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말한다.
“우리 마음속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싸우고 있단다. 하나는 분노, 시기, 탐욕, 오만, 원한, 열등감의 늑대이고, 다른 하나는 기쁨, 사랑, 희망, 평화, 겸손, 연민의 늑대란다.”
손자가 묻는다.
“어느 늑대가 이겨요?”
할아버지가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긴단다.”
두 마리 늑대 이야기는 체로키 인디언의 오래된 우화이다. 단순한 구성 안에 인간 본성의 본질을 담고 있어 강렬한 인상을 준다. 비슷한 예로 우리는 어깨 위에서 귓속말을 건네는 천사와 악마를 상상할 수 있다. 자기 안의 선과 악, 충동과 이성, 이기심과 연민이 끊임없이 속삭이며 갈등하는 모습 말이다.
오늘 뽑은 ‘소드 2’는 이 우화의 상황에 가장 부합되는 타로 카드일 것이다. 검 두 개를 교차시킨 채 눈을 가리고 앉은 인물은, 마음속의 두 목소리 사이에서 결정을 유예한 채 균형을 잡으려 애쓰고 있다. 그녀는 선과 악, 이성과 감정, 욕망과 양심 사이에서 머뭇거린다. 두 마리의 늑대가 동시에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어느 쪽에게 먹이를 줄지 결정하지 못한 채 앉아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혹은 극단적으로, 한 마리의 늑대는 그녀의 칼에 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심리학에서는 어떤 대상에게 서로 대립되는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것을 양가감정이라 한다. 사랑하지만 미워하고 가까우면서 멀어지고 싶은 감정, 즉 애증은 가장 흔한 예이다. 이처럼 선과 악 사이에서 끊임없이 요동치는 감정의 진폭 안에서 이 이야기는 더 깊은 물음을 던진다.
그러나 선과 악, 흑과 백으로 나뉜 단순한 이분법만으로는 우리 마음의 진짜 갈등을 설명하기 어렵다. 우리는 늘 착한 늑대에게 먹이를 주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분노와 시기, 질투 같은 감정도 때론 너무도 익숙하고 매혹적이다. 여기서 딜레마가 시작된다.
두 마리 늑대 이야기는 하나의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심리학과 철학의 주제가 들어 있다. 감정 조절, 주의 집중, 습관 형성, 정체성 선택, 그리고 결국엔 ‘나라는 사람을 내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물음까지. 그래서 이 이야기는 수많은 버전으로 변주된다.
그중에 특히 두 마리 모두에게 먹이를 줘야 한다는 이야기 또한 신선한 충격이자 뜻밖의 전환을 제시한다. 선한 늑대만을 키우려는 시도는 때로 현실을 회피하게 만들고, 악한 늑대를 무시하는 태도는 그림자를 더 깊게 만든다. 분노도 필요할 때는 정의감이 되고, 열등감도 방향만 바뀌면 성장의 연료가 된다. 결국 중요한 건 어느 한쪽을 없애는 게 아니라, 둘 모두를 인식하고 균형을 잡으며 언제 어느 늑대에게 말을 걸지 아는 지혜일 것이다.
다시 쌍검을 들고 있는 소드 2의 여인을 바라본다. 나는 라이더 웨이트의 고전적인 기준에 벗어나서 상상한다. 그녀는 왜소한 체격에 비해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는 두 개의 검을 단단히 쥐고 있다. 그 자세는 방어가 아닌 공격에 집중된 검객의 태세다. 스스로의 안전조차 포기한 채, 무엇인가를 꿰뚫어 내려는 결의가 느껴진다. 더구나 그녀는 눈을 가렸다. 육안이 아닌, 심안으로 보겠다는 듯이.
나 또한 눈을 감고 심안에 집중해 본다. 늑대는 싸우고 있지 않고, 그저 존재할 뿐이다. 늑대는 내가 아니다. 싸움을 만드는 건 내가 먹이를 주기 때문이다. 양가감정은 그렇게 내 안에 공존한다. 그 감정들이 나이면서 내가 아니라는 깨달음. 조정하려 하지 않고 관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