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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윤숙 Mar 21. 2019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청년의 마음엔 출구가 필요하다

 

TISCHBEIN, Johann Heinrich Wilhelm : http://topofland.egloos.com/4620906

사랑해선 안 될 사람에 대한 사랑. 어떤 이들은 불륜이라 하고, 어떤 이들은 운명이라 말하는 그 비극적 감정에 대해 괴테(1749-1832)는 불멸의 고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남겼다. 약혼자가 있는 여인 로테를 사랑하여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청년 베르테르의 이야기에 많은 독일 청년들은 열광했고, 교황청은 분노했다. 책은 분서당하고, 금서로 지정되었다. 당대의 많은 논쟁에도 불구하고 괴테는 이 책을 시작으로 독일 문학을 진일보시킨 대문호로 칭송받았다. 무엇이 이 불운한 청년의 이야기를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받게 만들었던 것일까? 그것을 찾는 것이 18세기보다 200년은 더 늙어버린 지금의 인류에겐 참으로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덮고법칙을 버리자 행복한 일상이 열렸다     


이 책은 재능 있는 청년 베르테르가 친구 빌헬름에게 보내는 편지로 채워져있다. 신분이 아주 높지 않으나 예술과 식견, 언변과 성품, 그 어느 것 하나 빠질 것이 없는 베르테르는 요양 차 시골에 내려와 있었다. 그의 질병이란 자신의 능력은 알아보면서 자신의 가슴 속은 들여다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의 편협함에 견딜 수 없는 갑갑증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떠난 친구에게 빌헬름이 여러 가지 조언을 하며 책을 보내주겠다고 연락을 해왔는지 베르테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나는 가르침과 격려 따위를 받고 싶지 않아. (…) 나에겐 오히려 자장가가 필요하다네. 나는 그런 자장가를 내가 읽는 호메로스에게서 넘치도록 발견했다네. (3.13)     


시골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베르테르 : https://pixels.com/featured/14-goethe-werther-granger.html


베르테르는 이미 도시에서 오는 이성적인 조언보다 더 귀한 것을 발견했다. 복잡한 예법은 몰라도 자연에 따라 사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예술 법칙들을 내려놓고 그저 마음이 가는 풍경을 화폭에 담는 기쁨을 알게 된 것이다. 또한 자기 욕망에 더없이 솔직한 인물들로 채워진 호메로스의 신화는 그에게 좋은 휴식처였다. 


평론가들은 호메로스가 청년 베르테르의 ‘밝은 시절’을 상징하는 책이라고 한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두 편이 전해지는 이 장대한 서사시는 성격이 아주 분명한 두 주인공이 있다. 분노와 슬픔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전쟁터를 휩쓸어 버리는 청년 아킬레우스와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바다에서 온갖 고난을 겪는 오디세우스가 바로 그들이다. 


엄청난 감정의 폭주와 고난의 이야기를 ‘밝음’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호메로스에겐 빛과 그림자가 명확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난의 원인, 싸워야 할 적, 얻어야할 성취. 호메로스의 주인공들에게 이 모든 것들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사념이 많은 베르테르에게 이런 빛과 어둠이 분명한 세계는 자장가와 같았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는 마냥 그렇게 신화 속에 마음을 빼앗기며 잠드는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  베르테르는 다른 한편으로 문학과 예술에 관해 대화할 수 있는 영혼의 벗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시골에서도 배운 사람들은 바쁘기만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어쩌다가 여분의 자유라도 생기면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거기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는 법이거든. 아, 인간의 운명이란! (5.17)

 


로테천상의 춤을 추는 여인     


빌헬름에게 보내는 베르테르의 편지는 그 뒤로 한 달 반 동안 멈춘다. 바로 그 여인, 샤를 로테를 만나 정신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냈기 때문이다. 로테는 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8명의 동생들을 돌보면서도 아름다움과 웃음을 잃지 않는 아가씨다. 그녀는 어린 동생들을 엄마처럼 돌보고, 동생들은 그녀를 사랑하며 따른다. 베르테르는 그녀의 이런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은 춤 때문이었다.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 쏟아서 춤을 추었어. 그녀의 온몸이 조화를 이루었네,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편안하게. 마치 춤이 모든 것이란 듯이. 마치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느끼지도 않는 것처럼 말일세.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는 그녀의 눈앞에서 다른 모든 것은 사라지는 것 같았네. (…) 드디어 춤이 시작되었네. .... 내 평생 춤을 그렇게 잘 춰본 적은 없네. 나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어. (6.16)     


동생들에게 빵을 나눠주는 로테 : http://recreating19cballroom.blogspot.com

신나는 음악에 맞춰 홀을 가로지르며 춤을 추는 여인. 그녀는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동생들도 잊고, 홀로 계신 아버지도 잊고, 폭우가 내릴 것 같은 검은 하늘도 모르는 것처럼 춤을 춘다. 오직 그 순간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모든 행복을 다 느낄 수 있도록! 음악에 귀를 열고, 상대와 눈을 맞추고, 발끝부터 손끝까지 온 몸의 움직임에 한껏 흥을 낸다. 그래서 그녀는 단지 혼자 춤을 잘 추는 것이 아니라 베르테르도 춤추게 하였다. 도시와 책을 떠나 이제 살짝 시골의 아름다움에 눈을 뜬 청년에게 얼마나 행복해 질 수 있는지 느끼게 해 준 것이다. 


괴테가 그녀의 모성애나 지성과 미모 같은 것이 아니라 그녀의 춤이 그를 사랑에 빠지게 했다고 묘사한 것은 정말 탁월한 설정이다. 남들이 말하는 일반적인 매력기준으로는 그녀의 진가를 평가할 수 없다. 로테는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책의 구절을 읊으며 지식을 드러내기보다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천둥소리가 무도회의 음악 소리를 멈추게 할 때 다른 여자들은 놀라 귀를 막는데 그녀는 남자들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가 숫자 말하기 게임을 제안한다. 그리고 스스로 진행자가 되어 틀리는 사람들에겐 벌칙으로 뺨을 때린다. 베르테르도 그날 밤 짧은 폭풍우가 지나가는 동안 정신이 번쩍 나도록 그녀에게 서너 번 뺨을 맞아야했다. 


로테는 지고지순한 여성이 아니다. 그녀는 8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조용하게 다스리고, 발을 움직여 공간을 지배하는 춤을 추고, 폭우 사이에서 남자들을 호령한다. 베르테르는 그녀와 함께 있으며 서서히 깨어나는 자신을 느꼈을 것이다. 도시에서 죽은 듯 살아가면서 어떻게 진짜 산 사람처럼 살 수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병들어 가고 있던 그를 단번에 깨운 것이다.      



자신의 천성대로 살아갈 방법을 찾지 못한 청년의 목소리


익히 알려진 결론대로 로테는 정혼자와 축복 속에서 결혼을 했고, 베르테르의 고뇌는 증폭된다. 그녀를 피해도 보고, 다른 도시로 떠나보기도 했으나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없었다.      


한계가 있어요. 인간의 본성은 기쁨, 번뇌, 고통을 어느 정도까지는 견디다가 그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파멸하고 말아요. (…) 열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이 겁쟁이가 아니듯... 마구 뒤얽히고 서로 밀치는 온갖 힘들의 미로에서 우리의 천성이 출구를 찾지 못할 때, 우리 인간을 죽을 도리밖에 없어요.      
오시안의 글을 함께 읽는 베르테르와 로테 : http://paintingandframe.com/prints/others_goethe_werther-39178.html


밝은 호메로스의 세계는 끝이 나고 오시안의 세계가 시작되었다. 둘이서 즐겨 읽던 오시안의 책은 어둡고 모호하다. 가족과 연인이 사랑하는 사람인 동시에 원수인 혼돈의 세계 안에서 주인공은 고통 속에서 고뇌한다. 베르테르도 그렇게 되었다. 그에게 사랑은 그를 깨워준 광명인 동시에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이 되었고, 로테와의 만남은 무엇보다 고귀한 시간인 동시에 남들의 비난을 사는 일이 되었다. 그녀는 이제 친구도 될 수 없다. 이 관계를 끝내야 하지만 출구가 없다. 비극은 결말에 다다랐다. 베르테르는 로테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녀의 남편에게 총을 빌리고, 자기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죽기 전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죽고 싶다!’ 그것은 절망이 아니라 확신이었소. (…) 우리 셋 중에 하나는 빠져야 해요. 내가 그 역할을 맡겠소! (…) “당신들이 나의 죽음을 통해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그는 도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지려 했다. 물론 심판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남은 사람들의 마음을 등을 운운하며 그의 어리석음을 단죄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사라지지 않는 번뇌 하나를 갖고 있는 독자라면 쉽게 판결을 내리지 못하리라. 사랑, 취업, 가정, 꿈과 같이 남들은 쉽게 털어버리라고 하지만 마음속에 뿌리박혀 계속 자라기만 하는 그 고뇌들 말이다. 베르테르는 온갖 바른 말들이 넘쳐나는 이성의 시대에 한 청년의 고뇌를 진지하게 들어주며 측은하게 여겨주는 역할, 그것 하나만을 독자에게 부탁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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