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 없는 남자가 부사를 만났을 때

소위 에세이,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를 읽고

by 잉여력만렙 휴미씨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다. 인간에게 언어가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를 넘어, 존재를 드러내고 삶을 영위하는 근본적 터전이라는 뜻이다.


요즘 각광받는 챗GPT 역시 언어를 매개로 작동한다. 챗GPT의 LLM(Large Language Model), 즉 거대 언어 모델은 방대한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해 문맥을 기반으로 다음 단어나 문장을 예측한다. 그러나 AI는 언어를 계산적 모델로 다룰 뿐, 그 안에 존재를 담거나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하이데거의 선언은 인간에게만 유효하다. AI에게 언어란 집이 아니라, 설계도면이며, 단순한 연산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소위 작가는『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에서 복잡한 언어 체계 중 부사를 콕 집어, 언어는 존재를 넘어 삶의 태도라고 말한다. 그는 부사를 통해 인간의 감정과 뉘앙스, 그리고 삶을 대하는 자세를 세밀하게 포착하며, 언어가 단순한 집을 넘어 삶을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임을 강조한다.


내가 처음 글쓰기를 배울 때 부사는 글을 망치는 주범이라고 배웠다. 스트렁크 & 화이트의 『The Elements of Style』 같은 고전적 스타일 가이드에서 부사 남용은 늘 경계 대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좋은 문장은 구체적인 동사와 명사로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는 매우 빠르게 달렸다. → 그는 질주했다.

그녀는 아주 슬프게 울었다. → 그녀는 흐느꼈다.


부사를 빼면 문장은 더 직접적이고, 강렬해진다. 군더더기를 덜어낸 문장은 독자에게 더 정확하게, 더 강하게 다가간다.


그러나 소위 작가의 시선에서 본다면, 부사는 단순한 문장 장식이 아니라 인간 존재와 태도를 드러내는 섬세한 언어적 숨결이다. 글쓰기 기술 측면에서는 부사를 절제해야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부사를 통해 삶의 결과 감정의 결을 읽어낼 수 있다. 글쓰기에서 부사를 어떻게 다룰지는 기술과 태도, 정확함과 뉘앙스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깊은 고민을 요구하는 것 같다.


부사만 보면 경기를 일으켰던 나는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를 읽으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나의 글쓰기가 문제가 아니라 나의 삶에 부사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목적을 위해서 "돌격 앞으로"만 외쳤지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삶의 문장은 단순하고 강렬했지만, 그 안에는 감정의 곡선도, 뉘앙스의 숨결도 없었다. 소위 작가가 말한 부사는 단순한 글쓰기 장치가 아니라, 삶의 태도와 결을 결정하는 언어적 숨결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결국 글쓰기에서 부사를 어떻게 다룰지는 문장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강렬함만을 좇던 내 문장과 내 인생에, 때로는 머뭇거림, 망설임, 그리고 부드러운 곡선이 필요했음을. 부사는 군더더기가 아니라, 삶을 숨 쉬게 하는 작은 숨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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