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운더리를 정해주지 않으면 현기증을 느끼는 게 아이
아침이면 매일같이 투정과 울음바다...
혹시 아이에게 우울증이 있는 게 아닌지 걱정 아닌 걱정을 해보기도 한다. 아직 테스트를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닌지라 해보진 않았지만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감정의 해일이 나를 향해 쇄도한다. 아아... 어제 화냈으니 오늘은 화내지 않아야지 하면서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은 여전하다.
오늘은 소리를 버럭 지르지 않고 넘어갔다. 일어나서 나갈 때까지 주요 쟁점이 되었던 화제는 엄마와 떨어지기 싫다는 것과 엄마 사진을 어린이집에 가져가겠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엄마 사진에 꽂힌 것 같았다. 당장 사진을 찾아보고 출력을 할 여유가 없어서 계속 주말에 할 수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어젯밤에는 잠자리에 누워서 왜 어린이집에 일찍 가야 하는지 아이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엄마가 보고 싶을 때 사진을 보는 게 어떤지, 그렇다면 주말에 같이 사진을 골라보자고 이야기했었고 당사자인 딸도 동의를 했지만 어째서인지 아침이 되니 사진 찾는 작업을 바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어머나 맙소사,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이시어~! 내가 아는 모든 신을 총동원하여 마음의 울렁거림을 참아냈다.
나는 감정 통제에 어려움을 느끼는 어른인가? 아닌가? 자문해 본다.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울화통이 치밀어 주먹으로 바닥을 세게 두어 번 내리쳤었다. 아이가 나의 거칠어진 감정을 느끼고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순간 나도 나를 잘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명확한 선, 명확한 울타리, 제한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생활을 잘 영유하도록 해야 한다는 건 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어떤 한도 내에서 무얼 해야 하는지 모르고 제한이 없는 코스믹 안에서 당황스러워하며 힘들어하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그런 혼란스러움을 엄마에게 쏟아낸다. 감정의 소용돌이를 항상 부모에게 쏟아내는 게 아이이다. 부모로서 당연히 매번 맞이하는 감정의 일렁임을 알아차리고 잘 보듬어 주면서 스스로 통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게 맞다. 도와주는 과정에서 나도 같이 울렁거릴 수도 있다는 건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렇게 감정 소모를 하고 오늘은 걸어가는 시간이라도 더 끌어보겠다고 킥보드를 타지 않고 천천히 걸어가겠다고 한다. 가면서 특별히 말을 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어서 기분이 축 처져 있는 게 느껴진다. 손만 꼬옥 잡고 조용히 걸음을 옮긴다. 어린아이인데 얼마나 힘들까.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나는 유치원에 혼자 걸어 다니고 피아노 학원도 혼자 다녔던 게 기억난다. 내가 아이를 너무 의존적으로 키우는 건가 싶기도 하다. 아이들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데 다리가 다 후들거렸다. 오늘 쓸 에너지를 다 소진해버린 기분이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무엇이든지 선 결정 후 통보하셨기 때문에 그런 방식에 신물이 나 있던 사람인지라 아이에게 제한적인 범위를 정해주고 있지만 아이에게 감정이나, 의견을 한 번이라도 더 물어봐주고 있다. 상대방이 나보다 어리고 약하고 그런 걸 떠나서 존중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물어본 다음에 후회하는 날도 적잖이 많다. 아이이기 때문에 아직은 어른처럼 이성적인 판단도 할 수 없고 자신의 입장만 고수할 때면 괜히 물어봤나 싶을 때도 있다.
오늘도 육아에서 찾아오는 고민과 애환이 있지만, 단호하게 제한해야 할 부분은 그렇게 해나가자고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