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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Kwon Jul 12. 2020

면허는 있는데 운전은 못해요

만년 초보 운전자의 실패 경험기 


#_


날씨가 맑다. 거리엔 햇살도 적당하고 차들도 여유롭다. 로열 애비뉴를 지나 8번가로 좌회전한다. 제한 속도 50 킬로미터. 시내를 벗어나면 곧 하이웨이를 만날 테니 우측차로를 고수하자. 28번 출구까진 겨우 십 분 거리니까 차선 변경은 하지 말고......


- 자기 지금 뭐해?


등 뒤로 바짝 다가선 신랑이 노트북 화면을 훔쳐본다. 나는 크게 확대된 인공위성 지도 위에 상상의 차를 세우고 현실로 돌아온다. 


- 준비됐어?


그의 비장한 눈빛과 마주하자 나도 모르게 입이 앙다물어졌다. 우리는 오늘 스승과 제자의 관계다. 당근보단 채찍이 앞서는 그의 교육 스타일을 잊지 말자. 화내지 않기. 싸우지 않기. 울지 않기. 우리의 애마는 뒷유리창에 'N'스티커를 달고 있다. Novice. 한국으로 치면 '초보 운전'쯤 되겠다. 6년 전 캐나다에서 면허를 땄지만 고속도로 주행 시험을 보지 않아 여전히 'N'스티커를 달아야 한다. 동승자 제한 외에는 큰 차이가 없으니 평생 초보 운전자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뭐, 딱히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기도 하고.


- 브레이크가 오른쪽이었나, 왼쪽이었나?


농담 삼아 던진 말에 신랑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는 운전대에 바싹 붙어 앉아 크게 심호흡을 내뱉었다. 긴장감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마지막으로 운전을 했던 게 언제였더라. 그때도 정해진 출퇴근 길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운전을 하면 이동이 자유롭다는 말은 내게 해당되지 않았다. 드라이브 스루로 돌아가는 길이 무서워 커피 한 잔 사 먹지 못했고, 쌩쌩 달리는 차들 사이로 끼어드는 것이 겁나 일부러 러시아워에 맞춰 퇴근하기도 했으니까. 처음으로 용기 내어 초행길 운전을 시도했던 날, 덜컥 접촉사고를 냈더랬다. 그러니까 그게 일 년 반 전 일이다. 


- 바로 앞을 보지 말고 저 멀리 시선을 두란 말이야.

- 나도 알아. 

- 저 앞에 노란불이니까 속도를 낮춰야지.

- 나도 알고 있다고.

- 오른쪽 차선이랑 너무 바짝 붙었잖아. 가운데서 잘 달려야지.

- 나도 알고 있다니까! 


주행 시간 겨우 오 분, 화내지 않기에 실패했다. 저 멀리 시선을 두고, 노란불 앞에 속도를 낮추고, 차선 가운데서 잘 달리자. 나는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푼다. 집에서 한 시간 거리로 직장을 옮긴 뒤론 줄곧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걷고, 트레인을 타고, 버스를 타고, 다시 조금 걷는 여정이 꼭 힘들지만은 않았다. 책을 읽을 수 있어 좋았고, 창 밖 풍경을 보며 망중한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운전을 해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해방되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운전대를 잡고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로 대중교통 운행 횟수가 급감한 데다 감염에 대한 공포 심리가 더해진 까닭이었다. 이 참에 다시 운전을 하는 건 어때? 신랑의 시기적절한 제안도 한몫했다. 익숙해질 때까지 내가 도와줄게, 하하하! 그 사람 좋은 웃음에 내가 속았다. 지금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내 옆에 앉아 있다. 


- 자, 이제 곧 하이웨이 들어갈 거야. 우측으로 붙어서 운전해.

- 지금? 여기? 내비게이션이랑 헛갈리는데?

- 집중해! 여기 앞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돼.

- 여기? 여기 맞아?

- 아니, 아직...... 아직이라고!


그가 언성을 높임과 동시에 나는 세상 우아하고 완벽한 우회전에 성공했다. 그리고 우리의 애마는 밴쿠버 시내와는 정반대로 방향을 틀었다. Route recalculated. 눈치 없는 네비가 가장 가까운 출구는 집까지 되돌아가고도 한참을 지나야 있음을 알려주었다. 눈 앞에 드넓은 하이웨이가 펼쳐졌다. 햇살도 좋고 차들도 적당하다. 하지만 이 길은 내가 아는 길이 아니다. 내가 가야 할 길은 더더욱 아니다. 


- 그러니까 왜 자꾸 헛갈리게 해!

- 내가 아직이라고 했잖아! 

- 이제 어떡해...... 난 여기 운전할 줄 모른단 말이야!

- 그러니까 왜 거기서 우회전을 하냐고! 가다가 제일 먼저 보이는 출구에서 무조건 빠져!

- 아니, 왜 짜증을 내고 그래? 이게 내가 잘못한 거야?


주행 시간 이십 분, 싸우지 않기에 실패했다. 나는 하이웨이를 빠져나와 낯선 곳에 차를 세웠다. I'll drive. 돌처럼 딱딱해진 표정의 신랑이 말했다. 그의 모습이 오래전 보았던 운전면허 시험관들과 겹쳐 보였다. 두 번의 실패 끝에 겨우 붙은 면허 시험. 그분들의 표정이 딱 저랬지. 보조석으로 강등된 나는 묵언수행에 돌입한다. 내 기분을 알리 없는 애마가 유유낙낙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 자, 여기부터 다시 시작하자.


먼 길을 돌고 돌아 집 근처에 차를 세운 신랑이 말했다. 포기가 빠른 나에 비해 그의 패기는 하늘을 찌른다. 그래, 다시 시작하자. 나는 자리를 바꿔 운전대를 잡고 천천히 도로에 진입했다. 익숙한 길들을 지나자 저 앞으로 하이웨이 입구가 보였다. 너무 일찍 들어가면 안 돼. 아직, 아직, 아직...... 그래, 여기! 커다란 원을 그리며 늘어진 도로를 달려 드디어 밴쿠버로 향하는 하이웨이에 진입했다. 뫼비우스의 띠를 벗어난 상쾌한 느낌이 온몸을 전율케 했다. Good job! 좀처럼 당근을 쓰지 않는 신랑도 칭찬 한 마디를 얹었다. 문제는 복잡한 밴쿠버 시내였다. 


- 저 앞에 트럭이 있으니까 차선 변경해.

- 무서워......

- 로터리에선 먼저 진입한 차를 기다려야 해.

- 무서워......

- 저긴 일방통행이잖아. 돌아가야지.

- 무서워......


밴쿠버가 이토록 무서운 도시인 줄 몰랐다. 공포 영화 저리 가라다. 하도 긴장한 탓에 목덜미가 뻐근하게 저려왔다. 이렇게까지 운전을 해야 하나. 이번 생은 그른 것이 아닐까. 부담감이 어깨를 짓누르는 순간 시야가 뿌옇게 물들었다. 울면 안 돼. 여기서 무너질 순 없어. 이제 거의 다 왔다. 저 앞에 목적지가...... 보인다...... 보였다....... 그대로 지나쳤다......


- 뭐해, 좌회전했어야지!

- 몰라. 깜박하고 지나쳤어.

- 그럼 저 앞에서 유턴해.


뭐? 유턴? 그런 건 운전면허 시험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40년 간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유턴을 지금 하라고? 마음의 준비도 없이 이렇게 덜컥? 


- 나 못해. 나 못한다고!


질주 본능에 충실한 우리의 애마는 멈춤 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Stop! Pull over! 신랑이 명령한다. 그래, 면허 시험에 떨어질 때도 들은 말이다. 나는 인도 쪽으로 차를 세웠다. 시동을 끔과 동시에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주행 시간 육십 분, 울지 않기에 실패했다. Do you still wanna drive? 그가 한층 나긋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울고 있는 제자에게 채찍질을 할 만큼 모진 사람은 아니란 걸 알기에, 나는 뱃심을 다해 펑펑 울었다. 안 해! 안 한다고! 나 운전 안 해!


월요일 아침. 나는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선다. 마스크를 쓴 채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트레인을 기다린다. 가방 안에는 어젯밤 끝내지 못한 소설책 한 권이 들어있다. 운전을 하면 삼십 분 만에 닿을 거리. 하지만 나는 걷고, 트레인을 타고, 버스를 타고, 다시 걸으며 그보다 두 배가 넘는 시간을 투자한다. 덕분에 이런저런 생각에도 빠지고 창 밖의 풍경도 감상한다. 언젠간 다시 운전대를 잡을지도 모르겠다. 열 번이 될지, 백 번이 될지 모를 실패를 거듭하고 나면 말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뚜벅이가 되어 잠시 쉬기로 한다. 유독 햇살이 좋은 날이다. 이런 시간도 나쁘지 않다. 





** Image by Terri Cnudd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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