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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윤숙 Jul 01. 2017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무모하고 위대한 희망의 동화

빅토르 위고 http://static.cinemagia.ro/img/db/actor/

“인간을 믿으십니까?” 그 질문에 언제나 “YES!”라고 답하는 인물이 있다. [레 미제라블]의 첫 장을 장식하는 의인(義人) 뮈리엘 주교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가석방된 도형수 쟝 발쟝에게 당연하다는 듯 식사와 침실을 제공하고, 은식기를 도둑맞고도 오히려 ‘은촛대는 왜 안 가져갔냐?’고 반문하는 신의 사제. 그는 쟝 발쟝이 자신과 똑같은 신의 자녀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자 쟝 발쟝이 정말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숨에 이룬 성과가 아니었다. 쟝 발쟝이 삶의 중요한 순간들마다 ‘양심과 벌이는 백병전’을 치룬 결과였다.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1885)의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불쌍한 사람들)은 그렇게 힘겹게 성인이 된 한 남자의 전투기록이다.  

   


해가 뜨는 것을 불시에 보게 된 올빼미     


뮈리엘 주교는 쟝 발쟝에게 은식기를 내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쟝 발쟝, 나의 형제여, 이제 그대는 더 이상 악의 수중에 계시지 않고 선의 소유가 되셨소. 나는 그대로부터 당신의 영혼을 샀소. 내가 그것을 흉악한 사념과 멸망의 정령에게서 회수하여 신에게 드리겠소.”     


주교의 마지막 인사는 선물인 동시에 십자가였다. 쟝 발쟝은 ‘해가 뜨는 것을 불시에 보게 된 올빼미’처럼 혼돈에 빠졌다. 도둑에게 형제라니! 그는 자신이 감동을 받았는지 모욕을 당했는지, 그것이 형벌인지 구원인지 알지 못한 채 알 수 없는 노기에 휩싸였다. 그런 그의 곁을 지나는 한 소년이 떨어뜨린 동전을 쟝 발쟝이 자기도 모르게 밟게 된다. 소년은 천진하게 자기 돈을 돌려달라고 말했으나 사념에 휩싸인 쟝 발쟝은 소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소년을 쫓아버린다. 그리고 한참 뒤에 반짝이는 동전을 보게 된다. “아!” 자신도 모르게 도둑이 된 것이다. 순결한 광휘의 전율이 멈추기도 전에 어둠에 휩싸인 자기 모습을 실감한 쟝 발쟝은 말한다.


 “나는 불쌍한 놈이야!”


이 독백은 참으로 아프다. 쟝 발쟝은 잠시만 넋을 놓고 있어도 괴물이 될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이제 늘 깨어있어야 한다.      



신의 존재를 잊지 않고 산다는 것


은촛대 사건을 겪고 쟝 발쟝은 성공한 사업가이자 시장님인 마들렌느가 된다. 많은 우연이 그를 도왔고, 그의 억센 몸과 선한 의지가 힘이 되었다. 그런데 그의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난다. 위대한 레 미제라블, 팡띤느가!  

    

Jean Valjean, monsieur Madeleine

팡띤느는 아름다웠고, 꿈에 젖은 듯 사랑을 했고, 버림 받아 미혼모가 되었다. 그리고 양육비를 벌기 위해 마들렌느의 공장의 여공이 되었다. 그런데 바빠진 마들렌느가 공장장에게 많은 권한을 넘길 무렵 팡띤느는 미혼모라는 이유로 해고된다. 그녀의 해고는 부당했지만 마들렌느는 그걸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실직한 팡띤느는 이제 딸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기 시작한다. 가구를 팔아 생활비를 보내고, 탐스러운 금발 머리를 팔아 옷값을 얻고, 반짝이는 고운 이를 뽑아 약값을 번다. 삭발한 머리를 더러운 모자로 감추고 검은 구멍 사이로 침이 흐르는 입으로 괴기스런 미소를 짓는 그녀는 수치심을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자신이 팡띤느라는 것을, 불쌍한 꼬제뜨의 마지막 남은 보호자라는 것을 잊을 수 없다. “그래! 남은 것을 팔자!” 사회에서 길을 잃은 여인은 그렇게 매춘의 길로 들어선다.  빅토르 위고는 말한다.

   

팡띤느의 그 이야기는 무엇인가? 사회가 여자 노예 하나를 매입하는 이야기다.
누구로부터? 비참함으로부터.      


팡띤느는 그렇게 비참함 속에서 죽었고 쟝 발쟝은 죄책감을 피할 수 없었다. 그 여인의 딸 꼬제뜨는 이제 그가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하필 그 순간에 쟝 발쟝으로 오해 받아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한 노인 샹마튜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쟝 발쟝의 마음에 폭풍이 인다. 어린 꼬제뜨와 늙은 노인 샹마튜. 쟝 발쟝은 우선 샹마튜를 구하러 달려간다. 이는 샹마튜가 꼬제뜨에 비해 더 소중한 사람이라서가 아니었다. 둘은 경중을 따질 수 없는 똑같은 ‘인간’이다. 그렇다면 쟝 발쟝의 선택은 무엇 때문인가? 그가 마들렌느가 아니라 쟝 발쟝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외면한 채 빛으로 나아갈 순 없다. 빌어먹을 양심! 뮈리엘 주교가 다시 밝혀 준 그의 양심이 행복을 막아섰다. 이제 무모한 탈옥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무모한 희망에 보내는 경탄


시간은 흘렀고 간절한 도형수는 탈옥과 변신에 성공하여 어린 소녀 꼬제뜨를 구하러 간다. 꼬제뜨 역시 위대한 레 미제라블 중 하나였다.

“Cosette Sweeping,” illustration from Victor Hugo, Les Misérable (1862). Translated by Isabel Hapgoo
입은 옷이라곤 누더기 한 조각. 여름에 그 모습을 보면 연민을 느낄 것이고, 겨울에 보면 누구든 몸서리를 칠 것이다. 몸에 걸친 것은 구멍투성이의 거친 천 조각 하나, 모직물이라곤 걸레 조각만 한 것 하나 없었다. 여기저기 맨살이 드러났는데, 퍼런 혹은 검은 멍이 눈에 띄었다.      


꼬제뜨를 처음 만난 그 밤 쟝 발장은 벽난로에 놓인 반쯤은 깨어진 나막신 한 쪽을 발견한다. 성탄절 전야에 선물을 기대하며 벽난로 안에 넣어둔 꼬제뜨의 것이었다. 흙과 재를 뒤집어쓴 그 끔찍한 나막신 속엔 당연히 아무 것도 없었다. 그건 온갖 구박만 받고 살아온 어린 아이의 무모한 희망이었다. 그런데 쟝 발쟝은 꼬제뜨의 희망에 오히려 경탄한다.


무엇을 원해도 한 번도 이루어진 적 없는 어린아이가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실로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쟝 발쟝은 그 어떤 희망에도 조소하지 않는다.  그 자신이 인간으로 품을 수 있는 가장 큰 희망과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신의 자녀다. 도형수인 나도 그렇게 신의 자녀로 살겠다.’  실로 위대한 꿈이다.   



행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마리우스를 구하는 쟝 발쟝

쟝 발쟝은 수많은 위기를 뚫고 포슐르방이란 이름을 얻어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꼬제뜨는 아름답고 착한 딸이 되었고, 거대한 도시 파리는 안전한 은신처가 되어 주었다. 그런데 그 녀석, 마리우스가 나타났다. 꼬제뜨와 사랑에 빠진 몽상가. 그는 할아버지가 결혼을 반대하자 절망한 나머지 죽기 위해 바리케이트로 달려간다. '바리케이드는 증오가 세운 모든 건축물의 면모를, 즉 폐허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그 정치적인 구조물 안에 쟝 발쟝도 뛰어든다. 그러나 정치나 혁명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는 단지 꼬제뜨의 연인을 구하러 그곳에 간 것이다. 위고는 작품 안에 정치 상황과 혁명에 관한 세심한 묘사를 충실히 하고 있으나 정작 쟝 발쟝은 그런 굵직한 사건들 밖에 있다. 정치를 모르는 쟝 발쟝은 피로 흥건한 그곳에서 아무도 죽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두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 한 사람은 바리케이트의 반란자 마리우스고, 다른 한 사람은 바리케이트에 숨어든 경찰 쟈베르다. 그 둘은 정 반대 진영에 있었으나 쟝 발쟝은 둘을 구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정치적 진영’이 아니라 ‘인간’이 문제였다.


그런데 자신이 쫓고 있던 도형수에게 구조된 쟈베르는 은촛대를 선물 받은 쟝 발쟝과 같은 처지가 되었다. '그는 암흑 속에서 미지의 윤리적 태양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떠오르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태양이 끔찍해 보였으되 동시에 눈이 부셨다. 참수리의 시선을 바라보도록 강요당한 부엉이 꼴이었다.' 그 단단한 질서의 수호자는 ‘법을 초월하는 선함’, ‘사회의 결함을 메우는 도형수’라는 역설적인 존재 앞에 무너지고 만다. 그는 법과 양심의 결투, 정부의 정의와 신의 정의 사이의 백병전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소용돌이치는 강물, 그 혼돈 속에 자신을 던져 최후를 맞는다.


그러나 쟝 발쟝은 그 혼돈을 견디고 자신의 마지막 숙제를 한다.      


“제가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소. 나는 과거에 도형수였소.”      


http://www.brunswick.k12.me.us/hdwyer/files/2013/02/marius.jpg

꼬제뜨와 결혼식을 치르고 행복에 들뜬 마리우스에게 떨어진 그 고백은 청년을 얼어붙게 했다. 그는 순결한 꼬제뜨는 물론 자신의 목숨마저 그에게 빚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쟝 발쟝과 관련된 모든 것을 더럽게 여겼다. 예상하지 못한 파장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쟝발장은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그 동기가 좀 이상하지만, 그것은 정직하고자 하는 마음에 이끌려서였소. (…) 행복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오. 만족스러워야 하오.”     


그는 여전히 무모한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꼬제뜨의 부유한 아버지 포슐르방이 아니라 불쌍하고 미천한 인간, 레 미제라블인 자기 모습으로 그들과 가족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결한 몽상가 마리우스가 도형수라는 사회적 낙인에 경직되고 말았다. 동화 같은 우연들이 그의 마음을 녹여주어야 했다.           


위고는 마리우스에게 쟝 발쟝의  위대함을 알려줄 증인으로 떼나르디에를 택한다. 팡띤느에게 돈을 뜯어내고 어린 꼬제뜨를 구박하고 온갖 술수와 더러운 일을 도맡아한 그에게 천사장 가브리엘의 역할을 맡긴 것이다. 위고의 시선은 뮈리엘 주교의 시선만큼이나 평등하다. 떼나르디에마저도 레 미제라블이고, 고결한 청년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신의 자녀다. 다만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갈 뿐. 때문에 위고는 이 책을 써야 했는지도 모른다. 레 미제라블에게 빚진 채 살아가면서도 그들을 멀리하는 깔끔쟁이 몽상가들과 자신이 천사임을 모르는 레 미제라블 모두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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