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에게 개인주의를 넘겨주는 미래
영국 록밴드 폴리스의 유명한 노래 가사처럼 당신이 쉬는 모든 숨결, 당신이 하는 모든 움직임, 당신이 깨뜨리는 모든 관계를 주시하는 시스템을 상상해보라. 당신의 은행계좌, 심장박동, 혈당 수치, 섹스 행각을 감시하는 시스템을. 그런 시스템은 당신 자신보다 당신을 더 잘 알 것이다. 사람들을 나쁜 관계, 잘못된 직업, 해로운 습관에 가두는 자기기만과 망상도 구글을 속이지는 못할 것이다. (중략)
461p
자유주의는 이야기하는 자아를 신성시하고, 투표소, 슈퍼마켓, 결혼식장에서 선택할 권한을 이야기하는 자아에게 준다. 수백 년 동안 그렇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던 것은 이야기하는 자아가 온갖 종류의 허구와 판타지를 믿는다 해도 그만큼 나를 잘 아는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나를 더 잘 아는 시스템이 생겼는데 이야기하는 자아에게 계속 권한을 맡기는 것은 무모한 일일 것이다.
463p
인간이 개인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스스로 선택의 권리를 준 것은 모든 인간의 삶을 존중하는데 기초를 뒀기 때문일 것이다. 유발 하라리의 주장처럼 이때까지는 어떤 가치를 선택하는 순간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연산처리가 없었기 때문에 각자의 의사결정이 힘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비단 효율성에만 가치를 두지는 않는다. 내 생체 데이터, 주변 환경의 모든 수치들이 통계적으로 어떤 결정 값이 최고의 효율적인 선택지임을 보여주더라도 사람은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의도적으로 바보 같아 보이는 결정을 내릴 때가 있다. 사람은 효율성에 따라서만 사는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내 모든 데이터들이 노출되고 연산처리되었을 때 비효율적인 선택지를 택할 용기를 내기란 쉽지 않은 사회가 올 것임은 분명하다. 어떤 미래를 맞이할지는 모르겠지만 저자가 책의 앞부분에서 말했던 것처럼 아무리 펼쳐지는 미래의 경우의 수들을 펼쳐볼수록 더욱 복잡하고 예측불가의 미래가 펼쳐지더라도 그런 경우의 수들을 곰곰이 따져보고 충분히 논의해보며 나아가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