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빠르게 끌어당기고 있었고, 조수와 바람도 곧장 그쪽으로 나아가도록 최적의 상태였다. 그는 믿을 만한 짐꾼에게 편지 두 통을 맡기며 자정이 되기 한 시간 반쯤 전에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말이 도버를 향해 움직이자 여행이 시작되었다.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 관대함 그리고 가문의 명예 를 위하여!" 가련한 죄수의 절규는 그로 하여금 웅크렸던 가슴을 펴게 했다. 그는 사랑하는 모든 것을 남겨 두고 자석 바위가 끌어당기는 대로 흘러갔다.
-350p
기구(崎嶇)한 운명. 험할 기(崎)에 험할 구(嶇) 자를 쓰는 험하디 험한, 험함의 제곱. 인생이나 운명을 주로 수식해서 쓴다. 이번 책의 등장인물의 운명은 말 그대로 기구하다. 온 세상이 그를 비극의 무대로 끌어당기고 주변인물들도 같이 휘말려 버린다. 이렇게 까지 해야 돼? 싶지만 창작자 입장에선 극찬이다. 스토리 쓰는 사람은 주인공을 어떻게 핀치로 몰아넣어야 맛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일이다. 물론 그들도 주인공을 사랑한다.
이런 기술(?)도 결국 경험과 취재에서 우러나온다. 내 인생이 기구 하지 않는 이상, 상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디테일이 깊어야 독자도 몰입한다. 그래서 작가들의 초기 작품은 보통 그가 가졌던 직업과 관련이 많다. 데뷔하기 전까지는 취재에 쓸 돈과 에너지가 한정적인데 자신의 직업에는 훤할 테니까. 웹소설이나 웹툰의 소재 중에 학원물, 이세계물이 많은 것도 고증이나 특별한 경험이 필요 없다는 편리함이 있어서다. 일본 미스터리 작가 기시 유스케는 글쓰기 팁을 담은 <나는 이렇게 쓴다>에서 직장은 다양한 소재가 존재하는 최고의 정보원으로, 자신은 생명보험회사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검은 집>이란 소설을 썼다고 했다.
나도 그런 면에서 후회하는 것이 있다. 전 직장을 소홀히 다닌 것. 그때부터 만화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보니 느슨했다. 빨리 퇴사한 건 둘째 치더라도 진심으로 다닐걸, 다 도움이 되는 건데. 성과가 나오지 않아도 아쉬워하지 않았고 평가가 박해도 그러려니 했다. 이건 꿈을 위해 희생하는 중간과정이라는 생각에 사로 잡혀 한발 물러난 느슨함으로 보상을 받으려 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경쟁을 외면했다. 그러다 보니 동료직장인들의 고민과 애환도 잘 와닿지 않았다.
그 대가로 작년 한 해 스토리 때문에 너무 골머리를 썩였다. 보드게임을 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스토리를 구상한 적이 있는데 보드게임은 나의 취미여서 통달했지만 게임을 하는 인물의 직업과 일상을 그리는데서 탁탁 막히곤 했다. 그렇다고 학원물로 그리기에는 지금 한 반에 몇 명이 수업받는지도 모른다.
회사 다닐 때 업무 하나하나를 내 일처럼 붙들고, 진심으로 뛰어들었다면, 동료들의 고민과 걱정을 같이 통감했더라면 그 분야를 소재로 만화 한 편은 뚝딱 그리지 않았을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배우는 거, 즐기는 거 모든 것이 소재가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언젠가는 두 번째 직업을 가져서 그걸 만화로 그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