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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 왕,
게임...... 인생을 반영하다

중독 탈출

by Sir Lem

EPISODE 1.


방금 검색했는데 그대로였다.


'황제 투어'


낮은 물가 동남아 국가에서 황제같이 지내고 온다는 여행 상품.

일정 중 하루, 이틀 골프를 포함하는 상품도 있긴 하지만 주목적은 유흥에 있다.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에스코트 명목으로 그 나라 여성 파트너가 붙고, 일정 내내 마치 연인처럼 지내며 함께 먹고, 마시고, 자는 패키지 상품을 말한다.

굳이 그런 상품이 아니더라도 왕이 된 기분으로 흠뻑 즐기다 가는 여행객들이 참 많았다.

유흥가 주변 호텔을 예약하고, 룸살롱과 비슷한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KTV에서 한국의 반도 안 되는 술값, 반의반만 줘도 관대해 보일 수 있는 팁을 부담 없이 날리며 우쭐대던 속물들.

나도 그랬고, 주변 모두 그랬기에 내가 뭐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유별난 기행으로 기억에 남는 누군가에 관한 얘기는 꼭 하고 싶다.

그자의 별명은 두꺼비. 누가 봐도 두꺼비였다.

굳이 묘사하자면 만화 슬램덩크에 나오는 강백호 친구, 뚱뚱하고 안경 쓴 녀석의 안경만 벗기만 딱 그 외모.

기존 손님의 소개로 처음 왔던 날부터 심상치 않았다.

사실 손님이 그에 대해 얘기할 때 주저하는 태도에 이미 께름칙했다.

예약 손님들 일정이 겹쳐 일손 부족으로 용병이 필요했고, 하는 일 없이 쉬고 있던 후배에게 용돈벌이나 하라고 케어를 맡겼는데 안 그래도 약해 빠진 녀석이 첫날부터 작렬하는 두꺼비의 횡포에 탈진한 나머지 금세 녹초가 되어 늘어지고, 그 모습이 안타까워 당장이라도 눕혀 영양주사 한 대 놔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테이블에 진득하게 앉아 게임을 해야 내 수익이 커지는데 잠깐 내려와 몇 번 찍어 먹고 튀기를 반복, 참 운 좋은 두꺼비.

딴 돈 들고 술집으로 줄행랑을 쳐 새벽이 돼서야 돌아왔다.

일주일 일정으로 와서 그렇게 지내기를 벌써 4일째, 손님 올려 보내고 돌아온 후배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에 웃음이 났다.

왜 그럴 때 있지 않은가? 내 부탁 들어준 친구나 후배가 지치고 애처로운 표정으로 돌아왔을 때 고맙고 미안한 마음 가득함에도 웃음이 나오는.


"흐흐흐 형이 죽일 놈이다."

"형님이 아니라 저를 먼저 죽여주세요. 너무 괴롭네요."

"아니 도대체 술집에서 어떻게 놀길래 그러냐?"

"일단 제일 큰 방 달라고 해서 여자들 꽉 채우고요, 남자 종업원들 다 불러서 한 명씩 노래시키고, 다른 애들은 춤추라고 하는데요 거기까지는 괜찮아요. 술 좀 들어가면 저한테 계속 한국 노래 부르면서 춤까지 추라고 하는데 정말 미치겠습니다. 형님"


목이 쉴 만했고 땀이 흐를 만했다. 8시에 나가 새벽 2~3시까지 연일 그랬으니.

괴상한 인격들의 갈라파고스 군도 카지노에서 오랜 기간 일하며 높은 인내의 벽을 쌓아 용인하는 삶을 살았지만 지나친 기행을 연일, 장시간 반복하는 이들의 심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음날 다른 손님들의 일정이 끝나 따라가 보기로 했다.

인내의 폭을 넓히기 위한 이해를 위해서였다.

행운의 두꺼비는 그날도 여지없이 이겼고, 7시 반이 조금 지나 술집에 도착했다.

막상 겪어 보니 보통 두꺼비가 아닌 킹 두꺼비. 거만하게 앉아 거들먹거리는 행세는 영락없는 왕이요, 술집 종업원들은 성은을 입은 백성이라.

나를 대하는 태도 역시 곱지 않았다.


"O 사장! 노래 하나 해!"


술 좀 들어갔다고 기습적으로 반말이다.

필리핀 현지인들을 속지주의로 대하는 건 이해하겠다만, 속인 주의로 대해야 할 나와 내 후배한테까지 왕 노릇 하려는 꼬락서니.

만기 제대한 후배는 화생방 훈련으로 체득한 강한 인내심으로 버텼을지 모르겠으나 군 면제의 나약한 나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필리핀 직원에게 전화하라고 문자 보내고, 전화가 오자마자 따갈로그로 혼신의 연기를 펼친 후 급한 일이 생겨 가봐야 한다는 핑계로 빠져나왔다.

대학 시절 살쾡이 같은 표정, 고양이 같은 싸가지로 공포감을 주던 소개팅 상대에게 핑계 대고 벗어났을 때의 해방감도 이보다 크지 않았다.


새벽 3시경,

급히 산소호흡기가 필요해 보이는 안색으로 돌아온 후배.


"큰일입니다. 형님"

"왜?"

"다음 주에 또 온답니다. 저 내일 한국 들어가야겠습니다."


그랬다. 두꺼비는 자주 왔다.

매 일정 매일 밤 술집에서는 연산군, 호텔 방에서는 의자왕이 되어 백성을 다스렸고, 후배의 피골은 나날이 상접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두꺼비의 길운은 점차 쇠하고 그 역시 그것을 실감했는지 게임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그렇게 나와의 관계는 끝났고 역관과 내시의 역할로 자신의 수발을 전담하던 후배와는 인연을 이어갔다.


"두꺼비 요즘 어떠냐?"

"아무래도 돈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습니다. 왕 노릇은 계속하고 싶은데 돈이 달리는지 가이드비도 깎자고 하고, 술집에서는 완전히 폭군입니다. 술집 애들도 지쳤는지 이제 슬슬 피하고 있어요."

"그나마 두꺼비는 현명하지. 도박은 끊었잖아. 도박에 전혀 관심 없고 오로지 유흥 목적으로 필리핀 들락날락하던 남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카지노 출입하는 이유가 뭔지 아냐? 한국에서 기 못 피고 살다가 여기 와서는 왕 대접받으니까 황홀한 거야. 그렇게 왕으로 계속 지내고 싶은데 돈이 달리니까 도박에 손대는 거지."

"그러게, 말입니다. 제 친구도 아껴 모은 돈으로 두세 달에 한 번씩 와서 술집만 다녔는데 한 달에 한 번 오기 시작하더니 생전 가지도 않던 카지노 출입하고, 나중에는 대출받은 돈 못 갚아서 신용불량자 됐지 말입니다."

"다들 착각하고 있어. 돈을 써야 왕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권력 있는 왕이 권력 쓴다고 그 권력이 사라지니? 돈은 권력하고 다르거든. 돈이 있을 때는 왕이야. 그런데 쓰면 그만큼 없어지니까 지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두꺼비의 지위도 낮아졌다.


짧은 간격으로 방문하며 매번 일주일 가까이 머물렀던 진격의 두꺼비는 방문 횟수를 급격히 줄여 나갔고, 급기야 가이드비조차 아껴야 할 형편으로 일정의 하루나 이틀 정도만 동생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1년쯤 지난 어느 날

내가 우연히 그를 다시 보았을 때, 두꺼비는 더 이상 두꺼비의 풍채가 아닌 마르고 성난 청개구리의 모습으로 카지노 테이블에 앉아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Episode 2.


"민족의 이름으로 그들을 처단하라!"


전쟁이 벌어졌다.

전쟁이라기보다는 일방적 살육에 가까웠다.

민족을 짓밟았던 원수들을 향한 통렬한 복수.


슬롯머신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대체할 만한 거리를 찾았고 그래서 고른 게 모바일 게임이었다.

킹덤 146, 한국 연맹에 속해 있던 나는 평화로이 자원을 수집하고, 작은 발전을 거듭하며 살던 평범한 농민이자 광부였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 연맹 모두는 드넓은 킹덤 146의 외곽, 공시지가 낮아 보이는 고요한 마을에서 외세와의 교류 없이 자급자족, 안분지족의 소박한 삶을 이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다국적 연맹의 무시무시한 하이레벨들이 우리 주변으로 순간 이동하더니 일순간 우리 영토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침략 알람에 놀라 접속한 연맹원 모두 아연실색으로 그저 고통의 순간이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검붉은 드래건을 앞세우고 강력한 보병, 기병, 궁병, 투석기를 두루 갖춘 군단이요 우리는 이제 갓 부화한 아기용에 호미, 곡괭이와 다를 바 없는 허름한 무기를 손에 든 농민 의병에 불과하니 그야말로 아이와 어른의 싸움.

분노에 치가 떨렸다.

농경, 수렵, 채굴을 통해 모았던 자원을 털어 가는 건 이해하겠지만, 이제 막 훈련소에 입소한 어린 내 학도병들을 무참히 도륙하는 만행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다.


"연맹장님! 쟤네 다 잡아 죽이려면 아이템 얼마나 사야 해요?"

"저 연맹에서 제일 높은 레벨이 20이고, 용 업그레이드, 갑옷, 무기까지 하면 음...... 150만 원이면 가능할 거예요."

"그래요? 여러분! 오늘부터 딱 이틀 동안만 보호막 쓰고 지냅시다. 제가 이틀 뒤에 저놈들 다 작살내 버릴 테니까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연맹 채팅창에 '이제 더 이상 희망이 없네', '나는 접어야겠네' 하던 연맹원들의 재기를 독려해 이내 살기를 품게 하고, 곧바로 직원에게 전화했다.


"10만 페소 들고 가서 그 돈 다 로드 사 와라"

"10만 페소 다 삽니까?"

"어. 다 사서 껍질 벗겨 놔"


몇 가지 방법으로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었지만, 로드라 불리는 필리핀 선불 전화카드로 결제하기가 환율상 가장 유리했다.

10만 페소면 당시 한화 270만 원. 모조리 아이템에 처바를 작정이었다.

방에서 내려와 사무실에 도착하니 한국 직원, 필리핀 직원 할 것 없이 모두 동전을 들고 전화카드 PIN 번호 위를 바쁘게 긁고 있었다.

500페소짜리 200장. 긁는 작업도 문제지만 일일이 전화해 충전할 생각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끝나면 맛있는 거 시켜줄 테니까 이거 너희 폰에 충전해서 내 폰으로 보내 흐흐흐"


방에 도착할 즈음부터 500페소 충전됐다는 문자 폭탄이 터지고, 미리 설계했던 강철군단으로 만들어 줄 아이템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중국계 회사 게임이었는데 때마침 추석 직전이라 Thanksgiving day 할인 패키지 행사.

시대적 기운마저 우리의 복수를 돕고 있었다.

몇 시간에 걸친 결제와 업그레이드 작업을 마친 후, 공갈 젖 물고 있던 아기용은 시커먼 X-large 드래건으로, 농사짓던 영농후계자들은 낫과 호미 대신 첨단의 비대칭 전력으로 무장한 강철 군대로 거듭났다.

애초 ' 속궁합'이었던 닉네임을 'Straw'로 바꾸고 연맹원들에게 작전 개시일을 알리며,


"모레 오후 3시에 공격합니다. 유럽은 일요일 이른 아침이고 북미는 새벽이니 그놈들 자고 있을 겁니다. 그때 함께 치러 가시죠"

"근데 왜 닉네임은 Straw로 바꾸신 거예요?"

"Straw가 뭡니까? 빨대죠? 저놈들이 우리 자원 모조리 약탈해 갔습니다. 우리도 가서 약탈해야죠. 저놈들 라면 수프 봉지에 묻은 마지막 수프 가루조차 물 타서 빨아먹고 집안에 고춧가루 하나 없이 거지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각오로 바꾼 겁니다. 싹 다 털어 와서 나눠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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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신상담의 이틀을 보내고 드디어 D-day.

상대의 눈을 피해 킹덤 한구석에 숨겨 놓았던 요새를 본진으로 옮기고 무장을 점검했다.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다국적 연맹을 향해 순간 이동, 우선 상대 모든 연맹원의 각 요새를 공격해 그들의 병력을 말살한 뒤 우리 연맹원들을 불러 자원을 약탈하게 했다.

그간 여기저기 얼마나 많은 연맹을 치고 다녔는지, 녀석들의 차고 넘치는 자원을 긁어모으는 데 한참이나 걸렸다.

개선장군이 되어 연맹으로 돌아와 약탈한 자원을 고루 나눠주고, 그에 탄복한 연맹원 모두의 뜻에 따라 연맹장에 즉위하게 되었으며, 그 즉시 연맹 이름을 고구려로 바꿨다.

이후 돈을 더 처발라 횡포와 노략질을 일삼던 킹덤 최고 레벨과 그 녀석이 속했던 중국 연맹마저 작살내 킹덤 146의 통수권자가 되고, 2주마다 열리는 다른 킹덤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우리 킹덤을 지키는 동시에 다른 두 킹덤을 정복했으며, 태평성대의 선정을 실현해 널리 백성을 이롭게 하는 왕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했다.


왕좌를 지키기 위해 꾸준히 지출하며 온종일 휴대폰 붙들고 지내기를 1년.

현실에서의 자금 압박으로 아이템 하나 사기 벅찬 시련이 찾아오고, 중복되는 할인에 기존에 샀던 고가의 아이템은 똥값이 돼 부담 없이 살 수 있게 되자 하나둘씩 기어오르는 녀석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왕위 찬탈을 모색하는 반역의 움직임마저 감지됐다.

하지만 손쓸 도리가 없었다.

남들보다 먼저 많이 사서 왕좌에 올랐고, 그 권세에 취해 자리를 유지하려는 욕심으로 새로운 아이템이 출시될 때마다 얼마 건 간에 즉시 사들였건만, 이제는 내가 지출한 금액의 5분의 1이면 나만큼 갖추게 되는 보편, 평등 시대의 도래.

마지못해 왕좌에서 내려와야 했고, 연맹이 공격당하면 잠든 척해야 했으며,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희미한 보호막까지 뒤집어쓰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즈음 현실에서나 게임 채팅창에서나 넋 놓고 지껄이기를


"내가 왜 이렇게 됐냐?"




동경하는 삶이 목표를 유지하고 좇게 만드는 원동력임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무엇을 동경하느냐의 문제.

더 높은 지위와 더 많은 재물, 더 해박한 지식과 같이 긍정적 발전의 미래에 대한 동경이라면 그 누구든 격하게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잘 풀린 집 잔칫날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면 그런 자세가 옳다.

하지만 필수 불가결이 아닌 단순 편의, 열등감 발로에 의한 과욕, 일시적 욕망 충족을 위한 유희와 쾌락을 향한 동경이라면 거침없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싶다.

말 안 듣고 후회하는 사람 뒤에서 비웃는 통쾌함을 얻을 자격은 그래야 생긴다.


'손님은 왕'이라 하였다.

또 '오실 땐 단골손님, 안 오시면 남'이라고도 했다.

돈 들고 사 먹으러 가면 왕이요, 안 가면 남이다.

못 먹는 서러움이야 있겠다만, 남이 되면 돈이 굳고 때로는 시간도 절약된다.

앞서 두 에피소드에 나오는 왕의 의미와 연관 지어 말하자면 안 가도 됐고 안 해도 됐으며 돈과 시간 모두 낭비할 필요 없었다.

즉, 두꺼비와 나는 헛된 일, 헛된 자리를 동경했고, 중독되었으며, 헤어 나오지 못해 과소비해야 했다.

중독이라 하니 술, 마약, 도박 등의 치명적인 것들을 떠올리며 부정할지 모르겠지만, 커피를 통한 카페인이나 쌀·밀가루 등의 탄수화물을 습관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자주 섭취하는 경향 역시 중독에서 비롯된다.

자기 판단에는 사소해 보이고 자신의 통제 아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며 안심해도 다른 이의 관점에서 지나치다고 여겨지면 깊건 얕건 간에 중독은 중독이다.


중독은 '절대적 필요'라는 망상에서 초래한다.

그리고 절대적 필요는 앞서 언급한 필수 불가결이 아닌 단순 편의, 열등감 발로에 의한 과욕, 일시적 욕구 충족을 위한 유희와 쾌락을 대상으로 한다.

이를 하나씩 살펴보자면,


1. 필수 불가결이 아닌 단순 편의


'귀찮아서' 그리고 '불편해서' 돈으로 해결하려는 습관이 이에 해당한다. 행위의 주체를 더욱 나태하게 만들어 소비를 체증시키는 결과를 불러일으키는 유형으로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양상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시켜 먹기 시작하면 계속 시켜 먹고 싶고, 버스·지하철 갈아타기 불편하면 택시 사용 횟수를 늘리며, 누군가에게 맡기는 게 버릇되면 대행료의 합은 커진다. 대형 언어 모델에 의한 인류 탐구 능력 결여의 징조인지 직접 찾아 해결하려는 노력도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어제 어느 공인중개사가 이런 말을 했다.


'청약 관련 홈페이지나 부동산 앱 조금만 뒤지면 분양 예정 단지, 가격 다 나오는데 비싼 돈 내고 강의 들을 필요 있나?'.


근래 일각의 분위기를 꼬집는 말에 공감했다.

검색 몇 번 하고 받아 적어 외우면 간단히 익힐 만한 얄팍한 지식을 돈 받고 강의하는 또 그 강의를 찾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중독의 부작용이다. 가정주부들이 편해 보인다는 이유로 샀던 물건이 몇 번 안 쓰이고 수납장에 처박혀 오히려 공간 사용의 불편을 초래하는 일들이 반복되는 아이러니 역시 매일반. 편리 추구는 시간 절약효과를 동반하는 매력으로 나날이 인간 기능 점유 지분을 늘려가고 있다. 역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인간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 불편을 감수하고 몸소 행하다 보면 육체와 정신이 건강해지고, 더불어 지적 능력의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살아보니 그런 결론이다. 인간답게 살자.


2. 열등감 발로에 의한 과욕


능력과 여건에 걸맞지 않은 사치품을 사들이는 습관은 열등감에서 벗어나려는 심리에서 비롯한다는 의견이다.

부재와 소유 상태의 차이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은 가진 사람 혹은 가지고 있는 상태의 본인에 대한 열등감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극복하게 위해 구입한다는 논리로써 말이다.

선배와 학원을 운영하던 시절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보험설계사가 찾아왔다. 그가 명함을 내밀 때 보이던 지갑을 시작으로 벨트, 시계, 구두, 정장 등이 모두 명품이나 그 언저리의 고가 브랜드였다. 원생들 등·하원 시에 발생하는 사고를 보장하는 월 몇만 원짜리 상품을 소개하는 영업직치고는 너무 화려하길래 물었다.


"원장님 말씀대로 보험은 가입하기로 하고요. 궁금해서 그러는데 혹시 일하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저 이제 한 달 정도 됐어요."

"그럼 그 명품들은 다 어떻게 사신 거예요?"

"카드 긁었죠. 흐흐흐"


나를 설득하는 데 있어 명품이나 고가 의류가 끼친 영향은 0이다. 같은 상품을 같은 조건으로 판다는 전제 아래 그런 겉치레에 지갑을 여는 고객 보다 약간의 긴장 섞긴 호흡으로 외운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이해시키려는 그 열정에 계약을 결정하는 이들이 더 많으리라 본다. 그런 맥락에서 카 푸어(Car poor)나 플렉스(Flex) 등의 용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 주술에 의한 만족 혹은 정신 승리를 멋이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포장해 봤자 성공을 바라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에는 순서를 거스르는 역행으로 비칠 뿐이다. 차고에서 사업을 시작한 재벌은 봤어도 포르셰 위에서 사업 시작한 재벌은 듣도 보도 못했다. 타인의 성공 결과를 시작의 필수로 여기는 역행자들은 남들 시선에 노출되는 외향 전체를 치장하려는 경향이 짙다. 이미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유혹을 이기지 못해 샀더니 남들이 부러워하고, 그 뿌듯함에 취해 또 다른 사치품을 사들이며, 여유 있는 친구들을 자주 만나 어울림으로써 그 생활을 응당한 자격·행복이라 여겼음이 자명하다. 평범했던 지난날이 졸지에 열등한 삶으로 격하하는 반전.

외모에 치중하다 보면 내면에 소홀하기 마련. 내적 역량의 성장은 요원해질 뿐이다.


3. 일시적 욕구 충족을 위한 유희와 쾌락


술, 성욕, 도박으로 인해 나락의 길로 접어든 이들은 부지기수다. 셋 다 즐기는 종합적 타락으로 망가진 이들의 수도 어마어마하다. 술은 안락(安樂)을 위해 마시고, 건전하지 않은 만남의 잠자리는 쾌락(快樂)을 위해 가지며, 도박은 오락(娛樂)을 목적으로 하지만 결론은 나락(奈落)이다. 즐기기 위해 돈을 쓰며 행하는 일들.

정말 안타깝다. 덜 행복한 상태이거나 그만한 행복을 가져다줄 대용·대체재를 찾지 못했다는 의미일 테니 말이다. 그나마 술은 '적당히'라는 비용, 용량의 한도에서 생활과 관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약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다른 두 가지는 허용범위를 말하기조차 무색하다.

어쨌든 셋 다 중독성이 크다. 금단현상 즉, 동경의 몸부림 또한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이는 현실도피 욕망과 궤를 같이한다. 내 마음이 편해지고, 내가 여자를 고르며, 내가 승자가 되는 시간과 횟수가 많아질수록 내 현실은 쪼그라들고 나 자신은 점점 초라해진다. 일상의 불만을 일상에서 해소해야 하건만 일상 밖에서 해소하려는 습관이 일상에 더 큰 불만을 품게 만드는 악순환.

술, 유흥업소, 도박 공교롭게 셋 다 남들이 권하는 일들이다. 남이 내게 무엇을 권하는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지 않거나, 내 것이 부족하거나 혹은 나쁘다는 의미. 결국 자신을 제압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일상을 손보고 밀도 있게 채우는 수밖에 없다.


형편, 분수, 금기를 거스르며 그럴 필요 없는 일, 과해서는 안 되는 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절대적 필요 영역으로 끌어들여 만족을 추구하는 상황이 반복될수록 현실과의 괴리감은 깊어질 뿐이다. 그에 따라 현실도피의 해방감은 커지기 마련인데 이는 추락하는 현실 만족도로부터의 기저효과 때문이다.

자기애, 자기 연민에 깊이 빠져 자신에게 베푸는 호의를 지나치게 반복하면 그것이 곧 중독이요, 증상이 심해지면 책임과 의무 없는 권리로 착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그러니 자신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버리자. 왕이라는 생각도 하지 말자.

꿈은 키우고 주머니는 줄이며, 모으는 일상 겸손한 일상 건전한 일상을 채워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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