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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UNGIL큰길 Apr 09. 2021

나는 왜 항상 시간이 없을까?

새벽 퇴근길 피곤했지만 맥주는 마시고 싶고



2009년 12월 어느 날,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어가 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하늘에선 눈발이 매섭게 흩날리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회사에 남아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 며칠 째 야근으로 피로가 쌓인데다가 눈까지 내리고 있어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퇴근하겠습니다.’ 라는 한 마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제품개발을 담당하던 우리 부서의 분위기는 삼엄했다. 시제품 테스트에서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고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모두가 고군분투 중이었다. 신입직원이었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저 눈치만 보며 부서장님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새벽  시가 다되어서야 일을 마치고 사무실 밖으로 나왔을  이미 눈이 발목을 덮을 정도였다. 온통 공장들로 가득  있던 회사 앞거리는 적막했고 수북이 쌓인  위로는 누군가 걸었던 흔적을 찾아볼 수도 없었다.  시간 세상엔 마치 나 혼자만 깨어있는 듯했다. 거센 눈발은 여전히 그칠  몰랐고 퇴근을 서둘렀다. 하지만 내가 곧장 향한 곳은 집이 아니라 편의점이었다.


신입직원으로 입사해 일을 시작한 지 몇 달도 되지 않았는데 매일 야근에 주말 출근까지 숨이 막힐 것 같았다. 10년 넘게 근무를 하고 있는 과장님의 모습은 앞으로의 내 상황이 더 나아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현실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늘 회사 일로 고뇌하는 모습, 입에 욕을 달고 다니는 그의 모습, 오직 술과 담배가 그의 삶의 유일한 낙인 것처럼 보였다. 매서운 한파 속 바깥 날씨에도 내 속은 타는 듯했다. 차가운 맥주라도 들이켜야지 타는 속을 달랠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 걸었을 뿐인데 온몸에 눈이 수북했다. 눈을 털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간 나는 곧바로 냉장고에서 캔 맥주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잠시 눈을 붙이고 출근해야 했기 때문에 맥주 한 잔을 제대로 마실 여유조차 없었다. 나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맥줏값을 계산하고 숙소를 향해 걸으며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싸늘한 바깥 날씨에 맥주 캔은 순식간에 얼음덩어리처럼 차가워졌다. 손이시려 맨손으로는 잠시 들고 있기도 힘들 정도였지만 그 날의 맥주 맛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시원하고 좋았다. 뜨겁게 쌓여있던 피로와 갈증을 한순간에 식혀버리는 듯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나는 서른 살 늦깎이에 한 전자회사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서른 살은 신입직원으로는 적잖은 나이었지만,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마침내 전공까지 살려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천만다행이었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나는 신제품 개발 부서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을 배우고 적응하는 데 바쁘긴 했지만, 그리 힘든 줄 몰랐다. 그러나 입사한 지 반년 정도 지나자 신제품 출시일이 가까워지며 퇴근 시간이 점점 늦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자정을 넘기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긴장감은 더해졌고 주말 근무도 마다할 수 없었다.


도무지 개인적인 시간 여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회사의, 회사에 의한, 회사를 위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해가 뜨기도 전에 출근해서, 달도 저물어 갈 때쯤 퇴근하기를 반복했다. 당시 해를 볼 수 있는 시간에 출퇴근하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언젠가 하루는 이런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나에게 하루 한 시간이 주어지면, 하루를 산책으로 시작해 체력을 기를 텐데. 또 하루 한 시간이 주어지면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거나 책 100권 읽기에 도전해 목표를 달성할 텐데. 또 나에게 하루 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만큼 자유가 간절했다.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시간 여유가 생긴다면 하고 싶은 것들 노트에 적어보았다. 30개가 넘는 목록이 만들어졌지만 끝내 단 한 가지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1년 6개월 만에 나는 첫 직장을 그만두고 말았다.

 



     

나는 왜 그렇게 회사에 매달렸을까?


첫 직장을 퇴직한 후 천신만고 끝에 꼬박 1년이 걸려 재취업에 성공했다. 두 번째 직장은 소위 신의 직장이라고 하는 공공기관이었다. 이제 나도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는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과 개인의 삶에서 전보다 만족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직 후에도 나는 여전히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입사 후 해외 프로젝트 관리 업무를 담당했는데 시간 배분이나 일정 관리에 능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주어진 업무시간으로는 늘 시간이 빠듯했다. 퇴근 후나 주말에도 일을 집에까지 가져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언제쯤 시간 여유를 찾을 수 있을지. 시간 형편이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0년 가까이 연차가 쌓이면 시간 형편이 나아질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니라는 것을 겪고 보고 나서야 알았다. 신입직원 때보다 업무는 훨씬 더 능숙해졌을지 몰라도 올라간 직급만큼 담당하는 일의 양과 책임 역시 비례해서 커졌다. 이제는 바쁨이 일상이 되어 숨을 쉬는 것조차 회사를 위해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곧장 출근 준비를 하고, 출근 후에는 온종일 회사에서 일하며, 퇴근하고 나서는 다음 날 다시 일하기 위해 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렇다 할 여가나 취미 활동도 하지 않았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이렇듯 나의 일상생활에서의 시간은 회사를 중심으로 맞춰져 있었다. 일이 우선이 되어 개인적인 것들을 챙기는 것은 늘 뒷전이었다. 잘 풀리지 않는 일 생각에 주말이나 휴일에도 편히 쉬지 못했다. 가족 행사나 부모님 생신도 제대로 챙기지 못할 때가 많았다. 심지어 인생의 가장 중요한 행사인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준비하는 것마저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아이가 태어나서 출산휴가를 보내던 중에도 회사에 갈지 말지 갈팡질팡 고민했다. 나는 회사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있었다. 혹여 바쁘지 않으면 ‘무엇인가 빠트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며 불안함마저 느끼곤 했다. 내 삶의 주도권마저 일에 넘겨 버린 것 같은 삶이었다.


문득 몇 해 전 읽었던 책‘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가 생각났다. 일본의 한 호스피스 의사가 1,000명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죽음을 앞둔 이들의 죽기 전 가장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중 다섯 가지를 뽑자면 다음과 같다.      


 ‘죽도로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였더라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였더라면’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더라면’     


훗날 나 역시 내 삶을 돌아보는 날이 있을 것이다. 은퇴 이후가 될 수도 있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 지금의 내 모습을 바라보면 나는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도 나는 이렇게 후회를 할 것 같았다.     


 “나는 왜 늘 시간에 쫓기며 살았을까? 왜 정작 소중한 것들은 그냥 흘려보냈을까?”      


회사 생활은 무난한 편이었다. 동료들과의 관계도 좋았고 업무에서도 큰 실수도 없었기 때문에 평판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에서의 생활 이외 다른 것들을 크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반쪽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내 삶을 당장 뜯어고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직장인 열의 일곱은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는데, 그냥 일에 매달려 바쁘게 사는 것이 월급을 받는 직장인의 숙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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