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헬벨과 들뢰즈, 그리고 ‘그대만 있다면’
음악을 듣다 보면, 마음이 오래 머무는 순간이 있다. 카하라 토모미의『あなたがいれば(그대만 있다면)』도 그렇다. 이 노래는 한국의 듀오 ‘일기예보’가 부른 『그대만 있다면』이 원곡이다. 그래서인지 처음엔 익숙한 멜로디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멜로디가 감정을 반복해서 건드린다. 그러다 보면, 똑같은 말이 점점 다르게 들리기 시작한다.
그 이유가 뭘까. 그건 이 노래 안에, 반복이라는 감정의 장치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밑바닥에는 파헬벨의 캐논이 깔려 있다. 같은 코드가 순환하는 클래식한 구조.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반복이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들을 때마다 감정이 조금씩 자라나는 중독성이 있다. 이건 단지 코드의 반복이 아니라, 정서의 시간성을 만들어내는 반복이다.
가사 역시 마찬가지다. ‘あなたがいれば’라는 문장이 반복된다. 처음엔 단순한 애원 같지만, 반복될수록 그 말의 무게가 달라진다. 같은 구조의 다른 뉘앙스가 점점 깊어지는 감정을 쌓아 올린다. 일종의 수사적 캐논이다.
게다가 'ずっと(계속)'과 'もっと(더)'는 같은 어미(-っと)를 가진 부사로, 사랑의 지속과 결핍을 나란히 세우며 정서적 긴장을 만든다. 이건 그냥 라임이 아니라, 그리움이 반복될 때 생기는 정서의 리듬이다. 즛또, 못또라 발음되는 단어는 대구를 이루며 부드러운 확신과 간절함을 표현한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반복은 동일성의 반복이 아니라, 끊임없이 차이를 만들어내고 생성하는 과정이라 했다. 그 말처럼 이 노래도 반복을 통해 감정을 바꿔간다. 반복되는 ‘그대만 있다면’이라는 문장이 처음엔 바람이고, 두 번째는 설득이고, 세 번째는 간청이고, 마지막에는 기도처럼 들린다.
반복이 감정을 진화시키는 것. 그래서 이 노래를 듣는다는 건 하나의 문장을 계속(ずっと) 들으면서 그 문장이 점점 더(もっと) 변해가는 걸 체험하는 일이다. 같은 말을 반복하지만, 그 말이 지닌 감정은 시간과 함께 쌓여간다.
결국 ‘그대만 있다면’이라는 문장은 같은 자리에 멈춰 선 말이 아니다. 그건 마음의 어딘가를 맴돌다가, 반복될수록 조금씩 다른 감정으로 되돌아오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말을 듣는다는 건 단지 음악을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감정이 어떻게 성장하고, 흔들리고, 버티는지를 체험하는 일이다.
https://youtu.be/PfPteE-KCpE?si=QSMjl8CfPzpYFB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