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1), 무덤에서 책으로

신들의 계보는 끊겼다.

by 구윤숙


신들의 계보는 끊겼다. 제우스는 더 이상 인간 세상에 개입하지 않고 신과 인간이 결합하여 새로운 자손을 낳는 시대도 종말을 고했다. 거대한 청동 신상은 녹여져 무기가 되었고 신전은 관광지가 되었으며 신의 형상은 미술품이 되어 박물관에 진열돼있다. 아무도 그리스 신을 위해 제주(祭酒)를 바치지 않으니 가뜩이나 다혈질인 신들은 화가 나서 죽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 신들의 이야기는 기독교가 서양을 장악한 긴 시간을 버티고 살아남아 우리에게까지 왔다. 신은 죽었어도 신화는 살아있다! 그런데 이성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신화를 듣는 감각이 퇴화되었다.


신화는 곁에 있으나 그 의미까지 다가가는 길은 멀다. 이런 현상은 그리스에 자연철학이 등장하면서 이미 예견된 일일지도 모른다. 기원전 6세기경 세상의 기원을 물(水)이라고 선언한 이오니아의 철학자 탈레스는 분명 카오스(혼돈)와 가이아(대지)로 세상의 기원을 설명했던 고대인과는 다른 태도를 갖고 있다. 그는 이성적으로 세상의 기원에 접근한다.


이성(logos)은 지성의 활동이다. 지성은 비판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면밀한 탐구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과학적 태도를 요구한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세상의 기원이 빅뱅이라는 것도 알았고, 인간의 감정이 도파민, 세로토닌 등 물질과 관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과학은 거대한 우주도 명쾌하게 설명해내고 인간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유용한 약물까지 만들어낸다. 그럼에도 인간은 여전히 종교생활이나 명상, 수행 등을 통해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방식을 얻거나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신화(mythos)는 감성의 활동이다. 감성은 혼란하고 불안할 때면 위로가 필요하다. 그럴 때 등장하는 것이 신화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들에게 죽음을 과학적으로 설명해주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은 이렇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이제 편히 쉬실 거야.’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야.’ 이것은 분명 신화적 표현이다. 인간은 태어난 이상 죽음을 만나야 했고 죽음이라는 그 알 수 없는 문제를 이해하고자 신화를 만들었다.


고고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의 무덤에서 동물 뼈와 같은 부장물들과 함께 시신을 정성스럽게 매장한 흔적을 발굴해 냈다. 인류가 그 시절부터 죽음에 대해 사유 해왔다는 증거였다. 사후세계에 대한 깊은 고민은 오늘날의 인류와 비슷한 뇌구조를 가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이어졌다. 확실히 어딘지 기억나지 않는 박물관 초입에서 털가죽 옷을 입고 모닥불 주위에 모여 있는 이들의 모습을 누구나 한번쯤 보았을 것이다. 인류의 시초라는 의미로 그들을 원시인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미개인이라 부를 수는 없다. 그들은 예술과 종교의 측면에서 꽤 높은 수준을 갖고 있었고 우리보다 더 복잡한 사유를 했다.


https://en.wikipedia.org/wiki/Lascaux#/media/File:Lascaux_painting.jpg

프랑스 라스코 동굴 벽화(기원전 15,000-10,000)는 이들의 높은 예술 수준을 보여준다. 동굴 깊숙한 곳 천정에 그려진 수십 마리 소떼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려졌다. 아르놀트 하우저는 그 그림들이 ‘근대 인상주의의 출현이 있기까지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직접적이고 순수하며 어떠한 이지(理智)적인 작용이나 제약도 받지 않는 형태로 시각적인 인상을 재현하고 있다’고 보았다. 어둡고 좁고 낮은 통로를 지나야 도달할 수 있는 깊은 심연에 그려진 그 그림은 내일 사냥에서 만나길 바라는 바로 그 소이다. 원시인들은 그들이 전에 보았던 가장 좋은 소의 모습을 동굴에 그려놓고 창과 돌도끼를 던지며 자신의 힘을 키우고 소의 힘을 제압했다. 이것은 용기를 키우는 일종의 역할극이자 주술행위였다. 그것은 실제적인 효과가 있었다. 어둡고 두려운 심연으로 들어가 소를 제압하고 다시 길을 더듬어 나오며 내일의 사냥꾼들은 더 강력해진 자신을 확인했을 것이다.


이들이 바로 신화의 창조자들이다. 네안데르탈인부터 이어져온 생과 사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고 사냥 전 두려움과 같은 심리적 문제를 해결해야했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이들의 엄청난 고뇌 속에서 신화는 탄생했다. 물론 신화는 만들어진 지역과 시기에 따라 그 형태가 다양하다. 그럼에도 지구상의 첫 현생인류가 던진 질문은 여전히 신화 안에 생생히 살아있다. 그래서인가 과학의 시대를 사는 우리도 여전히 신화를 읽는다. 하지만 신화가 머무는 장소가 사뭇 달라졌다.


신화는 무덤 곁을 떠나 동굴에 머물다가 전성기에 신전에 이르렀으나 이제는 책꽂이에 놓여있다. 우리는 언제든 신화에 접근할 수 있다. 그리스 원전 번역은 물론 다양한 신화학자들이 구술한 듯 재밌게 들려주는 이야기책에 만화, 동화, 그림책까지 버전도 다양하니 신화로 입문하는 문턱은 아주 낮아졌다. 그러니 마음을 열어 신화에 손을 대보자. 그 옛날 사람들처럼 마음에 큰 위안과 용기를 얻게 되길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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