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위의 짚신과 똥, 어느 쪽이든 유쾌하지 않다

by 잉여력만렙 휴미씨

카뮈는 소설 『이방인』을 통해 인간의 부조리를 고발한다. 다른 이유도 아닌 고작 햇볕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 뫼르소는 그 상황에서 자신의 부조리함을 발견한다. 처음부터 부조리한 인간은 없다. 세계와 인간은 그 자체로 부조리한 것은 아니다.


세계는 인간에게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제공하지 않는다. 합리성을 추구하는 인간과 비합리적인 세계의 사이에 섰을 때, 비로소 부조리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근원적 문제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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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할까.

뫼르소는 억울하다.

인간은 억울하다.

태어난 이유를 몰라서, 죽는 이유를 몰라서 억울할 뿐이다.


카뮈는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부조리에 대해 한마디로 이렇게 말했다.

"부조리는 인간이 세계에 던지는 열렬한 외침과 그 외침에 대한 세계의 침묵에서 비롯된다.”


카뮈보다 훨씬 먼 먼 옛날에 달마는 동쪽으로 가면서 자신의 부조리함을 깨닫는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다는 소문을 듣고 중국 위 황제는 친히 그를 영접하러 나간다. 그러나 위 황제는 달마를 보고 실망한다. 석가의 직계제자로서의 풍모를 기대했지만 달마의 모습은 너무 볼품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칠 척 장신에 대머리에다 얼굴은 수염으로 뒤덮여 있고 왕방울만 한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짚신 하나를 벗어 머리 위에 올려놓았으니 더욱 괴이해 보였다.


"당신은 왜 발에 신고 다니는 짚신을 머리에 이고 있습니까?" 위 황제가 물었다.


"저는 본래 불합리한 사람입니다. 저를 통해 황제의 굳은 마음을 깨뜨리고자 한 것입니다. 마음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누구도 자신을 알 수 없으니까요." 달마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홀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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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는 자신의 부조리함을 깨닫고 그 부조리를 초월하기 위해 9년간 면벽 수행을 했다. 카뮈에 비하면 달마의 그릇이 더 큰 것일까.


하지만 여기 카뮈와 달마도 넘어선 두더지 한 마리가 있다. 두더지는 땅 속에서 기어 나오자마자 누군가 자신의 머리 위에 똥을 싸는 상황을 맞게 된다. 두더지는 결코 자신의 의지로 똥을 뒤집어쓴 것이 아니다. 이 부조리하고 억울한 상황, 두더지는 범인을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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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들이 좋아하는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는 두더지를 통해 동물들의 다양한 모습의 똥을 학습하는 동화책이다. 물론 범인을 잡기 위한 스토리에 빠져들면서 추리력도 향상될 것이다. 하지만 이 동화책을 대하는 어른의 자세는 두더지가 자각한 부조리성에 대해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카뮈는 인간과 세계의 부조리를 깨닫고, 그 억울함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존재를 이야기했고, 달마는 부조리를 자각한 뒤 수행을 통해 그것을 초월하려 한 존재였다. 반면 두더지는 부조리를 인식하고도 끝까지 탐구하며 질문을 멈추지 않는 순수한 존재이다.


모든 인간은 ‘왜 태어났는가’, ‘왜 죽어야 하는가’라는 부조리에 직면한다. 이 억울함은 실존적 조건이며, 각자의 방식으로 이 부조리에 응답할 뿐이다. 어쩌면 가장 순수하고 용기 있는 태도는 두더지처럼 멈추지 않고 “왜?”라고 묻는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