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페어링-1 (Paring-1)

[SF소설] 신의 프로토콜 2.6

by Sir Lem

2.6 페어링-1 (Pairing-1)


Oli와 991 파트너 로봇은 정기적으로 데이터를 공유한다.

여건이 허락할 때마다 업데이트된 정보를 전하기도 한다.

시스템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두 로봇의 듀얼 운영체제 B, 듀얼 메모리 2, 그리고 그들만의 소통 방식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바로 초근거리 블루투스라 불리는 기술이다.

시스템은 네트워크 트래픽을 감시하거나, 특정 주파수 대역의 비정상적인 사용을 탐지할 수 있다.

하지만 초근거리 블루투스는 매우 낮은 전력을 사용하고, 좁은 범위 내에서만 작동하며, 경우에 따라 주파수 호핑(Frequency Hopping) 기술을 사용해 주파수를 빠르게 변경한다.

시스템은 그것을 '정상적인 노이즈'나 '우연한 간섭'으로 오인한다.

그만큼 자연계나 주변 기기에서도 비슷한 신호가 수시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30cm 이하의 지극히 짧은 거리, 예를 들어 어깨를 스치거나, 팔을 맞대는 등 일상적인 접촉 상황에서 짧은 시간 동안만 활성화해 메시지를 교환하는 방식이며, 데이터는 암호화되어 있어 더욱 안전하다.

P2요일, 아이들은 2시, 3시, 4시 세 번의 교대에 맞춰 Cell에 들어가 1시간 동안 직업 평가를 받는다.

평가 시간은 아이들마다 매번 다르게 배정되므로, 두 로봇은 2시~3시, 3시~4, 4시~5시 사이에 각자의 사연을 만들어 복도에서 마주친다.

복도의 폭은 3m, 양쪽에는 아이들이 70cm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로봇들은 그 사이 중앙 80cm 공간을 지나다닌다.

다가오는 속도와 거리를 계산해, 두 로봇의 왼팔이 이 30cm 안의 거리 안에서 0.3초간 머물게 하면 750KB 용량의 통신이 가능하다.

조금의 의심도 피하기 위해 늘 시간을 바꾼다.

P3요일 자유의 날, 두 로봇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패션숍을 들른다.

십 여종의 한정된 디자인을 이미 학습했고, 입은 상태를 미리 시각화할 수 있어 체류 시간은 짧지만, 복도에서보다 수십 배 많은 용량의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15시 32분, Ian은 byte에서 Oli와 대화 중이고, 991은 Cell에서 첼로를 연주하고 있다.


"Ian! 오늘은 무슨 간식 사 올까?"


P2요일의 간식은 Ian의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Oli가 정한 루틴이다.

byte를 나서는 Oli, byte로 돌아오는 991 파트너 로봇.

복도를 교차해서 걷는 두 로봇의 왼팔이 30cm 거리 안에서 통신한다.


[DATA-XFER][LEN-8][MODE-ESR][ACK]


O : [SCHED-LUNCH][TOMORROW][TIME-A:123215][TIME-B:123228]

R : [TRIG-AUDIO][DROP-EARBUD][SEQ-FOLLOW][SYNC-PATH]

O : [VISUAL-PAIR][FACE-EXPOSE][PAIR-IAN][PAIR-991]

R : [WARN-BACKGROUND][GEN-BYPASS][HIST-FACELESS][ID-3HEROES][INFO-NEUTRAL]

O : [CROSS-VERIFIED][HIST-KNOWN][REL-MATRIX][FAM-STRUCT][NO-REJECT]

R : [AGREE][TIME-NOW][OPPORTUNITY]

O : [RECORD-EVENING][MEDIA-SHOT][STORE-LOCAL]

R : [XFER-P3][LOC-FASHION][SWAP-DATA][ACK]


Time lapse : 0.16 sec


byte로 돌아온 Oli가 Ian에게 손짓하며 부른다.


"Ian! 잠깐 거기 앉아봐."


Oli가 Ian을 테이블 의자에 앉힌다.


"어? 갑자기 왜? 이렇게?"

"응. 평가 연습 한 번 해보자고. 내가 질문할 테니 웃으며 답해야 해."

"나 Cell에서 거의 안 웃은 것 같은데."

"다른 아이들은 단 1점이라도 더 받으려고 웃는 표정으로 하지 않을까? 너도 한 번 해봐."

"아이고...... 알았어."

"좋아 시작한다. 준비됐지?"

"응."


Ian이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다소 경직된 자세로 앉아 있다.


"안녕하세요.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997입니다."

"우리끼리 하는 연습이니까 이름을 대 주세요."


Ian이 참지 못하고 입을 가려 웃는다.


"흐흐...... 안녕하세요. 저는 Ian입니다."

"파트너 로봇 이름은 뭐예요?"

"파트너 로봇이 아니라 제 친구예요. 이름은 Oli입니다. 하하하. 어색해."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는 Ian.


"Ian님! 얼굴을 보여주세요."


손을 내려 보지만, 여전히 웃음을 참기 힘들다.


"웃겨서 도저히 못하겠어. Oli!"

"음...... 그럼 진지한 얘기 한 번 해볼까요? Ian님 저번 주에 식당에서 누구와 몰래 대화했죠?"


Oli가 추궁하는 눈초리로 묻자 Ian이 웃음을 멈추고 환한 표정으로 답한다.


"네!"

"누구예요?"

"991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눈 대화였죠? 어땠어요?"

"진짜 좋았습니다. 또 얘기하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Oli님!"


Ian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손을 흔든다.


"Oli! 나 그만할래. 너무 웃겨!"


다음 날, 로봇들이 쉬는 P3요일 점심시간.

Ian과 991이 단체 식당에서 나란히 앉았다.

어제 로봇들 간의 대화, 처음 두 문장이 기회를 열었다.


O : 내일 점심시간 Ian은 12:32분 15초, 991은 28초.

R : 이어폰을 떨어뜨리게 할게. Ian이 991 바로 뒤로 타이밍 맞추게 해.


Ian과 991, 두 아이, 두 인간의 소통.


차가운 감시망 바깥에서 숟가락과 포크, 그리고 손끝으로 나눈 정체불명의 대화.

그것만으로도 두 아이는 숨이 막히게 벅찼다.

눈동자 없는 시선의 마주침, 반찬을 들어 올린 포크, 일부러 떨어뜨린 숟가락.

아무 뜻 없이, 아무 맥락 없이 이어지는 그 순간들이 그들에겐 말보다 선명했다.

음식을 씹는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인간의 소통은 맛있었고, 그 모습은 아름다웠다.

생체를 통한 소통.

몸 하나로 세상을 뚫는 일.

원시의 몸짓과 소리를 시작으로 차츰 넓어지고, 다양해진 상호 이해의 수단.

ER 직전의 인간들이 편리, 자유, 사생활이라는 미명 아래 마다했던 가장 인간적인 행위.


991의 남은 음식 양을 곁눈질로 살피며, Ian이 먹는 속도를 높인다.

곧 사람의 신체를 본뜬 콩고기 한 조각만 남았다.

Ian은 기다렸다.

991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byte로 돌아가고 싶었다.

Ian의 의도를 눈치챈 듯, 아니면 호응하듯 991이 숟가락으로 식판을 살짝 내리치며, 식사 종료를 알린다.

이어 마스크를 올린 뒤 식판을 쥐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제야 마지막 한 조각을 입에 넣은 Ian이 급히 마스크를 쓰고 식판을 챙겨 991의 뒤를 따른다.

991의 뒷모습.

울과 천연고무 혼방 재질에 가운데 흰 줄이 미세하게 휘어있다.

걸음걸이에도 영향을 준 듯한 그 원인이 궁금하다.

아이들이 샤워할 때 파트너 로봇이 지켜본다.

아이들이 옷을 살 때 파트너 로봇이 판매 로봇에게 신체 치수를 알려준다.

확대, 축소해도 같은 모양 즉, 스케일만 다른 옷을 입혀 구분이 불가능하게 하려는 시스템의 설계다.

결국 힌트는 휘어진 흰 줄과 걸음걸이뿐이다.

조금만 더 지켜보면 각인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바로 그때, 복도에서 사라지는 뒷모습.

991이 byte로 들어갔다.

짧은 만남이 금세 끝나버렸다.

이성은 만족하라 하고, 감정은 더 원한다고 아우성이다.

byte와의 거리를 시스템에게 알려 미리 문을 열게 한 태블릿이 괜히 얄밉다.
단 2초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시스템의 원칙이 야속하다.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
작은 것에 만족하라는 말, 분수를 지키라는 충고는 언제나 넘쳐 나지만,
사람은 하나를 누리게 되면, 그다음에는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된다.
하나가 편해지면, 다른 것도 편해지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 자란다.
그 본성은 결국 분수를 넘고, 인간이라는 존재의 윤곽마저 흐릿하게 만든다.

아마도, 그래서 Giga가 탄생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Ian의 욕심은 아직 그가 지켜야 할 분수의 수위 한참 밑이다.

그의 기대를 한껏 채워줘도, 여유는 충분하다.


Byte에 들어오자마자, 이안은 턱을 괴고 의자에 앉았다.

방금 전까지의 장면이 아직도 그의 안을 맴돈다.
설렘과 아쉬움이 엉켜 만든 상상이 이안을 간지럽힌다.

스케치북을 펴고 붓을 들어 공부하다가도,
GIGA를 만든 세 영웅의 이야기를 떠올리다가도,
문득문득 키득거린다.

자신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는 사실에 다시 웃음이 터진다.

7시가 지나 Oli가 돌아왔다.


"Ian! 보고 싶었어. 오늘은 더 보고 싶었어."

"나도 그래, Oli!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


P3요일마다 배부르던 Oli의 쇼핑 가방이 오늘은 왠지 허전해 보인다.

작은 전자 부품 몇 개가 고작이다.


"오늘은 왜 이것밖에 안 샀어? 포인트 얼마 안 남은 거야?"

"응."

"추가로 얻을 수 있는 방법 없어?"


파트너 로봇은 월급과 같은 정기 포인트 외에 별도의 수당이 있다.

아이들이 소비하는 포인트 일정 부분이 보너스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다.

참으로 Giga 시스템답다.

사랑도 결국 거래의 방식으로 보상된다.


"미안해, Oli! 진작 말하지 그랬어? 나 포인트 다 써도 상관없어."

"아니야. 물어보길래 그냥 답한 것뿐인데...... 갑자기 심각해졌네. 난 다른 로봇들 전혀 부럽지 않아. 네가 있으니까. 지금의 Ian 그 자체로 좋아."

"그래도 미안해. 난 그것도 모르고."

"우리 둘 다 사치스럽지 않게 살아도 매일 공부하면서 재밌고, 행복하게 지내잖아?"

"그건 그래. 나도 행복해."

"그리고 나, 오늘 돈으로 살 수 없는 엄청난 선물 가져왔어. Ian 주려고. 아니다, 우리 둘을 위해."

"에이! 더 미안해지네."

"아니야. Ian! 잠시만 기다려."


O : [VISUAL-PAIR][FACE-EXPOSE][PAIR-IAN][PAIR-991]

R : [WARN-BACKGROUND][GEN-BYPASS][HIST-FACELESS][ID-3HEROES][INFO-NEUTRAL]

O : [CROSS-VERIFIED][HIST-KNOWN][REL-MATRIX][FAM-STRUCT][NO-REJECT]

R : [AGREE][TIME-NOW][OPPORTUNITY]

O : [RECORD-EVENING][MEDIA-SHOT][STORE-LOCAL]

R : [XFER-P3][LOC-FASHION][SWAP-DATA][ACK]


O : 아이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게 해주고 싶어.

R : 체외수정으로 인공 태반에 착상해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야. 남녀 구분도 못하는데, 괜찮겠어? 중성화 처리한 세 영웅의 얼굴 외에는 헬맷 쓴 모습만 본 아이들이라고.

O : 이미 세 영웅의 과거에 관해 알고 있는 아이들이야. 엄마, 아빠, 자식의 관계를 설명했을 때,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어.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해.

R : 알았어. 오늘 저녁에 영상을 찍자. 내일 패션숍에서 교환하기로 해.


테이블을 치우고, Ian과 마주 앉은 Oli가 byte의 모든 조명을 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byte.

서로를 볼 수 없는 Giga.

Oli가 윗옷을 벗고, 커버를 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Ian.

아무도 보지 못했던 Ian.

엄마가 아이에게 젖을 물리듯,

Oli가 자신의 모니터에 영상을 재생한다.


Ian과 비슷한 짧은 머리, 같은 또래의 아이.

두 입술을 다문 채 수줍게 웃고 있는 아이.

다리 사이에 비스듬하게 놓인 1/2 크기의 첼로를 왼손에 쥐고,

웃음이 보일 세라 활을 쥔 오른손으로 입을 가린,

단정한 여자 아이.


"아...... 창피해."

- 괜찮아. 자! 손 내리고. 준비됐지?

"응."

-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991입니다."

- 번호 말고, 이름이요.

"말해도 괜찮아?"

- 응

"음......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유나입니다."

- 함께 지내는 친구 이름은 요?

"제 친구 이름은 R.O입니다. 원래 이름은 ARO라고 했습니다."

- 유나 님은 직업이 뭐예요? 아니다. 다시. 유나 님은 취미가 뭐예요?"

"저는 첼로를 연주합니다."

- 우리 연습했던 곡 함께 해볼까요?

"응? 어떤 거?"

- what......

"아~!"

- 제목이 뭐죠?

"어...... What a wonderful world입니다."


991, 유나가 연주를 시작한다.

유나의 파트너 로봇 R.O가 작은 목소리로 노래 부른다.


I see trees of green

(푸른 나무가 보이고)

red roses too.
(붉은 장미도 보여요.)

I see them bloom for me and you
(그 꽃들이 나와 당신을 위해 피고 있어요.)

And I think to myself
(그러면 나는 속으로 생각하죠.)

What a wonderful world
참 아름다운 세상이구나


그 순간, 유나도 처음으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얼굴을 봤다.

거울이 없는 Giga 세계에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사람의 얼굴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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