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인터페이스 (Interface)

[SF소설] 신의 프로토콜 2.4

by Sir Lem

2.4 인터페이스 (Interface)


아내를 잃고 난 후 환경 분야 활용 AI 연구에 전념하는 Daris.

엄마의 환경친화적 성향을 이어받아 환경 사회 과학을 전공하는 Lyra.

틈만 나면 '기술 vs 환경'으로 불꽃을 튀기던 두 사람 사이에는 '평화로운 외식'이라는 합의가 있었다.

햄버거와 감자튀김, 음료수를 앞에 두고 아직은 평화로운 부녀.

튀김 냄새 실은 공기를 타고 Luther Vandross의 'Dance with my father'가 흐른다.


"Liora 데려오시지 그러셨어요. 집에 혼자 있겠네."

"로봇이라는 단어조차 싫어하던 애가 웬일이니?"

"걔가 어디 그냥 로봇이에요? 위대하신 Daris 박사님께서 만드신 제2의 Lyra, 지구 최고의 지성체!"

"얘 뻔뻔한 것 좀 봐. 자기 쓰던 스마트폰들 몰래 백업했다고 울며불며 그렇게 아빠를 닦달하더니."

"몰랐죠. 그냥 로봇이 아니라, 엄마와 제 감정 패턴을 그대로 옮긴 친구를 만들어주실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

"요즘도 Liora한테 일 안 시키니?"

"그럼요. 제 소신인데. 강아지 끔찍이 싫어하던 사람이 어쩌다 유기견 맡게 되면서 가족처럼 아끼게 되는, 그런 마음, 있잖아요? 딱 그 관계로 대하려고요. 제 일은 제가 스스로 하면서. 아! 맞다!"


갑자기 떠올랐는지, Lyra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메모를 꺼내 Daris에게 보여준다.


"아빠! 혹시 이 사람 아세요?"

"알지. 아주 잘 알고 있지. 그런데 말하기 조심스럽다."

"왜요?"

"평화로운 외식이 깨질 수도 있어."

"음...... 그러면 학부형 입장에서 제 얘기에 답 해주세요. 저는 그 답에 대해 반박하지 않는 걸로 하고요."

"하하하. 좋아."


Lyra는 마음의 준비라도 하듯 다리 위로 손을 모으고 침을 삼킨다.


"하나 숨긴 게 있었는데,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잠시 뜸 들이다 다시 입을 연다.


"아빠한테 지고 싶지 않아서 교양 과목 하나 들었어요."

"뭔데?"

"웃으시면 안 돼요."

"그래."

"양자 컴퓨팅의 이해와 미래."

"풉! 푸하하하."

"아빠! 으이구......"

"너는 어쩌면 네 엄마하고 그렇게 똑같니? 네 엄마도 그랬어. 어느 날 나 몰래 AI 어쩌고 저쩌고 하는 제목의 책 사서 읽고 있더라고. 몰래 숨겨 놓은 거 내가 이미 다 봤는데 시치미 떼더라니까. 그 안의 내용들 태연하게 인용하는데 어찌나 귀엽던지."

"아빠! 이러면 또 전쟁하자는 얘기밖에 안 되는 거예요."

"워워워. 알았어. 진지하게 설명해 줄게."


Daris는 Theodore Kaczynski가 신문에 기고한 글 중 세 가지 주장을 꺼내 설명했다.


1. 현대 기술은 인간 생활에 공존하는 동시에, 인간 통제에서 벗어난 자기 영속적 ‘체제’이다.

2. 인간은 생물학적, 심리학적으로 기술 사회에 적응할 수 없다.

3. 기술 체제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인간성의 상실 또는 기술체제에 완전한 예속)


"이거 완전히 엄마하고 제 얘기인데요?"

"그렇지. 다만 '시점을 언제로 두느냐'가 관건이야. Theodore는 산업혁명조차 부정적으로 보거든. 요즘 세상과 비교하자면, 너무 원시적이잖아?"

"반박하지 않을게요. 약속했으니까. 아빠 혹시 제가 전에 주장했던 '도둑과 기술발전' 기억하세요?"

"기억하지."


Lyra가 교수 연구실에서 있었던 일을 Daris에게 털어놨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 나랑 비슷한 입장 아닐까? 너의 적일 수도 있고, 또 너의 편일 수도 있고."

"이건 공격하려는 의도는 아니에요. 아빠한테 하는 얘기도 아니고요. 음...... 첨단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학자가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위선이자 모순 아닐까요?"

"네 시각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지. 맞아. 그런데 그 교수하고 나 사이에도 차이는 있어."

"어떻게요?"

"교수가 그랬다면서? '1:1 구술시험 보겠다.', '연필로 써와라.'"

"네. 그랬죠."

"당장 우리 주위를 봐봐. 여기저기 휴머노이드야. 앞으로 막 쏟아지겠지? 특히 내 대학동기 Zarek이라는 녀석 때문에 더욱 그럴 테고. 뭐 굳이 나열하자면, 맨 왼쪽에 너희 엄마, 그 옆에 너, 교수는 좀 더 떨어진 곳에 있고...... 나는 그보다도 더 오른쪽, 맨 끝엔 내 대학 동기. 이렇게 위치할 것 같은데?"


Daris가 테이블 왼쪽 끝부터 손바닥을 들어 지점을 가리키며, 각 인물들의 기술 지향을 손끝으로 구분하듯 짚었다.

이를 유심히 보던 Lyra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다, 이내 새침하게 웃는다.


"아빠! 여기 좀 보세요."

"갑자기 웬 사진이야?"


찍은 사진을 확인한 Lyra의 입가에 웃음기가 번진다.


“오케이! 그럼, 숙제 끝!"

"응? 어떻게?"

"아빠, 그 교수님이 아빠 이름 알고 있을 만큼은 충분히 유명하시죠?”


다음 날, 오후 2시를 지나 10분이 더 흐른 시각.

2시까지 오라고 했던 약속을 뒤늦게 깨달은 산이 빠른 걸음으로 연구실로 향한다.

계단에서 내려와 왼쪽 복도로 몸을 틀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학생이 시야에 들어온다.

짜증 내며 안절부절못하거나, 스마트폰에 빠져 있을 만도 한데, 고개 숙여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여학생의 자태에 흐뭇해한다.


"늦었네요. 미안해요."


미안해하는 이산에 Lyra는 그저 담담하다.


"네."

"자! 들어가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Lyra는 입술 다문 태연한 표정, 산은 멋쩍은 미소로 서류를 뒤지고 있다.


"이름이...... Lyra 맞죠? Lyra Noor?"

"네."

"숙제는 해왔어요?"

"그러니까 왔겠죠?"


당돌한 반문에 이산이 뒤로 주춤한다.


"오!...... 그렇죠. 그랬겠죠?"

"교수님! 혹시, 이분 아세요?"


Lyra가 스마트폰으로 찍은 아빠의 사진을 들이민다.


"누구죠? 낯이 익은데......"

"저는 그분의 몸 전체와 뇌의 95%를 사랑해요. 근데 남은 5%랑 자주 싸우죠. 엄마는 6%랑 다투셨고요."

"네?"

"말씀 다 드렸어요. 여기 숙제요."


종달새 같은 목소리를 남기고, 매서운 매처럼 자리를 떠나는 Lyra의 뒷모습에, 산은 입을 벌린 채 굳어 버린다.

Lyra가 문을 열고 나가고 나서야, 그녀가 테이블에 두고 간, 두 번 접힌 종이를 펼친다.


'굳이 나열하자면, 맨 왼쪽에 저희 엄마, 그 옆에 제가 있고, 교수님은 조금 더 떨어진 곳. 그보다 더 오른쪽엔 Daris Noor, 그리고 맨 끝엔 아버지의 대학 동기 Zarek이라는 분이 계시겠죠. 참고로 저와 엄마는 Theodore Kaczynski를 잔혹한 살인마로 평가하며, 그의 뇌 25%만을 존중합니다.'


'Daris Noor.'


산이 그 이름을 모를 리 없다.
양자 컴퓨팅과 AI 기술, 두 사람 모두 이 교차점 위에 서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둘 다 이 두 분야에서 폭넓은 지식과 명성을 갖춘 인물이다.

산이 Lyra의 숙제와 수강생 리스트를 번갈아 살펴보며 중얼거린다.


"Daris Noor......, Zarek......, Lyra Noor?, 어? Daris 박사 딸?"


한때 존경의 대상이던 그들이, 이제는 의심의 중심에 있다.

그래서인지 Ian의 표정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알면 알수록 불길하고, 불편해지는 Giga 시스템.

Ian의 날카로운 질문이 Oli를 당황하게 한다.


"지금 그 사람들은 어디 있어?


선의를 위한 거짓말을 해야 할지, 아직은 답할 수 없다고 넘겨야 할지.

복잡한 경우의 수를 모두 따진 후 조심스럽게 답하는 Oli.


"Ian! 지금은 그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지에 집중해야 해. 단면의 사실들이 아니라, 전체를 이해하는 게 우선이란 말이지. 아직 이야기는 시작에 불과하거든."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런데, 조금 안타깝긴 해. 만약 Lyra라는 여자가 그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Giga는 탄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 말이야."

"과거에 누가 그랬지.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나고, 잘못된 결과는 그 일을 만든 이들이 바로잡는 게 가장 빠르다고. 이야기 계속할게."

"알았어 Oli"


Lyra는, 그녀가 또 다른 자신으로 여기는 Liora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며,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있다.

그들에게는 흔한 일상이며, Lyra는 이를 메타인지에 비유했다.


"그대로 돌려줬어.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애매한 숙제에는, 애매한 답. 어때? 괜찮았어?"

"그 사람 표정이 어땠는지 알아야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얼굴 봐봐. 이렇게 입을 벌리고, 안면이 굳은 상태로 눈만 깜빡이더라고. 아무 말도 못 하고."

"너는 냉정하게 뒤돌아 나갔고?"

"맞아!""

"하하하/하하하"


통쾌한 웃음이 거실을 가득 메우는 사이, 집에 돌아온 Daris가 대화에 합류한다.

상황을 전해 들은 Daris는 머리를 감싸 쥐며 당황해한다.


"아...... 주여!"


Lyra와 Liora의 웃음이 다시 한번 터진다.

같은 감정 패턴을 공유한 두 존재 앞에 Daris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젓는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고 이내 뭔가 수습해 보려는 듯,


"그나저나, 그 교수 이름이 뭐니?"

"San Lee요. 상당히 젊어요."

"San Lee...... 스탠퍼드 San Lee...... 아! 그 친구구나."

"아세요?"

"들어봤어. 제2의 Daris Noor라나 뭐라나. 어! 이런...... 그러고 보니, 내 딸한테 나랑 제2의 내가 동시에 박살 났네."


이후에도 Lyra는 매 강의마다 신기술 무용론으로 산을 밀어붙였고, 단단히 준비해 온 산도 물러서지 않고 맞받아쳤다.

숙제 사건 이후 한 달 뒤,

한 여자와 그녀의 분신을 상대해 온 두 남자의 숙명적 만남이 이뤄진다.

Daris와 산은 AI와 양자 컴퓨터 결합을 주제로 한 학회에 참석했다.

넓은 공간의 수많은 얼굴 사이,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찾고 있었다.

드디어 시선이 겹쳐진 두 과학자는 웃음 띤 얼굴로 눈인사하며 서로에게 다가갔다.


"Daris 박사님이시죠?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스탠퍼드에서 근무하는 San Lee라고 합니다."

"영광보다는 동질감이나 전우애가 더 강하게 느껴질 텐데? 하하하! 반갑네. 나 Daris Noor야."

"혹시?"

"응. 다 들었어. 자네나 나나 크게 한방 얻어맞았지 뭐."

"따님 덕분에 원시시대부터 현재까지, 인류 기술 발전 역사를 샅샅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나는 걔 엄마랑 결혼 전부터 해서 벌써 20년이 넘었네."


같은 분야에 조예가 깊은 학자이자, 전우로 만난 두 남자의 대화는 유쾌함으로 시작해, 진지함으로 흘렀다.

특히 환경에는 보수적이고, 기술에는 진보적인 태도를 견지해 온 이들답게, '책임 있는 기술'이란 화두를 중심에 놓고 긴 대화를 이어갔다.


두 달 뒤 학기가 끝나고,

어느 시위에 참가해 군중과 함께 소리치던 Lyra에게 전화가 온다.


"아이고, 시끄러워. 이게 무슨 소리야? Lyra! 아빠야!"

"제가 바로 전화드릴게요."


Lyra는 틈나는 대로 환경 단체에 봉사활동을 나가거나, 가끔은 거리 시위에도 참여했다.

그런 딸을 늘 걱정하던 Daris였지만, 애써 말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피켓에 구호를 적는 Lyra의 모습을 보며 Claire에 대한 그리움을 채웠다.

환경 파괴를 고발하는 기사를 쓰던 그녀의 흔적이 겹쳐지며, 그의 마음을 데웠다.


"아빠!"

"Lyra! 과격 시위대로 뉴스에 등장해서 아빠 놀라게 하는 건 아니겠지?"

"과격이요? 다들 배고파서 피켓들 힘도 없어요. 오전에 시작해서 점심도 거르고 아직까지 이러고 있다니까요."

"6시에 Gigs에서 보자. 늦지 않게 서둘러"

"Gigs요? 어머 웬일이래? 오랜만에 스테이크 먹겠네. 곧 끝나니까 마무리하고 갈게요."


어두운 실내, 위아래 간격을 맞춰 배치된 테이블들 위에 작은 촛불이 놓여있다.

불빛은 테이블을 제외하곤 거의 닿지 않았고, 그 덕분에 공간은 조용하고 깊게 가라앉아 있다.

은은한 재즈 선율이 흐르는 공간은 과거 세 가족이 함께 외식을 즐기던 단골 레스토랑이다.

10대 초반 소녀가 즐겨 입던 반팔 셔츠, 청바지, 흰 운동화와 비슷한 옷차림.

이제 막 들어선 Lyra가 두리번거리고 있다.

앞자리에 앉은 남자 어깨너머 저 멀리 딸을 발견하고, Daris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간다.

아빠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차마 소리는 내지 못하고, 두 손바닥을 격하게 흔들어 보이는 Lyra.

아빠 어깨에 덥석 기대 속삭인다.


"아빠! 나 이렇게 입고 왔다고 창피해하시면 안 돼요."


Lyra가 귀엽게 혀를 내민다.

엄마, 아빠의 이해를 구하려고 할 때 나오는 버릇이다.

Daris는 대답 없이 미소 지으며 그녀와 함께 테이블을 향해 걸어간다.

등을 보이고 앉은 한 남자의 테이블을 가리키며,


"저 테이블이야."

"네? 저분은 누구세요?"

"쉿! 빨리 와!"


영문도 모른 채 동그랗게 뜬 눈으로 아랫입술을 물고, 맞은편 의자에 앉는 Lyra.

남자가 해맑게 웃으며 인사한다.


"안녕!"

"어? 교수님...... 아빠!"


두 남자를 번갈아 보며 당황하는 그녀를 보고, 두 남자는 입을 가리고 크게 웃는다.

밴드가 연주하는 'I'll be seeing you' 선율이 손님들의 시선을 무대로 모으고, Lyra는 여성 첼로 연주자에게 온화한 눈빛을 보낸다.


좀 전까지 배신감과 긴장감으로 경직됐던 Ian의 얼굴에 조금의 여유가 스며들고, 입꼬리도 느슨해진다.


"Oli!"

"응. Ian!"


잠시 정적이 흐른다.

Oli는 Ian이 다음으로 어떤 질문을 던질지 예측하고 있다.

그들의 관계에 대해, Daris에 대해, 혹은 Lyra에 대한 무엇인가.

하지만 Ian은 그 예상 너머를 걷고 있다.


"너도 Daris 박사처럼...... 나랑 991 만나게 해 주면 안 돼?"

"이런! 전혀 예상 못한 질문이야."

"흐흐, 미안. 그런데 한 가지 떠오른 게 있긴 했어."

"뭔데?"

"그 테이블 말이야. 일정한 간격, 한 점씩 박힌 촛불들. 꼭 우리 byte 같지 않아? 안쪽은 환하고 따뜻한데, 바깥은 차갑고 어두워."

"오! 대단해, Ian! 하나만 더 해봐. 그러면 내가 뭔가 해줄 수 있을지 몰라."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Ian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연다.


"San 교수는 Daris 박사, Lyra 그 중간쯤에 있는 사람 같아. 두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골고루 채워주는 역할 말이야. 필요한 사람인 거지. 그래서 말인데, 너도 중간 역할을 좀......"


Oli가 놀란 시늉으로 두 손바닥을 들어 보인다.


"아주 훌륭해!"

"어! 그럼 만나게 해주는 거야?"

"저번처럼 단체 식당에서 옆자리 앉게 하는 정도는 가능해. 그래도 좋아?"


Ian이 두 손으로 Oli의 손을 감싼다.


"물론이지!"

"좋아. 내일 평가의 날이잖아? 너 Cell에 있는 동안, P3요일에 너희 둘이 만날 수 있게 내가 준비할게. 대신, 내가 말하는 대로 해야 돼.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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