우고 다가갔다.
"유감이야. Daris!"
"와줘서 고마워."
"회사 그만뒀다는 소문이 있던데, 어떻게 지낼 계획이야?"
"내 손으로 Claire를 죽인 기분이야."
"그 마음 이해해. 하지만 자네 기술이 아니라 타깃 범위를 넓게 설정한 그놈들 잘못이잖아?"
"애초에 기술이 없었다면 그런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겠지. 더 이상 전쟁이나 무기 관련한 연구는 하고 싶지 않아"
"자네야 어디를 가던 최고니까. 빨리 털고 일어나기만을 바랄 뿐이야."
남자가 떠난 이후에도, 심지어 같은 고통을 겪은 Lyra와 집으로 가는 차안에서도, Daris는 침묵을 깨지 않았다.
스스로를 혼자만의 세상에 가둬 책망하는 한편, 딛고 일어서야 할 이유를 애타게 찾으려는 듯했다.
그렇게 2주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집안에만 틀어박혀 엄마의 그을린 스마트폰을 쥔 채 얼어버린 아빠가 걱정됐는지, Lyra가 밝은 목소리로 다가가 그를 감싸며 말한다.
"아빠가 엄마를 예쁘게 해줘. 우리 아빠는 컴퓨터로 뭐든지 할 수 있잖아."
애리조나주 앤털로프 협곡이 폭우로 깎여나가고,
영국 서식스주의 세븐 시스터즈 하얀 백악 절벽이 서서히 붕괴되고,
호주 빅토리아주의 런던 아치 하나가 무너진 현장들을 사진에 담으며 Claire는 Daris에게 늘 말했다.
"여보! 이게 바로 내가 사랑하는 파괴야. 자연스러운 파괴. 지구의 여정을 보여주는 증거란 말이야. 자연이 가장 자연스러운 거잖아?"
딸의 위로가 그를 일으키고,
Claire와 함께 한 추억이 그에게 활력을 불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