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퇴(Retreat)의 시간을 만들자
‘후퇴하다, 뒤로 물러서다’를 뜻하는 리트리트(Retreat)라는 단어가 있다. 전쟁 중에 태세를 정비하기 위해 한발 물러선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스포츠 종목인 펜싱에서는 양발을 뒤로 움직여 상대에게서 멀어지는 동작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후퇴한다고 하면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이 된다. 그러나 리트리트는 앞으로 나아가거나, 전력을 정비하기 위해 잠시 멈추거나 물러섬을 뜻한다.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용어이다.
현대인이라면 직장에 다니든 자영업을 하든 누구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비단 일터뿐만이 아니다. 삶 곳곳에서 경쟁하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삶의 현장이 총성 없는 전쟁터에 비유되는 이유이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후퇴가 필요한 것처럼 우리의 삶에서도 리트리트가 필요하다.
온종일 힘든 하루를 보냈다면, 적절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래야 몸과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고 건강한 삶을 이어갈 수 있다. 그렇다고 리트리트는 단순 휴식의 개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전쟁 중 리트리트의 핵심은 군대의 내부 전력을 파악하는 일이다. 내부 상황을 이해해야 전략을 다시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에 있어 리트리트도 이와 유사하다. 리트리트를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된다.
잠시 시간을 내어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자. 나는 ‘당신의 감정은 안녕하신가?’라고 묻고 싶다. 복잡하게 얽히고 얽힌 문제 상황과 마주하고 있지는 않은가? 원활하지 않은 인간관계 때문에 고심하고 있지 않은가?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숙명과도 같지만, 때론 감당하기 힘들 때도 많다. 고독한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힘든 순간을 잊어보려 술에 의지하기도 하고, 가까운 동료들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여전히 마음속 응어리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고도원’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은 ‘세바시’ 강연에서 자신만의 리트리트 방법을 다음처럼 소개했다.
“저는 고독의 순간이 오면 눈물을 쏟는 시간을 갖습니다. ‘깊은 산속 옹달샘’ 어느 공간에 저만 들어가 울 수 있는 기도의 방이 있습니다. 최고의 힐링 순간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외로워도 그곳에 가서 눈물 쏟고 나오면 다시 맑아집니다. 그러면 다시 여러분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웃음 지을 수 있습니다.”
그는 청중들에게 ‘울음’이 자신을 계속해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라 했다. ‘기도의 방에서 눈물을 쏟는 행동’이 그가 자신의 내면이 목소리를 듣는 방식이고, 그 행동이 바로 고도원 이사장의 리트리트 방식이다. 그가 썼던 아침편지의 글에서도 리트리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만의 '깊은 산속 옹달샘' 영감을 얻고 평온함을 얻기 위해서 자신만의 '깊은 산속 옹달샘' 하나쯤은 갖는 것이 좋다.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나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침묵 속에서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장소, 이곳이 바로 '깊은 산속 옹달샘'이다. 나의 옹달샘은 어디인지, 나는 그곳을 얼마나 자주 찾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어떻게 리트리트 할 것인가?
리트리트를 실행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시골 마을이나 한적한 곳을 여행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방법이 잇는가 하면 요가나 명상처럼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리트리트라 할 수 있다. 어떤 방법이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으면 되지만, 여기서는 일상에서 간단히 할 수 있는 리트리트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리트리트를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리트리트를 엄청난 의식 활동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잠시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고, 나의 마음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면 충분하다. 가족이 있다면 모두 잠든 고요한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지만, 그것이 아니면, 잠시 방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물론, 방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경우는 가족의 이해와 도움이 필요하겠다.
앞서 설명한 대로 리트리트를 하는 방법으로 요가나 명상, 기도와 같이 다양한 형태가 있으나, 나는 간단히 일기와 같은 형태로 글을 쓰는 방식을 권하고 싶다. 누구의 도움이나 종교적 배경 없이도 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오늘 나의 하루가 어땠는지, 무엇을 했더라면 더 좋은 하루를 보냈을 수 있었는지, 나의 감정 상태 등을 일기 형태로 적는다. 호흡이 긴 문장으로 어렵게 쓸 필요도 없다. 감정을 표현하고, 하루를 상기시킬 수 있을 정도의 짧은 문장이나 단어로도 충분하다.
나 역시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10~15분 정도를 리트리트 위한 시간을 갖는다. 하루를 차분히 마감할 수 있는 시간이다. 잔잔히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노트에 오늘 하루 기억하고 싶은 일들을 적는다. 잠들기 이전이기 때문에 되도록 긍정적인 단어를 사용하고, 좋았던 일들을 생각하려고 한다. 물론 매일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작은 부분이라도 좋은 것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나의 감정 상태를 살펴본다. 기쁜 일이 있으면 더 강하게 기쁜 감정을 느껴보려고 한다. 힘들거나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는 감정을 밖으로 끄집어내 되도록 감정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때로는 나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기도 한다.
몇 번의 리트리트로 극적인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 그러나 매일 잠깐이라도 리트리트 하는 습관을 갖는다면 삶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가져보자. 감정의 상태를 이해하려는 노력 해보자. 리트리트 습관을 통해 일상에서 부딪히는 작고 사소한 문제뿐만 아니라, 커다란 위기 상황에 의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