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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UNGIL큰길 Jun 18. 2021

직장인, 장거리 레이스 선수가 되어야 한다.

  “의욕은 사라지고 하루 분량을 채우는 데 급급했다. 그리고 다시금 시간의 압박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70페이지 보고서 완성을 위해서 하루에 3페이지 반을 쓰겠다는 계획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하루 목표를 달성하면서 보람이 느껴졌고, 무엇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쌓여가는 보고서의 장수를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일이 조금씩 진척되는 것이 보이자 걱정이 줄어들었다. 마감 날짜까지 일을 끝낼 수 있다는 확신에 출근길마저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그런데 2주 정도 시간이 흐르자 처음의 의욕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처음의 재미와 의욕은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벌써 슬럼프가 찾아온 것일까? 보고서를 쓰기 위해 파일을 여는 것조차 스스로 몇 번씩 다독여야 가능했다. 처음에 가졌던 충만한 의욕은 온 데 간데 사라지고, 무조건 써야 한다는 의무감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보고서 마감기한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더는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마음은 더욱 다급해지고, 불안감은 커졌다. 그럴수록 일은 더욱 더디게 진행될 뿐이었다. 꾸역꾸역 보고서를 쓰며 ‘다음부터는 절대 먼저 나서지 않겠다.’라는 다짐만 수없이 했다.


  또다시 시간이 지나 마감기한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마감효과(Deadline Effect) 덕택일까? 집중력이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말 싫고 좋고를 따질 여유조차 없었다. 최대한 속도를 내어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마감효과를 이용하면 업무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여러 연구 결과를 나 스스로 증명하듯 보고서 쓰는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의 압박을 받으며 보고서를 쓰다 보니 분량 채우기에 급급하며, 보고서에 필요한 자료 수집이나 내용 정리에는 신경 쓸 겨를이 거의 없었다.


  마침내 제출해야 하는 날짜에 맞추어 보고서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시간에 맞춰 겨우 쓰다 보니 새로운 사업에 적용할 만한 특별한 아이디어를 포함하거나 보고서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내가 만든 보고서는 평범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 업무 처리 방식에 대한 나의 고민은 계속되었다.




“어떻게 하면 일을 여유 있게 하면서 품질을 높일 수 있을까?”


  문득 학창 시절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늘 시험 하루 전에야 벼락치기 공부를 하곤 했었다. 시험 전날 딱 하루만 공부하는 습관은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교에 다닐 때까지 계속됐다. 이렇게 벼락치기 공부 방법을 오랜 기간 유지했던 이유는 노력 대비 효과가 대단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단 하룻밤을 꼬박 새우면 반에서 중상위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평소 아무 걱정 없이 지내다 딱 하루만 고생하면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을 얻을 수 있으니 그 유혹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나의 이런 학창 시절의 공부 습관이 굳어져 직장 생활에서도 벼락치기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중학교에 다닐 때 같은 반 친구 중에 놀 땐 실컷 놀고, 시험공부도 그리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같은데 항상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땐 그 친구가 머리가 좋아서 그럴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친구의 두뇌가 명석했던 것보다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다음날 배울 것들을 예습하고, 수업시간에 집중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평소 작지만 꾸준한 노력 덕택에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고,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도 적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 친구와 나의 차이를 만들었을까?

 

  벼락치기와 같이 마감효과를 이용하면 업무 속도를 높이거나 단시간 성과를 내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업무 품질을 기대하거나 난도가 높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경우에는 마감효과를 이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벼락치기 공부가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을 내는 데는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아주 높은 성적을 내는 데는 다른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직장에서의 업무는 100m 단거리 달리기처럼 처음부터 골인 지점까지 있는 힘을 다해 전속력으로 달리듯 해서는 안 된다. 마치 마라톤을 하듯 페이스를 유지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마라톤은 구간별로 본인의 능력을 고려해 목표치를 정하고, 한 구간 한 구간 목표를 뛰어넘으며 달릴 때 자신이 원하는 최고 기록에 다다를 수 있다. 업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장시간에 걸쳐 수행하는 업무를 추진함에 앞서 정확한 목표 설정과 목표 달성을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만일, 연간 목표치가 주어진 업무를 수행한다면, 먼저 월간 또는 주간 목표를 세우고, 목표 달성을 위한 하루 단위 실행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자신 평소의 노력보다는 좀 더 도전적인 계획을 세우고 매일 실행에 옮긴다면 남다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나는 보고서 마감 시간은 겨우 맞출 수 있었지만, 시간에 쫓겨 양질의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고 이야기했다. 만일 처음부터 주 단위 목표를 세우고 목표 달성을 위한 일별 실행계획을 세웠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마감 시간과 품질 두 마리 토끼 모두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스트레스도 비교적 덜 받고 말이다.

 

  의욕이 앞선다고 마라톤을 막 시작한 사람이 처음부터 42.195Km 전 구간을 달릴 수는 없다. 아무리 강인한 체력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충분한 연습과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특히, 초보자는 5km, 10km 단축 코스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더 오래 뛸 수 있도록 체력과 근력, 심폐지구력을 꾸준히 기를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럼 언젠가는 마라톤 풀코스를 거뜬히 달리고, 매번 기록 경신을 위해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일도 마찬가지이다. 먼저 작은 단위의 업무부터 목표를 세우고, 목표 달성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연습을 해보자. 이러한 업무 습관을 지속하며,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다 보면 넘기 힘들어 보였던 일도 거뜬히 해내는 날이 올 것이다. 그것도 탁월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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