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버스를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첫날은 앞으로의 출근 시간을 결정짓는 중요한 실험의 시간이다. 집을 나선다. 버스 어플로 시간을 확인하다. 버스를 탄다. 도착한다. 첫 실험의 결과물들을 도출해 본다. 이 정도면 15분 정도 늦게 나와도 될 것 같다. 둘째 날은 15분 정도 늦게 나갔고 시간은 생각보다 타이트했다. 새로운 결론, 10분 정도가 딱 정확하겠군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시간이 결정되었다.
시간에 익숙해지자 풍경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같은 시간 같은 사람들로 버스는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렇게 붐비다가도 어느 순간 느슨해지기도 하고 텅 비어지어는 하루의 버스처럼 나의 하루도 바쁘게 흘러가다가 한 숨 돌리다 보면 어느새 공허해지다가 어둠 속에 그 하루를 정차시켰다.
오지 않는 버스는 없었고 도착하는 않는 버스는 없었다. 조금 어긋나는 건 배차 간격 정도였다. 그래서 버스를 놓치더라고 걱정이 없었다. 보장된 미래가 주는 안정감이라는 것이 이런 걸까. 매일 따박 들어오는 월급같이, 정년을 보장해 주는 직장 같이, 주택청약 같이, 불확실한 것들을 하 나 둘씩 선명하게 그려나가듯이 말이다.
이렇게 살기는 싫다고 투덜거리며 하루하루를 보내다 또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것 같아서 원래 인생이 이런 거야 외친다. 오늘도 버스에 타 출근하는 사람들, 학교를 가는 사람들, 운전하는 기사, 같은 표정으로 같은 장소에서 올라타 앉을자리를 바로 찾는 것으로 하루의 시작에 위안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