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되지 않은 자 만이 누리는 타이밍의 장난
그날 오후는 정말 아름다웠다고.
몇 시 몇 분에 이 코스를 돌아야 해가 지는 시간과 맞아떨어지는지
이 가게에서는 어떤 메뉴와 어떤 음료를 주문해야 그날의 날씨와 잘 페어링이 되는지
이렇게 계획적인 사람, 나영규는 카페, '그날, 오후'에서 기가 막힌 그 일몰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계획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말 수가 적지만 모든 말이 진심인, 오히려 김장우는 그날 의도치 않은 타이밍에 카페 '그날, 오후'에서 최고로 기가 막힌 일몰을 그녀와 함께 누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 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 양귀자 '모순' 中
일단 잘생기면 좋아하고 조금 또래 대비 조숙? 하다 쳐도 좋은 차 타는 남자가 멋있어 보일 어린 시절에 나는 이상형을 말할 때 자주 이렇게 말하곤 했다.
"털 없는 사람보다는 털 많은 사람이 매력 있고, 남자다운 사람이 좋아."
아 그리고,
"고생 안 하고 힘든 거 잘 모르고 화초처럼 자란 사람은 매력이 없어."
친구들은 나에게 너는 눈은 좀 낮은 것 같다고 했으나 그 말을 별로 인정하진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나는 눈이 높았던 것 같다.
주로 이런 답변에 왜냐고 반문하거나 대충 이해 못 한 느낌으로 어영부영 넘어가는 반응이 보통이었고,
나 스스로 조차도 내가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는 그냥 느낌적인 느낌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실로 그랬다.
부모님이 일궈놓은 옥토 밭에 금수저 혹은 은수저로 태어 낫을 뿐이면서 자신의 공인 양 기름기가 묻어나는 사람은 정말 별로였다. 키가 큰 건 좋은 것이지만 키 큰 게 자기 업적은 아니듯이 말이다.
지금도 그 마음이 그대로냐 묻는다면 그것은 노코멘트하겠다. (후후)
최근 오래전 베스트셀러인 '양귀자'의 '모순'을 읽으며 인생에 대한 정확한 통찰력을 발견했다. 대작가는 괜히 대작가가 아니므로 작가의 책밭에는 늘 작은 보물이 숨어있기 마련이었다.
모순을 읽고나서부터는 모든 예술과 일상의 소재는 '모순'의 통찰로 엮여있다는 걸 찾아내는 재미 또한 발견하는 중이다.
가령, 영화 '얼굴'과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에서도 모순은 다양한 온도와 색감으로 그 통찰을 빚어낸다.
(여기서부터 약간의 스포 있음 주의)
'얼굴'의 도장 장인이 처음부터 아내의 외모와는 상관없이 그녀의 친절과 대화에서 애정을 느끼고 결혼했음에도 아내의 얼굴이 사실은 '못생김'을 알게 된 후로 그녀를 모든 자신의 불행 근원으로 삼고 원망한다.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 그 사이엔 과연 어떤 갭이 있는 것이며
'보이지 않음에도 못생긴 것은 정녕 의미가 있는 것이던가?'라는 의문이 모순스러웠다.
'은중과 상연'을 보면서는 소설 '모순' 속의 두 쌍둥이 여인이 오버랩되었다.
같은 날 같은 시 태어난 일란성 여자 쌍둥이는 '불행의 양보'라는 모순적인 일시적인 어떤 상황을 통해, 대단히 상반되는 일생을 살아가게 된다.
같은 얼굴이지만 부자이며 하루하루가 그저 평온함의 극치인 언니.
같은 얼굴이지만 가난하고 날마다 사고 치는 아들, 툭하면 때리고 집 나가는 남편. 그리고 더없이 가난한 형편의 동생.
우리의 계산대로라면 꽃병에 무슨 꽃을 꽂을지, 오늘은 어딜 가야 하얗게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를 만끽할 수 있을지가 유일한 고민인 언니의 인생이 행복한 것이 맞다.
하지만 언니는 가난하고 괴로움으로 가득 찬 동생의 '사람 냄새나는 인생'을 부러워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해 버리는 완벽에 가까운 모순으로 작가는 인생을 얘기한다.
인생의 불행, 예기치 못한 슬픔.
사건과 사고, 불운한 캐릭터의 가족.
부족한 통장의 잔고로 인한 몸과 마음의 고생, 다사다난한 가정사.
이런 것들은 모순적이게도 우리를 더 단단하고 빛나게 한다.
소위 말해 인생에 대한 '맷집'이 생긴다고나 할까.
스스로 그런 맷집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또 그런 상대를 원했던 것이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부모님이 꽂아준 통장의 돈을 빨대로 빨아먹지 않는,
조상의 우월한 DNA로 인해 훤칠한 키로 본인의 어깨에 힘주지 않는.
그냥 자신 다운 그 자체로 고유의 은은한 빛이 나는 사람.
뭐 그런 너낌적인 너낌.
작정하고 뭔가 잘하려고 하면 꼭 엎어져 잘 되지가 않듯이
완벽한 것 같은데 한껏 망가져 있는 이가 있듯이
진열된 것 중 제일 새것 같은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만들어진 물건처럼
이러저러한 아이러니한 모순으로 내 인생도 채워져 가고 있다.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게 모순이라면,
당장 내일 아침의 모순은 또 어떻게 맞닥뜨려야 좋을까?
이걸 생각한다는 거 자체도 어쩌면 모순이다.
그냥 다 모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