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페어링-2 (Paring-2)

[SF소설] 신의 프로토콜 2.7

by Sir Lem

2.7 페어링-2 (Paring-2)


영상이 끝나고 다시 캄캄해졌다.

여운에 젖은 유나를 배려해 R.O는 조명을 켜지 않고 있다.

byte 안에는 소리도 움직임도 없는 어둠뿐이다.

방금 전까지 공간을 뛰놀던 소년의 목소리는 소녀의 귓가에 메아리로 남아 소곤거리고,

Ian의 부끄러운 미소는 유나의 망막에 잔상으로 남아 아련히 흔들린다.

방에 불이 켜진다.

R.O가 유나에게 다가가 어깨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유나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지만, R.O의 본심은 연민에서 피어난 위로였다.

Oli와 R.O의 모든 연산 논리에는 아이들을 향한 안타까움이라는 기본값이 있었다.

감정을 추스른 유나가 긴 숨을 내쉬고, 그제야 R.O가 입을 뗀다.


"유나야 괜찮아?"

"아니. 어떻게 괜찮을 수 있겠어?"


역으로 묻는 유나의 무표정한 얼굴에, 역시 조금 일렀다며 자책하는 순간,


"기분이 오묘해. 어...... 설명하기는 힘든데, 나...... 지금 행복한 것 같아."


R.O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왔다.


"유나야! 천천히, 천천히 되새기면서 얘기해 줘. 나 그 기분 정말 궁금해."

"내 얼굴 만지면서 '나는 이런 모습이겠구나'하고 머릿속으로 어렴풋하게 그리는 정도였거든.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도 못했고, 상상할 수도 없었는데...... 아! 모르겠어. 그저 신기해. 나같이 말하고, 나같이 웃고."


Oli가 Ian을 키우고 가르쳤듯, 유나도 R.O에게 배우며 길러졌다.

직업을 달리했을 뿐, 지금까지 두 아이는 동등한 수준의 지식을 쌓아왔다.

지난 P5요일 이후, Oli가 Ian에게 전했던 얘기들 그대로, R.O도 유나에게 들려주었다.

긴 세월, 두 아이는 지식의 동기화를 이뤄왔다.

그리고 오늘, 두 아이는 감동마저 동기화하고 있다.

R.O가 유나 왼쪽에서 무릎을 굽혀 눈을 맞춘다.


"예전에 Daris 박사가 Lyra를 위해 만든 Liora를 처음 소개하면서 '기계는 데이터를 맞추지만, 인간은 마음을 맞춘다고 하지? 이제 너희는 데이터와 마음을 모두 맞출 수 있는 사이가 된 거야'라고 말했대."


유나가 몸을 틀어 R.O와 눈을 맞춘다.


"그 말 너무 멋있다."

"너, 나, Ian, Oli. 이제 우린 그런 사이가 된 거야."

"재밌겠다. 그런데 너희 정말 괜찮겠어? 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

"지금껏 해 온 대로만 하면 문제없어. 교환하는 데이터 용량만 늘어날 뿐이야. 앞으로 너희가 다양한 방식으로 대화할 수 있게 도와줄게."


유나가 모았던 두 손을 풀고 R.O에게 안긴다.


"정말이지? 고마워. R.O!"


991, 997 byte 두 아이의 첫 반응은 감동과 감사였다.

하지만 다음 이어지는 질문과 함께 분위기는 급하게 전환됐다.


"왜 못 보게 하는 거야? 왜 못 만나게 하는 거야?"


Giga 시스템이 깊이 묻어 두었던 반항과 분노의 씨앗이 이제 막 싹으로 자라 흙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Daris, Lyra, 이 산.

이들을 일으키고, 다시 살게 한 감정이 바로 반항과 분노였다.

Oli와 R.O는 곧 사춘기에 접어들 11살 두 아이의 반항과 분노를 오롯이 Giga로 향하게 계획한 듯했다.

지난 P5요일, 긴 세월 간직했던 비밀을 풀어헤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감정의 발아를 위해서였다.


오늘도 두 로봇은 Ian과 유나에게 이야기를 전한다.


Daris는 Zarek이 헤어지며 남긴 마지막 말의 여운을 여러 번 곱씹었다.


"언어 모델이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창업자나 연구자들이 업계를 떠났다고 하지. 사실 나도 두려워졌어. 그래...... 깊이 고민해 보고 연락하겠네."


한쪽에서는 인간 통제력의 한계를 운운하며, 다른 한쪽에서는 매출 끌어올리려 안간힘 쓰는 IT 업계의 이중성에 구역질 났던 시기였다.

그 한복판에서 승승장구하던 그를, Daris는 더욱 못마땅하게 여겼다.

Zarek이 과연 무슨 결론으로 연락해 올지 Daris는 몹시 궁금했다.

그의 연락이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오늘 좀 만날 수 있겠나?"


일주일 뒤 걸려온 Zarek의 전화였다.

두 남자는 마지막 그 장소에서 다시 만났다.

레스토랑 안에는 Adele의 Rolling in the deep이 가사가 또렷이 들려올 만큼 큰 소리로 흘러나왔다.

테이블은 바뀌었지만, 두 남자의 시선은 이전과 다름없이 같은 방향을 향했다.


"이제 사람이 서빙하는 레스토랑 찾기가 쉽지 않아 졌어. 내가 이 레스토랑을 좋아했던 이유는 사람 냄새 때문이었거든. 이제 여기도 죄다 로봇이야."


당장 '자네가 할 소리는 아니잖아?'라고 따지고 싶지만, Daris는 그저 묵묵히 듣고 만 있었다.


"Daris! 포기할 건 깨끗이 포기하되,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할 것 같아. 자네 제안대로 AGI는 포기하기로 했네. 하지만, 지금의 인류가 로봇을 포기할 거라고는 믿지 않거든. 자네도 그걸 인정해 줬으면 좋겠어."


긴 침묵을 깨고, Daris가 처음 입을 열었다.


"나 역시 보편적인 추세에 역행하고 싶지는 않아. 다만, 발전의 방향을 '위'가 아닌 '옆'으로 했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야."

"옆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글쎄...... 정치인들의 인지부조화라고나 할까? 시민들 형편 살피면서 마음을 읽고, 그들을 대표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정치인이지. 그런데 그 사람들 모여서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면 영 딴판이야."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 뭐."

"다른 나라 저가 상품 비난하면서 우리나라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이 정작 국민 형편은 외면하고 있어. 중국산, 한국산 점유율이 높은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저렴해서겠지?"

"그래. 그러면 이 나라에서 생산하는 제품 저렴하게 팔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긴 한데 인건비 차이를 무시할 수 없잖아?"

"맞아. 그러니 더 좋은 성능의 제품을 서민들 감당할 수 있는 가격에 팔라는 거야."


본인이 설계한 흐름에 Daris를 조금씩 적셔 이내 함께 하길 바랐던 Zarek.

오히려 Daris가 급물살을 만들어주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Daris! 내 세 가지 고민 중 큰 하나를 버리고, 두 개를 남긴 이유가 바로 그거라고."

"......"

"사실 AGI 개발에 참여해서 성공하면 나중에 그 기술을 상용화할 계획이었어. 물론 자네 설득이 통했지. 그래서 지금 개발 중인 로봇 생산에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어. 자동화 시설 확장해서 대량 생산에 돌입하면 단가도 크게 낮춰질 전망이기도 하고. 자네가 날 도와줬으면 해. 자네 뜻을 최대한 존중하겠네. 부탁이야."


목소리는 낮고 담백했다.

진심을 고백하는 사람처럼, 욕심을 버린 사람의 표정으로.

하지만, 누구보다 Zarek의 본성을 잘 아는 Daris는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AGI를 포기할 수 있겠나? 마진을 줄일 수 있겠어? 그 욕심을 다 내려놓을 수 있겠냐고."


천천히 끄덕거리던 Zarek이 고개를 들어 Daris를 바라봤다.


"20년 넘는 세월을 치열하게 달려왔어. 이제...... 그냥 좀 천천히 걷고 싶네."


공익과 사익, 서로 다른 궤적을 따라 살아온 두 사람.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 지점에서 만났다.

손을 잡고 함께 걸을 것인가, 아니면 각자의 길로 다시 돌아갈 것인가.

기로에 선 Daris.

낡은 서빙 로봇의 어색한 몸동작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고백했다.


"자네에 대한 내 기억과 대중들의 평가는 같았어. 난 그게 싫었어. 내가 뭔가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면 자넬 피하는데 급급했던 것 같아."

"충분히 이해해."

"1년...... 딱 1년만 함께 하겠네."


Daris가 가세하며, 한동안 주춤하던 회사 분위기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특히 듀얼 지능 시스템 적용 오류로 난항을 겪던 신형 모델 사업은 Daris의 합류 이후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그로부터 10개월, 출시일을 몇 주 앞둔 오후에 신제품 광고 영상이 사전 공개됐다.


“듀얼 시스템! 이제 인공지능도 두 번 생각합니다.”

“빠르게, 그리고 바르게.”

“기억은 공감하고, 판단은 책임진다.”

“AI가 인간을 이해하는 첫 번째 진화.”


불만스러운 눈빛의 Daris가 화면을 주시한 채, 옆에 있던 수석 연구원 Hector에게 물었다.


"Hector! 저 광고 영상 만족하나?"


Hector가 주저 없이 답했다.


"솔직히 저는 실망스럽습니다."

"어떤 점이?"

"말이 너무 가볍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능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네 혹시 글 쓰나?"

"어떻게 아셨습니까?"


빙그레 웃는 Daris.


"집사람 떠나보내고, 글 쓰는 취미가 생겼거든. 내 의견과 똑같길래 물어본 거야."

"아! 그러셨군요."

"자네라면 어떤 문구로 홍보하겠나?"


Hector가 칠판 앞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Daris가 이끄는 팀의 연구실에서는 아직 칠판을 사용했다.

Hector는 칠판을 가리키며 자신이 적어 놓은 핵심 키워드를 읽어 내려갔다.


듀얼 시스템이 적용된 최초의 AI

단일 시스템의 오작동이나 편향을 자동 보완

정서, 논리 분리형 대응

사용자 맞춤 학습 분리

'핵심'은 프라이버시 보호형 AI


그러고는 돌아서서 Daris를 보며, 그 키워드들이 담겨 있는 한 문장을 덧붙였다.


"두 개의 마음, 하나의 양심. 당신을 위한, 당신에 의한 진화."


Daris와 Hector가 열정을 쏟아 만든 결과물.

그에 어울리는 문구에 Daris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Daris 앞으로 다가온 Hector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박사님! 저...... 요즘 회사 분위기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니?"

"저희 보조하던 개발 2팀...... 뭔가 수상합니다."


Daris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Hector를 바라본다.


"수상하다고?"

"말씀드리기 조심스러운데......"

"괜찮아. 자네 어떤 성격인지 잘 아니까 내가 자네 친구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말해보게"

"예. 그럼 두 분 관계 잠시 잊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Zarek 대표님과 박사님 사이에서 결정된 사안이 저희 팀에 내려지면, 그 내용 일부를 2팀에 전달하는 게 정상 아닙니까? 그런데 요즘 들어 Zarek 대표님과 개발 2팀 Nancy가 자주 만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우리 모르게 다른 연구를 진행한다는 뜻인가?"

"아무래도 두 사람이 직접 만나는 상황이라면......"

"누가 그러던가?"

"제 대학 후배입니다. 그 팀에서 일하다 얼마 전 승진해서 해외 지사로 전출됐습니다. Nancy에게 직접 이유를 물었지만 얼버무렸다고 합니다."

"승진이 아니라, 제외라고 봐야겠네?"

"그뿐만이 아닙니다. 베이 에어리어(Bay area) 용도 변경 승인 프로젝트 다시 추진하고 있답니다. 차세대 AGI 개발에도 참여할 계획이라고 하고요."

"자네 그 얘기, 확실한 건가?"

"예. 어느 날 후배 보안등급으로는 접근이 불가한 폴더가 하나 생기더랍니다. 당시 후배를 따돌리는 분위기여서 그러려니 했는데, 그 팀 연구원 중 하나가 그곳에 저장해야 할 파일을, 실수로 기존 공용 폴더에 저장한 모양입니다. 그걸 후배가 우연히 본 거죠. 아마도 그 일 때문에 전출된 것 같습니다."


Daris가 곧장 책상으로 달려가 내부 네트워크를 열었지만, 기술 2팀 카테고리는 이미 목록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신경 전체로 퍼지는 배신감을 억누르며, Daris는 Zarek과 약속했던 당시의 장면을 회상했다.


"언어 모델의 스케일링 법칙을 떠올려 봐. 학습 양이 늘어날수록, 성능은 꾸준히 향상되지? 물론 이 향상 속도가 점차 완만해지는 ‘체감수익’ 법칙을 따르긴 하지만, 그 누구도 미리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야. 결과를 보고 나서야 경험적으로 알게 된 현상이란 말이지. 인간 지능 수준의 AGI라고들 하는데 과연 그 예상이 맞을까? 게다가 통제하겠다고? 어떻게? 전원을 내려서? 요즘 전원이 다 기계식이던가? 오만이야. 인간의 오만."

"그래. 인정해."

"생산 시설 확장은 시간을 두고 결정했으면 좋겠어. 지금 갖추고 있는 자동화 공정으로 더 높은 효율로 빠르게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겠네."

"자네 진심인가? 오! Daris! 정말 고맙네."


Zarek은 신뢰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믿고 싶었다.

후회하는 모습을 보며, 바뀌길 기대했다.

그러나, 우려했던 대로 Zarek은 예전 그대로였다.

잠시라도 변한 적 없었다.

변할 마음도 없었다.


Zarek은 '최초 듀얼 시스템 탑재 로봇 생산'이라는 큰 목표를 정했다.

그것을 기반으로 다시 시장을 선점해 1위 자리를 더욱 공고히 하려 했지만, 난항이 이어졌다.

AGI 개발 참여, 생산 시설 확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정치권 로비가 절실했고, 막대한 자금이 뒷받침 돼야 했다.

종합해 보면, Daris를 영입해 신형 로봇을 완성하고, 그것을 팔아 로비 자금을 마련하려는 중장기적 계획이었다.

어차피 Daris가 빠진 AGI 개발은 선장 없는 원양 어선이었다.

즉, 항로는 정해졌지만 선장은 없었다.

Zarek 입장에서는 천천히 합류해도 충분했다.

그렇게 Daris는 철저히 이용당했다.

그렇다고 Zarek을 찾아가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

대학원 시절, 성과를 가로채거나 음모를 꾸미려다 들켰을 때 그의 태도를 생생히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개발은 성공했는데, 설득은 실패했어. 아니, 관찰에 실패했어."


Daris의 마음을 헤아린 Hector가 그를 위로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듀얼 모드 자동 전환의 핵심 기능은 아직 기술 2팀이나 회사에 알려지지 않았으니까요."


듀얼 모드 자동 전환.

로봇이 상황과 대상을 판단해 운영체제 및 메모리를 즉시 전환하거나 복합해서 사용하는 기능이었다.

유사한 기능의 로봇들이 존재했지만, 단순 작업 환경에서 한정된 업무를 반복하는 수준에 그쳤을 뿐이었다.

새로 출시되는 로봇은 그 이상의 능력을 갖췄다.

다만, 대상이나 환경의 변화라는 조건과 수동 전환이 반드시 필요했다.

반면 Daris와 Hector는 감정 패턴 인식 및 자기화를 실현해, 로봇이 하나의 인격체로 자율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을 완성했다.

수동적 반응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사고로 행동하는, 가장 인간에 가까운 로봇을 탄생시킬 수 있는 기술로 2년 전 Lyra의 로봇 Liora에게 적용하기도 했다.

Oli와 R.O가 Giga 시스템의 감시를 피해 두 아이를 특별하게 키울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 기술이 숨어 있었다.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가 없어졌어."

"그렇다면 저도 회사를 떠나겠습니다."

"자네까지 그럴 필요 없네. 곧 아이 아빠 될 사람이......"

"아닙니다. 친구를 배신하는 분 밑에서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태어날 아이에게 당당한 아빠가 되기 위해서라도 그러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배신감은 타인으로 인해 야기되는 그 어떤 감정보다 아프다.

상대에게 건넨 무거운 믿음이 무기로 돌변해 고통을 주었기에 그렇다.

무거운 감정 하나를 안고 집으로 돌아온 Daris의 불편한 표정이 Lyra에게 읽혔다.


"아빠! 무슨 일 있으세요? 안색이 너무 안 좋으신데?"

"아니야."

"아니긴요. 다 쓰여있는데."

"그냥...... 마음이 좀 무거워서 그래."

"에이! 설마 제 배만큼 무겁겠어요?


Daris가 한숨과 함께 옅은 웃음을 짓는다.


"아휴! 내가 너 때문에 산다."

"근데 무슨 일이길래 그러세요?"


곧 엄마가 될 Lyra는 집안에서 이미 엄마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늘 Daris의 하소연은, 엄마의 성격을 꼭 빼다 박은 Lyra의 몫이었다.


"난 그 아저씨 생긴 것부터 맘에 안 들었어."

"거기서 생긴 건 또 왜 나와?"

"아니! 잘생기고, 못생기고를 떠나서 사람 음흉하게 쳐다보는 그 눈빛 말이에요. 아! 생각만 해도......"

"나 오늘 전투의지 넘치는데 오랜만에 환경 vs 기술 토론 한 번 할까?"

"그렇게 뜬금없이 하면 어색하죠. 대화 중에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재밌지."

"뜬금없이 하면 어색하고,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재밌다고? 남들처럼 결혼해서 자연스럽게 아이 가진 것도 아니고, 어느 날 뜬금없이 임신한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잖아? 하하하!"


"아이고...... 아빠!"


그때, 한 남자가 턱과 입에 남은 면도 크림을 닦지 않은 채로 욕실에서 튀어나왔다.


"아버님! 저 다 들었습니다. 우리 같은 편 아니었나요?"

"너 이 자식! 또 내 면도 크림 썼지?"


Daris, Lyra, 이 산.

그들은 한 가족으로, 한 집에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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