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를 공부하기 위해 핑계가 필요했다
홍대, 거리 그리고 빈 캔버스
20대까지 난 홍대 근처에 살았다. 클럽과 인디음악으로 유명한 바로 그 홍대 맞다. 그런데 바르고 정직한 나의 옷차림 때문인지, 예나 지금이나 내 삶의 베이스가 그곳이었다고 말하면 다들 조금 놀라곤 한다. 그러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정말 홍대 앞에서 자랐다. 단, 클럽과 인디음악이 뭔지 모른 채 살았을 뿐.
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때문에 홍대가 인디음악과 클럽의 중심지가 되었을 때에도 내게 홍대는 여전히 화실과 화방이 있는 곳이었다. 근데 학원비가 너무 비쌌고, 그림 그려서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예술을 부르짖다 굶어죽을 순 없다. 그럼에도 난 돈이 생기면 화방에 가는 걸 좋아했다.
미술과 상관없는 대학에 들어가서도 흰 캔버스와 유화물감 냄새, 스케치북을 스치는 연필의 소리가 그냥 좋았다. 나보다 훨씬 키가 큰 언니 옷을 포대처럼 입고 다니고, 도시락 싸들고 다닐 정도로 씀씀이가 적었지만 대학생이 되어 처음 큰돈(50만원)이 생겼을 때 그 돈을 고스란히 미술학원비와 화구 구입비에 쏟아 부었다. 스케치북을 들고 미술학원을 들어서는 게 얼마나 설레던지.
헌대 매주 세 번씩 간 그 곳은 알고 보니 입시생들이 ‘맞아가며’ 그림을 배우는 학원이었다. 당시 거의 모든 미술학원이 데생부터 동양화까지 그렇게 그림을 가르쳤다. 분단위로 목표량을 채웠는지 검사 받는 입시생들 사이에서 나는 ‘행복한 취미생’이었지만, 살벌한 그곳에서 혼자 유희할 순 없었다. 예술은 전혀 ‘멋지지’ 않았다.
90년대 후반, 낸 돈이 아까워 꾸역꾸역 미술학원을 다녔던 그 즈음에 홍대와 구청이 손을 잡고 ‘거리 미술전’이란 걸 했다. 단 2주 만에 늘 다니던 골목길의 허름한 담엔 연화무늬가 생기고, 좁고 어두운 골목 계단엔 깨진 타일 조각을 붙여 만든 여인의 열굴이 생겼다. 십여 년을 다니면서 한 번도 주목하지 않았던 담, 한 번도 올라가지 않았던 좁은 계단이 전혀 새롭게 느껴졌다. 그 담을 만져보고, 그 계단을 걷고 싶었다. 설명할 순 없었지만 뭔가 멋져보였고 홍대 골목골목이 어떻게 변할지 설레었다. 역시 예술은 멋지다!
‘거리미술전’의 마지막 날, 홍대 거리에선 축제가 벌어졌다. 홍대 정문부터 이어지는 대로를 막고 풍물패가 지나가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친구들과 그저 신기하게 그 풍경을 보았다. 월드컵과 촛불 시위 이전에 도로가 놀이터로 변하는 걸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암튼 그 때 신기하게 놀이판을 바라보는 우리 발밑으로 막걸리 한 병이 굴러왔다. 얼씨구나! 우리도 주저앉아 막걸리 병을 열었다. 그러자마자 누군가가 어디서 마련한 건지 모를 안주 한 접시를 건넸다. 당시 홍대 근처엔 빨대 뭉치를 들고 다니며 행복하게 어루만지는 “빨대맨”이라고 불리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그 아저씨도 그곳을 서성였다. 성당이나 절에서도 특별한 날 술과 음식을 나눠주었지만 그것과는 좀 달랐다. 이 느낌은 뭐지? 화려하지도 않고 양도 적었지만 그냥 맛났다. ‘아무에게나’ 음식을 나눈다는 게 왠지 모르게 신이났다. ‘미술전’이 먹고 마시는 장과 연결된다는 게, 자동차를 막고 “빨대맨”과 모두가 같은 음식을 먹는 다는 게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느낀 것 같다. 예술이 따로 있을까?
그 뒤로도 나는 그림을 배울 수 있는 곳을 몇 곳 더 찾아다녔고 혼자서도 가끔 작업을 했다. 그러다 서른 즈음에 인문학 연구 공동체를 알게 되었고 현대 미술사 강의를 들으러 갔다. 그 강의에서 세잔부터 개념미술까지 20세기의 모든 미술들이 낡은 감각과의 ‘투쟁’이었음을 보았다. 20세기 초 세계대전 중에 왁자지껄하게 공연하며 웃으면서 전쟁에서 달아났던 ‘다다’가 그랬고, 베트남 전쟁을 둘러싸고 논쟁이 뜨거워지는 미국의 한복판에서 기괴한 듯 보이는 퍼포먼스를 벌이며 다른 감각을 실험한 플럭서스flux 그룹이 그러했다. 자본주의와 전쟁 속에서 자본과 전쟁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는 다른 상상을 한 사람들. 그들의 예술은 자본주의와 전쟁에 대한 도전이자 혁명이었고 또 기발한 놀이였다. 곰브리치 말마따나 대문자 A로 시작하는 Art는 없었다. 세상엔 다양한 arts가 존재할 뿐이었다.
그 강의 이후로도 난 한동안 전문가들을 찾아가 그림을 배웠고, 사진 워크샵, 영상 워크샵, 영화 강의 등 예술 관련 강좌를 찾아 들었던 것 같다. 그 세계는 왜 그리 넓고 멋지던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렇게 몇 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빈 캔버스’가 ‘내 작품’보다 날 설레게 했다. 난 Art에 소질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진지하게) 결혼해서 애 낳는 것보다 창조적인 일은 세상에 없다.” ^^;
종교, 철학, 예술의 삼중주
그 무렵 예술 강의를 들었던 연구 공동체에서 일 년 간 철학· 예술· 동양 고전을 삼종 세트로 엮어 일 년간 공부하고 글을 쓰는 프로그램이 생겼다. 명쾌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이 세상을 설명해 내는 철학, 여전히 생생하게 읽을 수 있는 동양 고전에 마음이 쏠렸다. 철학과 고전은 예술만큼 강력한 매력으로 나를 자극했다. 시보다 뭉클한 강의, 노래보다 아름다운 독송! 공부가 예술이었다. 결심이 섰고, 공부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미련 없이 붓을 꺾었다. 그리고 한 3년 정도 그런 공부에 심취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언어가 채우지 못하는 이미지의 매력이 무엇인지 여전히 궁금했다. 그런데 ‘고전’, ‘독서’, ‘글쓰기’로 꽉 채워진 문자 왕국이었던 연구 공동체에는 미술을 공부하는 모임이 없었다. 그곳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려면 나 스스로 모임을 꾸려야 했다. 나는 좀 소심한 편이라 아무리 작은 모임이라도 스스로 대표가 되어 공부할 사람을 모은다는 건 정말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게다가 연구 공동체라는 곳이 얼마나 공사다망 하던지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과 이미 참여하고 있는 공부 모임들을 따라가기에도 벅찼었다. 그런데 그곳에 큰 파란이 일면서 공부 프로그램을 다시 배치하는 기회가 왔다. 그때 아주 작은 용기를 내어 나도 미술사 공부를 시작했다. 운 좋게도 당시 내 곁엔 좋은 스승이 있었고 좋은 도반도 생겼다. 덕분에 수년 간 미술개론에서 시작해 그리스부터 20세기까지 서양 미술을 종횡무진 훑었다. 좋아하는 그림을 실컷 보니 좋았고 그에 대한 탁월한 해석들도 좋았다.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함께 본 소설, 철학, 역사도 좋았다. 멋지고 멋지구나!
그렇게 즐겁고 힘겹게 공부하고 남은 깨달음이 있다면 예술과 철학, 종교와 윤리가 모두 세상을 조금 다르게 보기 위한 분투였다는 것이다. 모든 지혜가 바른 이해와 다른 감수성을 갖기를 요구했다. 예수는 부자와 가난뱅이를 다르게 보지 않았고, 부처는 삶과 죽음을 다르게 보지 않았고, 세잔은 사람과 사과와 산을 다르게 보지 않았다. 그들이 얼마나 어렵게 그 길을 갔는지도 보았다. 다르게 이해하고, 다르게 느낀다는 것이 혁명에 동참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걸 확인했다. 그런데 위대하다고 여겨지는 예술가들은 그 혁명이 힘들지만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거기에 하나 더 그 길이 즐거울 수도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사과와 생빅트와르산이 미인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만큼 즐겁지 않고서야 아무리 세잔이라 한들 매일 동트기를 기다려 무거운 화구를 들고 집을 나서진 못했으리라.
당신을 둘러싼 대기를 변화시키는 예술
미술사 세미나를 위해 작품 파일을 찾거나 미술책을 보고 있으면 연구실 친구들이 와서 물었다.
“이게 뭐야?”
그리고 한 책에서 반미(反美, art anti)주의자를 자처했던 연구실의 한 선생님께서는 책을 선물하시면 앞에 이렇게 적어주셨다.
“글로 밥 먹고 사는 게 예술이다.”
이렇게 그림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 보니 나도 슬슬 내 감각을 의심하게 되었다. 난 왜 미술을 좋아하는가? 미술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인가? 오랜 세월 인류가 그려온 그림들은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현대 미술도 아니고 지나간 역사 속의 미술들은 우리에게 어떤 소용이 있을까? 이런 질문을 하는 이들에게 프렌시스 베이컨은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예술은 당신의 심리 속에서 메아리를 내고 생명의 순환계를 괴롭힙니다.
그렇게 하여 당신을 둘러싼 대기 자체를 변화시키죠. -프랜시스 베이컨
베이컨에게 예술이란 실로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미술작품은 세상 어딘가에 있는 ‘아름다운 것’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며, 이 세계를 낯설게 느끼도록 만드는 돌연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세게 뺨을 맞는 것 보다 더한 존재 자체의 충격. 그 충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미술은 그렇게 우리를 낯선 대상과 만날 수 있게 훈련시켜 준다.
우리는 어디선가 늘 낯선 사물과 사람들을 만난다. 이해 불가능한 사건과 사람들. 그런 것과 대면할 힘을 기르기 위해 우리에겐 훈련이 필요하다. 이해 불가능해 보이는 인간, 그리고 어느새 낯설게 변해버린 가까운 사람들과 생생하게 만나고자 한다면 우리에겐 감수성 훈련이 필요하다. 아름다운 그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듯, 아름다운 사람이 따로 있지 않다는 걸 미술사를 통해 배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