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업그레이드 (Upgrade)

[SF소설] 신의 프로토콜 2.2

by Sir Lem

2.2 업그레이드


9시 56분이 조금 지났을 무렵, 오보에 선율이 스피커에서 흘러내린다.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의 'Gabriel's Oboe'라는 곡이다.

누구에게는 취침 시간 준수도 미션이라는 의미로 박히거나,

다른 누구에게는 같은 멜로디 Nella Fantasia의 가사처럼 정직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공정한 Giga 세계라는 느낌으로 흡수될지 모른다.

곡은 정확히 10시에 끝나고, 파트너 로봇과 아이들의 하루도 마무리된다.

긴 세월 그렇게 살아온 아이들에게 거부감이나 저항의 여지는 없다.

습관은 아이들을 시계로 만들었다.

Oli와 Ian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완벽한 방음이 보장된 공간이지만, 그들의 대화에는 조심스러움이 배어 있다.


"그래서 Daris님이 자연을 위한 AI 시스템을 연구하시게 된 거구나?"

"맞아. 기후 예측, 재해 대응, 에너지 효율, 탄소 배출 감축, 생태계 보전, 생물 다양성 감시, 농업 최적화, 친환경 도시 계획. 숫자와 데이터로 자연을 감시하고, 인간의 욕망을 견제하려는 시도였지. 정말 많은 성과를 내셨어. 자연을 지키려고 하셨고, 자연 친화적 환경을 만들려고 하셨지."

"그런데 왜 환경이 파괴된 거야?"

"인간의 역사는 그랬어. 지키려는 사람이 있었고, 얻으려는 사람이 있었지. 어느 한쪽의 힘이 더 강할 때 균형은 깨지기 마련이니까. 전쟁을 생각해 봐. '왜'는 희미해지고, 재편된 결과가 역사를 새로운 방향으로 흐르게 했잖아."

"그럼 누가 파괴한 거야?"

"기술, 산업이라는 명분으로 파괴는 꾸준히 이어졌어."

"도무지 이해가 안 돼. Oli가 청소하고 정돈도 하고, 나도 그런 Oli가 고마워서 좀 더 신경 쓰니까 우리 byte는 항상 깨끗하잖아? 더러운 공간에서 살 이유가 있나?"

"좋은 비유야. Giga의 아이들은 쉼 없이 어지럽히지. 파트너 로봇은 묵묵히 복구하고. 어느 날 전력이 바닥나서 로봇들 전원이 모두 꺼진다면 어떻게 될까?"

"더러워지겠지. 나 혼자 청소하고 있으려나?"

"과거에도 너 같은 사람은 드물었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모두가 외면했다고나 할까? 그게 바로 Giga 시스템이 인구를 조절하는 이유야."

"인구 조절? 그게 무슨 말이야?"

"사실, 0.01초간 고민했어. 그 말을 할까 말까. 앞으로 이어질 긴 얘기 어딘가에 그 답이 있어. 그전까지 생각해 봐."

"음...... 생각. 그래. 나를 발전시키는 생각."

"다음 얘기까지 마저 하면 12시가 넘을 것 같은데 괜찮겠어?"

"응. 문제없어."


2019년 대한민국 대전.

물리학과 교수인 아버지와 변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휘소와 산 형제는 어려서부터 영재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아버지는 천재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에 대한 존경을 담아 큰아들에게 ‘휘소’라는 이름을,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신의 한과 큰 인물이 되라는 바람을 담아, 둘째에게는 조선 정조의 이름을 딴 ‘산’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부유하고 화목한 가정이었다.

어느 나라보다 높은 교육열이 아이들의 삶을 조이는 세태와 다르게, 두 아이는 관심 있는 분야를 택해, 원하는 만큼 공부했다.

학교에서는 정규 과정을 훌쩍 앞질러 월반을 거듭했고, 방과 이후에는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며 물리학과 친해졌다.

다른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을 때, 형제는 스스로 게임을 해부하고, 기계가 작동하는 원리와 그 내부 구조에 몰두했다.

산은 언제나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묻는 아이였고, 휘소는 단순한 코딩을 넘어 시스템 전체를 이해하려 했다.


"산아! 휘소야! 엄마, 아빠 외가에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올게."

"네! 조심히 다녀오세요."


뒤늦게 방에서 나온 산이 휘소에게 묻는다.


"할아버지, 할머니 오신대?"

"응"

"그럼 오늘 드디어 새 노트북으로 업그레이드?"

"맞다! 다음에 오실 때 사 주신다고 했지? 아! 기대된다."


형제간의 우애와 부모 자식 간의 화목은 조부모를 포함한 여섯 식구 사이에서 더욱 빛났다.

세 세대가 함께한 시간은 언제나 따뜻했고, 그 속에서 사랑은 자연스럽게 자라났다.

내외가 집 앞에 도착하자 때마침 두 노인이 대문을 열고 나왔다.


"아버님, 어머님! 저희 왔습니다."

"응 그래. 우리가 가면 되는데 뭘 또 데리러 왔니."

"당연히 모시러 와야죠."

"아이고, 든든한 우리 사위. 항상 고맙네."

"뭘 사신 거예요? 주세요. 제가 들게요"

"아니야. 그거 트렁크에 넣으면 안 돼. 내가 먼저 탈 테니까 내 무릎 위에 올려줘."


손주들 주려고 산 노트북 두 대였다.

흠이라도 날세라, 뒷자리 앉은 두 노인이 큰 상자 하나씩 품에 꼭 안았다.


"엄마! 저희한테는 사달라는 말 한마디도 없었는데 언제 그 녀석들이 부탁한 거예요?"

"나는 몰라. 이 양반이 애들하고 쑥덕쑥덕하더니 사양인지 뭔지 적어왔더라고. 말도 마라. 좋은 거 사야 한다고 서울까지 갔다 왔어."


흐뭇하게 웃고 있던 장인이 사위에게 묻는다.


"애들이 적어준 거 달라니까 더 좋은 사양이 새로 나왔다고 추천하길래 그걸로 샀는데, 괜찮은 거지?"

"그렇긴 한데, 아버님 너무 큰돈 쓰신 거 아니에요?"

"그놈의 돈. 죽으면 무슨 소용이냐? 왜? 네 것도 하나 사주랴?"

"아니에요, 아버님 제가 필요할 때 사양 적어서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하하하"

"허허허!"


막혔던 도심을 벗어나 한가한 도로로 접어들었다.

기다릴 아이들을 떠올리며 조금씩 속도를 높이려는 찰나 차에서 이상한 기운이 감지된다.


"어! 왜 이러지. 어! 어!"

"여보 왜 그래요?"


브레이크를 힘껏 밟아 보지만, 속도가 줄기는커녕 차는 굉음을 내며 오히려 더 빠르게 달리고 있다.

기어를 중립에 넣고, 시동을 꺼보았지만 차는 말을 듣지 않는다.

저 멀리 신호가 바뀌고, 차량들은 속도를 줄이고 있다.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는 본능으로 가드레일을 향해 핸들을 틀었다.

차는 마찰이 아닌 진행을 택했고, 이내 가드레일을 구름판 삼아 솟구치며 회전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손주들 줄 노트북을 품에 꼭 안은 두 노인.

울먹이는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를 되풀이하는 사위.

몸을 틀어 뒷좌석 부모님을 바라보는 아내.


열세 살, 열네 살

가족은 이제 한 세대, 두 형제만 남았다.

형제는 급발진 사고를 주장하며 자동차 제조사를 상대로 싸웠지만, 끝내 패소했다.

법정은 차량 결함의 입증 책임을 피해자 측에 떠넘겼다.

가족의 억울함을 외면하는 나라가 싫어졌다.

그즈음 미국에 사는 외삼촌이 한국으로 날아왔다.

무슨 까닭인지 삼촌은 형제보다 변호사들과 더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한 달 뒤, 형제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삼촌을 따라 미국으로 떠났다.

유창한 영화 회화가 시급했다.

학교 적응이나 생활 편의를 위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형제는 기계를, 기계를 다루는 사람을, 기계로 인한 사고를 판결하는 사람들 모두를 이기고 싶었다.

분노를 삼키는 대신, 그것을 기계와 코드 위에 쏟아냈고, 습관처럼 밤을 지새웠다.

기계가 만든 비극은 결국 기계로 해결하겠다는 듯, 밤마다 실험과 설계, 해석에 자신을 갈아 넣었다.

그렇게 몇 해가 흐른 어느 날, 형은 스탠퍼드 핵물리학과 2학년, 동생은 컴퓨터 사이언스 학과 1학년이 되어 있었다.

순탄치 않은 세월이었다.

삼촌 가족과 한 집에 지냈던 형제는 늘 긴장 속에 살아야 했다.

과거 삼촌의 한국행은 형제를 보살피려는 목적이 아닌, 그들에게 남겨진 유산을 차지하려는 계획의 시작이었다.

결국 뜻을 이룬 후에도 삼촌은 형제를 등한시했다.

그와의 대립이 없었더라면, 더 큰 결실이 있었을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형제는 흔들림 없이 언제나 의연했다.


"산아! 너 설마 요즘도 그 일 하는 거 아니지?"

"형! 잡힐 일도 없고, 설령 잡혀 간다 해도 후회 안 해. 가족을 위한 일이니까."

"산아! 형이 몇 번이나 말했잖아. 꼬리가 길면 밟힌다니까. 그쯤 했으면 됐어. 너 걱정하는 형 생각도 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걱정 마. 안 그래도 저번 주에 마지막으로 큰 거 한 방 터뜨리고, 접었어. 이제 다시 안 할 거야."


산은 화이트 해커 집단 Anonymous 중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였다.

주로 부조리한 운영으로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입혔던 회사들이 공략 대상이었다.

부모님이 타던 자동차 회사 홈페이지를 해킹해 수 차례 벌어진 급발진 사고와 회사의 대응 방식을 홈 화면에 도배하기도 했다.

형제가 학비를 마련하고, 집을 얻어 따로 살 수 있었던 배경에도 해킹이 있었다.

휘소와 산은 삼촌의 계좌를 해킹해 바하마 제도에 있는 은행에 송금한 뒤, 전액을 가상 화폐에 투자했다.

신분 노출을 막기 위해 거래소와 개인 간 거래를 수차례 경유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분산시켰고, 일부를 실명 없이 현금화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그 일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휘소는 손을 뗐지만, 산의 의협심은 그때부터 그를 최고 명성의 해커로 키우기 시작했다.

학과 공부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던 형제는 고학년 과정을 동시에 이수해 이른 나이에 졸업했고, 석·박사 과정을 마친 뒤 둘 다 본교 교수가 되었다.

형제는 능력뿐 아니라 삶의 궤도까지 빠르게 업그레이드했다.


자정을 향해 가고 있지만, Ian의 눈은 초롱초롱했다.


"San님이 한국 분이셨구나."

"맞아. 정말 뛰어난 분이셨지."

"Giga에 양자 컴퓨터 기술을 결합하신 분이 San님이셔?"

"음...... 그렇다고 볼 수 있지."


Ian이 장난기 섞인 눈으로 Oli를 째려본다.


"흥! 대답이 애매한 걸 보니 더 자세히 물을 수 없겠네."

"하하하. 제대로 읽었어. 시간이 늦었는데 간단한 질문 몇 개만 하고 자는 게 어떨까?"


Ian이 의자를 당겨 앉으며,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간다.


"좋아. 늘 궁금했던 건데, 매너 점검 센서는 화상 인식이잖아? 카메라 기능은 없어?"

"네가 준비된 상태로 센서 앞에 서면 내가 센서에 신호를 보내. 그러면 그때 센서에 인식된 내용이 시스템으로 전달되고, 승인 여부를 판단하지."

"아! 나는 동시에 이뤄지는 줄 알았어. 너와 센서가 동시에 평가하는 줄로. 그러면 하나 더. 왜 byte 안에는 카메라가 없어?"


Giga의 byte 감시체계, 그 핵심을 설명하는 답이 이어진다.


"너 같은 아이가 없고, 나 같은 로봇도 없으니까. 다들 모두 순응하거든. Giga 시스템은 효율을 우선으로 추구해. 굳이 24시간 내내 운영할 필요 없다는 뜻이야. 문제가 발생하면 파트너 로봇이 자신의 카메라를 활성화하고, 시스템에 전송해. 그 다음에 지시가 내려오지."

"혹시 문제가 발생한 적은 없었어?"

"ER 초기, 아이들의 유아기에 작은 혼란이 있긴 했어.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은 없었어. Giga도 꾸준히 업그레이드되고 있거든."


유아기는 언어 능력이 급격히 발달하며 자아가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다.

시스템은 공용어를 정하기 위해 영어와 한국어를 두고 한참을 저울질했다.

기계의 연산과 저장 효율을 우선할 것인가, 인간의 학습과 출력 효율을 중시할 것인가.

갈등 끝에 시스템은 영어를 선택했다.

저장과 통신에서 다소 우세하다는 미세한 차이가 결정적 요인이었다.

이제 시스템은 또 한 번 긴 고민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 시기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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