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분석인가, 지적 태만이 부른 촌극인가

트렌드코리아 2026을 읽고

by 잉여력만렙 휴미씨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고 한다. AI는 아직 불안정하고 인간의 통찰력과 윤리적 판단을 따라올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이 AI를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켄타우로스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트렌드코리아 2026은 제시한다. 인간의 머리가 켄타우로스의 상체가 되고 AI의 기술력이 켄타우로스의 하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0여 년간 연말의 서점가를 점령하고 있는 트렌드코리아 시리즈가 못마땅한 나의 입장에선 이 책의 오류가 눈에 차일 정도로 넘쳐난다. 사실 오류는 있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책을 제작하는 팀의 지적 태만이다.


켄타우로스형 인간은 사실 새로울 것도 없다. 1997년 "체스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가 제안한 이 개념은, 인간과 컴퓨터가 한 팀을 이루었을 때 최고의 인간이나 최고의 컴퓨터를 모두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널리 알려졌다."라고 트렌드코리아 2026에서도 밝히고 있는 바, 이 개념은 이미 30년 전의 낡은 개념이다.


이것은 AI 시대에, 업데이트되지 않은 윈도 95가 탑재된 컴퓨터를 잘 활용하라는 말과 같다. 올해가 말의 해니까 켄타우로스를 억지로 가져다 붙인 느낌이다.


트렌드코리아팀은 AI포비아에라도 걸린 것일까? AI의 기술력은 특이점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인간이 머리가 되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


바둑을 예로 들어보자. 이세돌과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이 끝나고 현재 바둑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초기의 알파고는 인간의 기보를 보며 학습했다. 당시 바둑 전문가들이 알파고를 이창호에 비교한 것은 타당한 추론이다. 하지만 그 후 알파고의 후속 버전은 인간의 데이터를 삭제하고 스스로 학습하여 인간을 압도하고 있다.


더 이상 인간의 정석은 의미가 없어지고 스승에게 바둑을 배울 필요도 없어졌다. 오히려 AI에게 바둑을 배우고 모든 사람들이 AI처럼 바둑을 두려고 한다.


바둑계만 그럴까? 아니다. 에이전트 AI와 피지컬 AI를 논하는 시점에서 트렌트코리아는 헛다리를 짚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19세기 영국에서 자동차가 위험하니까 자동차는 빨간 깃발을 든 사람을 따라가라는 '적기조례' 아닌가. AI는 이미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곳으로 진화 중인데 인간이 빨간 깃발을 들어야 한다고?


더구나 트렌드코리아팀은 인문학적 소양도 없는가. 켄타우로스라니. 그리스 신화의 켄타우로스는 본능을 통제하지 못하고 난동을 부리며 여자를 납치해 강간하는 '야만과 폭력'의 상징이다. 그중에 오직 헤라클레스의 스승인 '케이론'만이 이성과 지혜를 갖췄다. 그렇다면 켄타우로스가 아닌 케이론을 콕 짚었어야 했다. 이것은 그럴듯한 영어 단어(Acronym) 맞추기 놀이에 빠져, 본질을 놓친 참사다.


결국 이번 2026년의 '켄타우로스'는 게으른 기획과 얕은 지식이 결합된 '키메라(괴물)'일뿐이다.


우리는 매년 반복되는 이런 말장난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유행하는 단어를 쫓는 대신,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과 자본의 흐름, 즉 '불역유행(不易流行)'의 가치를 꿰뚫어 보는 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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