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ugly and smelly

by Ray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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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평소 내리는 버스 정류장보다 조금 앞서 내렸다. 두 대의 차량을 하나로 엮어 만든 익스프레스 버스는 직장인들과 학생들로 뒤섞여 발 디딜 틈 없이 복작였다. 천천히 걸어볼까. 잠시 고민하던 사이 내 몸은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려버렸다.


밴쿠버의 중심을 관통하는 Broadway. 방금 전까지 좁은 공간에 함께 얽혀있던 사람들은 버스 밖으로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뿔뿔이 흩어졌다. 누군가는 직진을 하고 누군가는 교차로에서 방향을 틀었다. 다른 버스를 기다리는 이들도, 트레인 역을 향하는 이들도 있었다. 커피를 사려는 사람들도 제각각 취향에 따라 갈 곳이 달랐다. 도시의 아침. 그곳에는 거리의 사람들만큼이나 갈 수 있는 방향도, 목적지도 셀 수 없이 많았다.


모두가 제 갈 길을 가는 사이로 그가 보였다. 마치 명상이라도 하듯 앉아 있는 그의 무릎 위에는 작은 종이 판자가 놓여 있었다. 제멋대로 엉켜버린 밝은 갈색 머리와 성긴 수염. 아무렇게 걸친 듯한 지저분한 옷가지. 판자 위 글씨만이 그의 초라한 행색과 달리 정갈한 본새를 갖추고 있었다.


I am ugly and smelly_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솔직할 수 있을까. Hungry. Sick. Lost everything. Please help. 홈리스들이 도움을 구할 때 쓰는 내용은 대부분 비슷했다. 그런데 I am ugly and smelly, 라니. 날 것처럼 파닥이는 그 짧은 문장 하나가 내 명치를 강타했다.


나는 무관심을 가장한 채 그를 지나쳐 출근길을 서둘렀다. 돈을 좀 줬어야 했나. 아니지. 먹을 거라도 좀 사다 줄 걸. 홈리스를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거슬렸다. 에이. 퇴근길에 빵이라도 주고 가지 뭐.


그리고 늦은 오후.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 뻥 뚫린 대로가 아닌 어느 골목 틈으로 옮겨 잠자리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I am ugly and smelly. 보기 싫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용기가 내게도 있을까. 바닥에서 살면 내 마음의 바닥까지 드러낼 수 있을까. 아씨. 이게 뭐라고 그렇게 심금을 울려. 갑자기 코가 시큰했다. 하마터면 길에서 울 뻔했는데, 내게는 돌아갈 집이 있어 참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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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시간여행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작년 이맘때였다. 나는 가벼운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마음이 힘들지 않았다. 당시를 우울증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가벼운 것은 무엇이고 무거운 것은 또 무엇인지 사실은 알지 못한다. 앓고 있었는데, 라는 과거형이 맞는지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때는 그랬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를 울리려고 작정한 듯. 그랬다.


'지금'이라는 시간이 힘들면 글을 썼다. 내가 원하는 시간과 추억을 골라 그 안으로 숨어버렸다. 어떠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이 어쭙잖은 글들이 나를 달래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별거 아닌 기억도 반짝반짝 빛이 났으니까. 그런데 그 시간을 벗어나면 모든 것이 슬퍼 보였다. 내가 아프니까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앓고 있는 것만 같았다.




I am ugly and smelly_


솔직한 현재형 문장. 나도 언젠가는 '지금'이라는 시간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비록 그 순간이 반짝반짝 빛나지 않을지라도.


내 마음의 아픔이 언제나 같은 무게가 아닐 거라고 믿듯이

오늘 밤 바닥에서 한잠을 보낼 그의 내일도 조금은 가벼운 짐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Photo by Adrian Kirkegaar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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