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티로스와 제우스, 무엇이 될 것인가

그레타 툰베리가 나에게 말했다

by 구윤숙

한 연설을 보았다. 오래 묵은 벅찬 분노의 표현이었으나 감동적이었고, 그저 감동했다고 말하기엔 좀 부끄러웠다. 연설자는 2003년생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g) 올해 만 16살인 스웨덴 소녀다. 내가 초임 교사 시절에 태어난 아이, 내가 처음 나의 학생들과 환경 문제를 다룬 책을 읽고 토론했을 때 지구 저편에서 태어난 아이. 그 아이는 8살에 환경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처음 보고 식음을 전폐했었다. 내가 토론거리로 삼았던 그 문제를 한 어린이는 온몸과 마음으로 끌어안았고 오래 앓았고 세상으로 나아가 행동하기 시작했다. 매주 금요일이면 학교를 가지 않고 광장에 나아가 피켓을 드는 일. 그것이 그녀를 가장 어리고, 가장 뜨거운 환경 운동가로 만들었다.


https://youtu.be/BvF8yG7G3mU


그녀는 UN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 스웨덴에서 뉴욕까지 태양열로 가는 작은 요트를 타고 갔다. 작은 텔레비전으로 본 지구 생명체들의 멸종을 자신의 미래가 잘려 나가는 것으로 느끼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한 걸음은 자신이 변화시키고 싶은 세상과 닮아 있어야 했다. 갑자기 또 부끄러웠다. 깃발을 들고 몰려다니는 중국인 여행객들을 보고 관광공해라 느끼면서 배낭여행은 모험이고 견문을 넓히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게 부끄러웠다. 배낭여행도 공해다. 견문은 마음만 먹으면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만 잘 활용해도 넓어진다. 배낭 여행도 그저 하나의 소비였다.


툰베리는 말했다.

당신들은 자녀를 가장 사랑한다 말하지만,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모습으로 자녀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


자동차를 끌고 아이의 등하교를 돕고, SUV를 끌고 캠핑을 다니고, 일 년에 한두 번쯤 학교에 체험학습 신청을 하고 해외로 나가는 게 문화가 되어가는 나라, 대한민국에게 소리치고 있는 것 같았다. How dare you?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나요?) 당신들은 자식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


괴물이 된 신



그녀의 고함 소리에 번쩍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고야의 사티로스. 자기가 낳은 자식이 자기 자리를 빼앗을 거라는 예언을 듣고, 아이가 태어나는 족족 삼켜버렸다는 그리스 신화 속 사티로스는 늙고 쇠약해져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어두운 무의식을 표상하는 인물이다. 인간은 작고 약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럼에도 신화 속 그는 신이었다. 가이아(대지)와 우라노스(하늘)의 아들이요, 올림포스 신들의 아버지였다. 어머니와 가이아 덕에 몰래 살아남은 제우스가 형제들을 토해내게 하고 전쟁 끝에 신들의 제왕자리를 차지하기 전까지, 그는 엄연히 주신(主神)이었다. 그런데 고야는 그를 늙고 추악한 괴물로 그렸다.


고야의 사티로스는 그야말로 자식을 잡아먹는다. 피가 뚝뚝 흐르는 작은 인간의 몸을 부여잡고 그는 아직 허기진 듯 눈을 부릅뜨고 다른 먹잇감을 찾고 있다.


고야는 스페인 전역이 전쟁으로 물들고 마을마다 시체가 내걸리는 참혹한 시대에 이 그림을 그려 자기 집 식당에 두었다. 자신이 먹는 음식이 누군가의 살과 피의 대가임을 확인하며 먹는 식사라니! 그것은 괴물과 다름없었던 스페인 왕가의 궁정화가로 부를 누려온 자기 자신에게 내리는 형벌처럼 보인다. 고야는 그렇게 자신도 괴물이라는 것을 매일 되새겼다. 그런데 우린 잊으려한다 .

집안을 물건으로 가득 채우고도 또 뭔가가 필요해 쇼핑을 하고, 좋은 공기를 쐬러 간다며 자동차를 몰고 나가고, 점심식사 후 일회용 컵에 음료들 들고 사무실로 돌아가면서 웃는다. 성찰은 없고 변명은 많아졌다.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고도 허기가 진다는 건 괴물이 된다는 것이다. 늘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우린 이미 사티로스다. 우린 그렇게 상쾌한 얼굴로 미래 세대를 잡아먹으며 자본가의 희생양인양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30년의 침묵


그래서인가 한 신문은 그녀의 연설 제목을 ”세계 지도자를 질타하는 그레타 툰베리“라고 달았다. 여타 다른 신문들 역시 비슷한 타이틀을 달았다. 그녀가 트럼프로 대표되는 발전과 성장을 말하는 세계 정상들에게 쓴소리를 했다고 적었다. 기자들은, 신문들은 자신이 그 소녀의 질타를 받는 바로 그 ‘당신들’임을 느끼지 못했다. 지독한 불감증이다. 그런자가 바로 괴물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S-m36mcRHYw

그레타 툰베리의 영상을 본 나에게 유튜브는 [6분 동안 세계를 침묵시킨 소녀]라는 영상을 소개해 주었다. 1992년에 캐나다의 한 소녀가 유엔에서 이와 비슷한 연설을 했다. 절절했고, 역시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세계는 6분이 아니라 수 십 년간 그녀의 연설에 침묵했다. 신문들이 기후 재앙에 대해 계속 깨어 경고했더라면, 탄소배출과 쓰레기 문제에 대해 더 강도 높은 규제가 필요하다고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면, 각국 정상들은 다른 선택들을 해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레타 툰베리는 자신의 말처럼 학교에서 즐겁게 미래의 꿈을 꾸었으리라.


신문을 탓해 무엇하랴. 쓰레기를 만든 것도, 기레기를 만든 것도 우리 세대다. 다만 부끄러울 뿐이다.


어린 세대들이 우리에게 이미 지구상에서 멸종된 자신의 형제를, 자신의 미래를 토해내라고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사티로스가 되지 않으려면 기꺼이 삶의 크기를 줄여야 한다. 이제 우리가 삼켜버린 그들의 미래를 토해내고 전쟁처럼 느껴질 불편한 삶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면 삶의 의미가 넓어지리라. 그러면 미래 세대가 우리를 사티로스가 아니라 제우스로 기억해줄지도 모른다. 무한성장을 꿈꾸는 거대한 자본주의라는 괴물에게서 자신을 구해 준 형제이자 세상을 함께 공유했던 벗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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