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족

Robert, Jennifer and Ivan_

by RayKwon

그들은 Vancouver에 살고 있는 여느 평범한 가족과 다를 바 없다. Robert는 학교 선생님, Jennifer는 박물관 큐레이터. 매년 이곳의 집값은 치솟고 물가는 하늘을 찌르지만, 다행히도 그들에겐 매달 모기지를 갚고도 어느 정도 여유로운 생활을 지낼 수 있는 안정적인 직업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Rob은 비싼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외곽 도시로 빠져나가는 젊은 커플들에 비해 어쩌면 우리는 평범보다 나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십 대 중반에 만나 십 년 가까이 동거 생활을 하다 결혼의 울타리로 접어든지도 십 년 차. Jenn에게 프러포즈를 하고 결혼을 하기에 앞서, 그들은 일 년의 휴직기를 갖고 동쪽으로 날아갔다. 무겁고 커다란 배낭 두 개를 짊어지고 떠나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베트남 그리고 일본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익숙한 그들의 터전으로 돌아왔다. 배낭 두 개 대신, 비슷한 무게의 아이들을 어깨에 업고 떠날 미래의 가족 여행을 꿈꾸면서.


결혼식 장소는 시청이었다. Rob은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Jenn은 하얀 원피스를 입었다. 결혼식이 아니어도 어느 자리에서나 입을 법한 정갈한 차림이었다. 절친한 친구들이 witness가 되어주었고, 간단한 서약 끝에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다. 소박한 결혼식은 두 사람을 꼭 닮아 있었다. 신접살림도 마찬가지였다. Vancouver의 흔한 집 한 채의 값이 밀리언을 넘기 전에 그들은 신혼집을 구입했지만 새로 마련한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십 년의 동거 생활은 이미 투박하지만 익숙하고 정겨운 물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오직 하나, 예외가 있다면 거실 창가 옆에 놓인 장이었다. 키가 크고 조금 마른 거실장은 매해 그들이 여행지에서 가져온 기념품으로 조금씩 채워지고 있었다. 행복했다. Rob의 학교 방학시기에 맞춰 그들은 일 년에 한 번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곧 아이가 생기면 이런 여유도 없어질지 모르잖아_ 그것이 그들의 유일한 사치였다.


거실장이 기념품들로 절반 가까이 채워졌을 때, 두 사람은 fertility centre를 찾았다. 오랜 노력 끝에도 좀처럼 임신이 되지 않던 Jenn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서른보다 마흔에 가까운 나이. 조바심이 났고, 둘 만의 여행에 달뜨던 기분도 시들해졌다. 두 사람은 몇 가지 검사를 받고 그 결과에 따른 의사의 제안을 따랐다. 몸도 마음도 지치는 시간들이 연속적으로 흘렀다.


그리고 Ivan이 찾아왔다. 여기저기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녀석 덕에 부부는 가구를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주방 서랍에 숨겨 둔 간식거리를 용케 알고 찾아내 몽땅 엎어놓는 바람에 어린이용 서랍 잠금장치를 설치하기도 했다. Ivan을 위한 장난감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집안 구석구석 녀석의 자취가 묻어나지 않는 곳이 없었다. Jenn은 Ivan을 따라다니며 청소하기 바빴지만 입가에는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둘이었던 가족이 셋으로 늘어난 첫 해. Rob과 Jenn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나지 못했다. Ivan을 데리고 가기도 쉽지 않았고, 그렇다고 누군가에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대신 부부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함께 정원을 가꾸고, 집을 수리하고, 가족끼리 거실에 도란도란 앉아 책을 읽기도, 영화를 보기도 했다. 부부가 나란히 티브이를 보고 있노라면 Ivan이 살그머니 기어와 둘 사이를 비집고 앉았다. 토동토동 살이 오른 Ivan을 바라보던 Jenn의 얼굴에 부드러운 빛이 퍼지고 있었다. 그녀는 가만히 Rob의 손을 잡았다.


오늘은 Ivan의 5살 생일이다. 정확히 말하면, 녀석이 태어난 날이 아닌 Jenn과 Rob의 가족 구성원이 된 날.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면서 '둘이 함께여서 행복한 시간들'은 '둘 뿐이어서 고독한 시간들'로 변해갔다. 두 사람 모두 지쳐 있었다. 마지막이라 여긴 시도가 실패하고 더 이상 병원을 찾지 않기로 결심했을 때, Rob은 동물보호소에서 아기 고양이 Ivan을 입양했다. 그러니까 정확히 5년 전 오늘. Rob은 Ivan을 처음 만난 Jenn이 모처럼 보여준 환한 미소를 지금도 기억한다.

부부는 몇몇의 가까운 지인들을 Ivan의 생일 파티에 초대하였다. 누군가는 고양이 모양 케이크를 만들어왔고, 누군가는 새로운 장난감을 가져왔다. 그들은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각자가 준비해 온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Rob은 사람들 사이로 분주히 움직이며 음식을 준비하는 Jenn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옆에 조용히 앉아있는 Ivan도. Rob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퍼진다. Vancouver에 살고 있는 어느 평범한 가족의 특별한 저녁이 그렇게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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