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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불행을 만드는 행복의 공간

봉 마르셰(Le Bon Marché)를 중심으로 살펴본 백화점의 이중성

by 현이



Ⅰ. 행복의 공간


"지금까지 한번 도 본 적이 없던 광경 앞에서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 '저건,' 드니즈는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백화점이잖아!' (...) 최신 유행의 다양한 천들과 옷들을 진열해놓은 쇼윈도(...) 화려한 금박 장식들로 둘러싸인 유리문이 중이층까지 높이 솟아 있었다.”


위의 문장은 에밀 졸라(Emile Zola)가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의 주인공인 드니즈의 눈을 통해 묘사한 19세기 파리의 백화점의 모습이다. 실제로 파리 최초의 백화점인 ‘봉 마르셰(Le Bon Marché)’ 역시 위와 같은 묘사에 뒤지지 않을 만큼 화려한 건축물이었다. 이 백화점이라는 공간은 그저 단순한 대형 상점이 아니었는데, 공간의 곳곳에 근대 이행의 시발점이라 여겨지는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의 영향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먼저 백화점의 웅장한 외관과 화려한 유리천장, 크리스털 홀은 산업혁명을 통한 과학적 발전과 자본이라는 물질적 발전을 드러냈다. 또한 시설을 이용하는데 신분이나 계급에 따른 제한이 없었고, 소비하지 않더라도 공간을 즐길 수 있는 ‘윈도우 쇼핑(window shopping)’까지 생겨나면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사상적 발전이 이뤄진 듯 했다.

이처럼 유럽 근대성의 상징인 ‘백화점’은 누구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선물 같은 공간으로 여겨졌다. 그 때문인지 봉 마르셰는 등장과 함께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으며, 1863년에는 연간 매출 700만 프랑 달성 등 ‘소비 궁전’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화려하고 행복하게만 보였던 이 공간은 그 행복을 명분으로 사회 곳곳에 억압과 통제를 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근대성을 지향했던 당대 문화는 그들의 억압과 착취를 합리적인 이행 과정이라며 정당화하고, 암묵적으로 묵인해주었다. 이 때문에 필자 역시 어떠한 의심도 없이 19세기의 근대성과 백화점이라는 공간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주류문화로서 인정해 왔었다. 하지만 분명 백화점에서는 불행이 만들어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이면적 모습 역시 19세기의 근대를 이루는 요소 중 하나였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백화점의 이면적인 모습을 살펴볼 것이며, 이를 당대 계급 사회의 주요 구성원인 부르주아, 프티부르주아, 노동자를 기준으로 보다 이중성의 성격을 나누어볼 것이다.


Ⅱ. 백화점의 이중성

1. 프티부르주아, 소상공업의 몰락과 함께 무너지다


“지금 저들의 머릿속은 온통 이웃을 짓밟고 먹어 치우려는 생각만으로 꽉 차 있어. (...)

저놈의 백화점 하나 때문에 우리 같은 소상인들이 다 죽게 생긴 거란 말이지..”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서 등장하는 전통 소상공업자 ‘보뒤’는 자신을 비롯하여 주변 소상인들이 몰락하는 이유를 ‘저들’, 즉 대자본의 상징인 백화점으로 꼽고 있다. 소상공업자 중심의 프티부르주아는 백화점에게서 가장 배척되는 계급으로, 동일하게 소비자들로부터 이윤을 얻는다는 점에서 경쟁관계에 위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현실은 이들을 경쟁관계라고 정의하기 무색할 만큼 소상인들은 백화점에게 짓밟히고, 몰락했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의 원인은 백화점과 소상인 가게의 두 가지 큰 차이점, 외관과 경영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칠한 지 오래된 벽에 녹이 슨 건물은 이웃해 있는 루이 14세 양식의 저택들 사이에서 몹시

초라해 보였다. (...) 드니즈를 무엇보다 놀라게 한 것은 1층에 위치한 상점의 초라함이었다.”


드니즈가 앞서 백화점의 화려함에 놀라움을 표현했다면, 보뒤의 가게를 마주한 뒤엔 지하 저장고와 감옥이 연상되는 구시대적 모습에 놀라움을 표한다. 그들의 초라한 외관은 화려한 쇼윈도로 손님들을 끌어들이는 백화점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함이 당연했다. 또한 백화점이 등장한 19세기 중반 시기는 바로 오스만 사업, 파리의 대 개조사업이 진행되던 시기였다. 백화점은 이 사업을 통해 등장한 신식 근대 건축물이었는데, 반면 소상공인들의 가게는 근대의 도로망과 시설들에 어울리지 않는 외관이라는 이유로 철거와 재건축의 대상이 되었다.

백화점의 새로운 판매 방식 역시 소상공인 몰락의 주요 원인이었다. 봉 마르셰의 주요 전략은, 첫째, 박리다매를 추구했고, 둘째, 정찰 판매를 시행했으며, 셋째, 고객의 자유로운 출입을 보장했다. 백화점은 박리다매를 위해 취급 상품의 소매 마진을 대폭 인하했는데, 소상인들이 30~40%의 마진을 더할 때 18~20%의 마진만을 더해 가격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 이러한 가격 인하에 바겐세일, 미끼상품, 상품의 다양화 전략이 더해지면서, 전문적으로 특정 상품을 판매하는 소상공인들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백화점의 정찰 판매와 자유로운 출입은 전근대의 불편한 관습으로 여겨졌던 가격 흥정과, 가게의 강매 분위기를 해소해주는 것이었다. 실질적인 편리에 따라 고객들이 백화점으로 향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처럼 대자본의 욕망은 상당히 폭력적인 힘을 내재하고 있었다. 이들은 보뒤의 표현처럼 주변의 소상인들을 파멸시키고 자본의 규모를 키우는데 열을 올렸다. 게다가 이들은 근대 이행의 합리성을 통해 소상공인들의 몰락을 정당화시켰다. 즉, 시대의 변화를 따르지 못한 구시대적인 것이 제거되는 것은 시대 이행의 과정일 뿐이며, 그를 통해서만 근대의 파리가 건강하게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우리가 짚어보아야 할 점은 오스만 사업의 주도자도, 백화점의 운영자도,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의 특성을 규정한 자들도 모두 자본가, 즉 상층 부르주아의 일부였다는 점이다. 소상공인들을 비롯한 프티부르주아들 중 그 누구에게도 전근대적 특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시대를 위해 희생당해야 할 의무는 없었다.


2. 주체성에서 소외당한 노동자

19세기 파리 노동자들의 생활은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는 자유와 평등에서 소외되어 왔었다는 사실을 드러내 준다. 노동자들은 전근대적 요소들을 어떻게 접하고 있는지에 따라 나누어볼 수 있는데, 먼저 간접적으로 근대적 생활에서 소외되었던 노동자들은 바로 봉 마르셰 직원 이외의 노동자들이었다. 백화점 및 근대 시설들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그들의 의의에 따라 이용에 대한 계급 제한이 없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오스만 사업에 의해 도심의 주거지를 철거당하고, 도시 외곽에 거주하게 됨에 따라 그러한 근대 시설들과 물리적으로 분리되었다. 게다가 여가 시간이 거의 없는 생활을 했던 노동자들에게 여가를 즐기기 위해 도심으로 향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며, 그들에게 근대성이란 계급 사회의 상징물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보다 심각했던 문제는 바로 근대적 공간이라 여겨지는 봉 마르셰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조차 완전한 근대성을 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자본 그 자체인 백화점은 점원들 역시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하나의 부품으로써 움직이길 원했다. 이는 노동자들을 도구화시킴으로써 크게 세 가지의 문제점으로 이어졌는데, 첫 번째 문제는 노동 문제의 심화이다.

“대매출 시즌이면 일요일에도 출근을 해야 했고, 노동시간은 15~16시간에 이른 데다가

노동 공간은 비좁아서, 점원들의 건강은 극단적으로 열악한 형편이었다.”

전근대의 노사관계는 혈연·지연적 관계 속의 가족적 분위기였다면, 넓은 가게와 다수의 점원으로 이루어진 백화점에서는 친근한 분위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노동자는 이윤을 위해 합리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백화점의 부품이었으며, 이는 위의 설명과 같은 노동문제로 이어졌다.


두 번째 문제는 성과급 도입으로 인해 노동자 간의 적자생존 경쟁이 만연해진 점이다.

“그들 대부분은 바로 옆에서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말을 걸거나 눈길 한 번 주는 일 없이 홀로 걷다가는 빨려 들 듯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점주는 노동자들의 의욕과 성과를 끌어올리고자 성과급 제도를 도입하지만 이는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먼저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성과를 위한 지나친 경쟁이 발생해 연대감이 생성되지 못했다. 이는 위 인용문에서 묘사하고 있는 점원들의 출근길 모습에서도 드러나는데, 이러한 분열 분위기로 인해 노동문제가 심각성에 비해 노동조합이 오랫동안 형성되지 못했다. 또한 점주는 성과급의 효과를 높이고자 일상생활이 어려울 만큼 낮은 수준의 기본급여를 지급했다. 능력 있는 직원은 기본급여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지만, 무능한 직원들은 노동을 하면서도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모순적인 착취를 당해야 했던 것이다. 또한 성과를 근거로 급여를 지급하는 만큼 성과로 해고 역시 쉽게 결정되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고용은 늘 불안정한 상태였다.


세 번째 문제는 노동자를 계급 간 차별의식 형성을 위한 도구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봉 마르셰의 점원들은 같은 공간에서 상·하위 계급으로서 역할을 부여받았다. 먼저 하위계급으로서는 백화점의 주 고객인 부르주아지들을 위한 ‘접객 기계’로서 움직였다. 이름 대신 점원 번호로 불리고, 손님들보다 비싸고 품질 좋은 물건을 사서 입어서 안된다는 규제를 받는 등 부르주아들이 하층 계급과의 차별 의식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다. 하지만 황당하게도 이들은 봉 마르셰라는 백화점의 품위를 위해 완전한 하층 계급인 육체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상위 계급으로서의 차별의식을 가져야 했다. 점원들에게만 주어진 사원식당, 기숙사, 연금제도 등의 혜택은 자유롭지도, 평등하지도 못한 계급의식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3. 만들어진 소비자, 부르주아

부르주아들은 생계가 몰락하거나 직접적인 규제를 받아온 타 계급과 달리 백화점의 고객으로서, 자율적인 선택을 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백화점에 출입하고, 사치품을 구매하는 행위는 백화점이 만들어낸 새로운 계급의식이 암묵적으로 그들에게 부여한 특정한 역할이었다. 이처럼 상당히 암묵적이고 비가시적으로 이루어졌던 일상에의 억압은 백화점의 광고와 판매 전략에서 드러나는 교육되는 계급의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봉 마르셰는 전단지, 팸플릿, 카탈로그류 등의 다양한 수단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백화점의 존재와 행사들을 알리곤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광고 수단은 바로 백화점의 연간 행사 예정표를 붙인 수첩, ‘아쟁다(Agenda)'였는데, 이는 이상적인 이랑 생활을 소개하는 동시에 그에 필요한 용품들의 행사 계획까지 알리며 광고의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이 아쟁다의 실질적 효과는 현대의 프랑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바캉스가 바로 대표적인 예이다. 7월 왕정 무렵 상류층의 관행으로 등장한 바캉스는 아쟁다를 통해 부르주아들에게 전해졌고, 바겐세일 등으로 실제로 부르주아들이 바캉스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함으로써 바캉스를 일상적 요소로 안착시켰다. 이처럼 아쟁다는 새로운 규범과 목표, 문화에 대한 대중적 해설자의 역할을 해냈던 것이다.

이처럼 백화점이 조장한 사치 문화는 부르주아, 특히 여인들에게 널리 퍼져 나갔다. 여인들은 점차 자본과 소비만을 삶의 가치 척도로 여겼고, 사치의 대중화는 그녀들을 백화점의 유혹에 지배, 착취당하는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여성들을 소진시키는 메커니즘은 백화점을 성장시켰지만, 이로 인해 만연해진 물신주의는 문명사회의 도덕적 가치와 인간성을 위협했다. 점차 필요성보다 과시욕을 위해 소비하고, 가정 경제의 파산에 이르기까지 소비를 즐기거나, 욕구를 이기지 못한 병리적인 도둑질, 범죄까지 발생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백화점은 상품의 소비를 통해 ‘행복’을 선물하는 공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앞선 병폐들을 고려할 때 과연 소비자가 아닌 자본이 규정해낸 행복이 진정한 행복인지, 오히려 부르주아는 자유롭고 평등한 조건에서 자신의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Ⅲ. 의문을 제기하다

‘백화점’이 만들어낸 사치 문화와 강력한 자본의 힘은 현대 사회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사회적 현상이다. 게다가 여전히 백화점은 화려하고 합리적인 공간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그러한 공간의 이면, 모순적인 모습에 눈을 돌리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려움을 겪고, 노력을 들이더라도 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백화점이라는 공간의 모순적 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백화점은 ‘근대성’을 상징한다는 이유로, 그에 대한 믿음으로 모순적인 억압과 통제마저 정당화되고, 미화되어왔다. 하지만 본문에서 살펴보았듯, 백화점은 자신들이 제시하는 소비의 가치, ‘물신주의’에 따라 사회 구성원들을 통제해왔다. 구시대적으로 여겨지는 사회 구성원은 가차 없이 몰락시켰고, 점원들과 소비자를 비롯한 백화점의 구성원들에게는 자신들의 가치를 주입시켰다. 그들은 새로운 욕망과 의식을 만들었고, 이는 옳고 그름의 평가조차 없이 사회의 주류 사상으로 확산되어 간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한편에서는 일상의 작은 부분인 소비만을 장악하고 있는 이 공간을 통해 시대 이행과 근대적 억압을 논하는 것은 과장된 해석이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 반론에 대한 답은 『역사의 요동』의 저술자, ‘해리 하르투니언’의 표현에서 찾을 수 있다.

“일상생활은 점점 더 사실들에 대한 무감각한 경험이 아니라

사회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모순과 열망들이 증상으로 드러나는 장소로 인식되었다.”

이상적인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삶을 계획하고, 필요를 느끼며, 그에 따른 소비행위를 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다. 하지만 너무나 일상적이라 무감각해진 이 메커니즘은 곧 우리의 삶이자, 생활의 전부와 다름없다. 게다가 가장 기본적인 만큼 인간의 근본적인 사상과 태도가 일상 곳곳에 반영되기 때문에 꾸밈없는 인간성을 살펴보기에 일상만큼이나 좋은 사료가 없는 것이다.

백화점 역시 이러한 점에서 더욱 중요하고 의미 있는 공간이다. 일상생활의 공간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욕망과 의식은 또다시 일상생활의 모습으로 사회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소비’라는 일상 공간인 백화점을 주목하며, 그 속에서 시대의 특징과 모순을 논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논의 끝에 찾아낸 백화점의 모순은 간단하다. 백화점은 일상 속에서 이윤과 자본의 성장을 위해 근대의 근본 사상인 ‘자유’와 ‘평등’을 앗아갔다. 그리고 그로 인한 억압과 통제는 자본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일상생활 속에 만연해졌으며, 심지어 현대 사회에서도 그러한 통제적인 모습을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왜 소비를 통해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지, 왜 고급스럽고 사치스러운 상층 계급의 문화를 실천하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에 대한 의문은 늘 의문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필자는 바로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근대의 백화점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의식 속에 남겨진 일상적인 소비문화와 계급의식을 돌아보고, 자연스러운 일상생활을 의심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이전과 달리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Emile Zola, 박명숙 역,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1』 (시공사, 2012)

가시마 시게루, 장석봉 역, 『백화점의 탄생 : 봉마르셰 백화점, 욕망을 진열하다』 (뿌리와 이파리, 2006)

이찬규, 「장소의 탄생 : 에밀 졸라와 백화점」, 『프랑스 문화예술연구』Vol.57.(프랑스 문화예술학회, 2016)

해리 하루투니언, 윤영실·서정은 역, 『역사의 요동 : 근대성, 문화, 그리고 일상생활』 (휴머니스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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