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그의 시간은 농도가 너무나 달랐다.
“저희 아버지는 사람은 소신 있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같은 반 친구가 괴롭힘을 당했고 선생님은 그걸 묵인합니다. 보기 불편했고 말렸습니다. 말을 들어 먹지 않아서 때렸습니다. 아무리 양아치 같은 놈이라도 선생님 앞에서 그러면 안 되는 거겠죠. 잘못했습니다. 벌 받아야죠. 하지만 장근원에 대한 사과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도 안 미안하거든요.”
2020년 시청률 16.5%를 찍었던 인기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한 장면이다. 앞길이 창창했던 경찰대 지망생 박새로이의 운명을 갈라놓았던 순간의 모습이다.
주인공 박새로이는 새로운 고등학교에 전학한 첫날 재벌 2세이자 학교 이사장의 아들 장근원이 같은 반 친구를 괴롭히는 장면을 목격한다. 교실에서는 그 누구도 나서서 장근원을 말리지 못한다. 부당함을 참지 못한 박새로이가 나서 장근원을 말리려 하지만, 그사이 들어온 선생님조차 장근원의 폭력을 알고서도 그냥 묵인한다.
장근원은 박새로이를 조롱하듯 노려보며 ‘이해했어? 이 학교의 룰. 장근원이 법이다.’라고 이야기한다. 박새로이는 그런 장근원의 얼굴에 주먹을 한 방 날리지만, 곧바로 교무실에 끌려가 체벌을 당하고 퇴학의 위기를 맞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아버지도 모두 교무실로 찾아왔다. 장근원의 아버지 장대희는 학교 이사장이자, 재벌 기업 ‘장가’의 회장이고, 박새로이의 아버지 박성열은 ‘장가’에서 수십 년간 근무하고 있는 직원이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장대희는 박새로이에게 퇴학을 시키지는 않겠다고 했지만, 대신 장근원에게 무릎 꿇고 사과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박새로이는 장근원에 대한 사과를 거부한다.
“그게 제 소신이고 저희 아버지의 가르침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박새로이는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끝내 무릎을 꿇지 않았다. 이런 어린 아들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버지 박성열의 표정은 착잡하고 긴장되어 보였지만, 그 역시 회장에게 어렵게 말을 떼며 아들의 소신이 자랑스럽다며 그 자리에서 회사 사직을 결정한다. 절대적 권위를 내세운 부당한 요구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킨 박새로이와 그를 향한 아버지의 부정에 잔잔한 감동이 느껴짐도 잠시, 장면이 빠르게 바뀌며 뺑소니 사고로 박새로이는 아버지를 잃는다. 뺑소니 사고를 낸 사람이 장근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박새로이는 아버지의 원수 장근원을 찾아가 폭행을 하지만, 결국 살인미수 전과자가 되고 만다.
박새로이는 자신의 신념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감옥에서도 희망을 끈을 놓지 않았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사업의 꿈을 키우며, 사업과 관련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3년이 지나 출소를 하고 나서는 곧바로 원양어선을 타며, 막노동을 하며 4년 동안 악착같이 사업 자금을 모아 마침내 이태원에 ‘단밤’이라는 이름의 포차를 차린다.
분명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하지만 그와 나의 시간은 그 농도가 너무나도 달랐다.
단밤의 직원으로 일하는 범상치 않은 외모의 최승권은 박새로이가 교도소에서 만난 인물이다. 최승권은 가진 것 없이 태어나서 공부해봐야 쓸 데도 없고, 전과자라서 회사에서 써주지도 않을 건데 교도소에서 늘 책을 보는 박새로이를 못 마땅해하며 시비를 걸곤 했다. 박새로이는 최승권의 주먹다짐에도 굴하지 않았다. 최승권의 폭력에 입가에 고인 피를 내뱉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 가치를 네가 정하지 마. 내 인생 이제 시작이고, 난 원하는 것 다 이루면서 살 거야!’
출소 후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박새로이는 악착같이 사업 자금을 모았고, 자신의 사업 준비를 차근차근 해왔다. 반면 최승권은 깡패 생활을 이어가며 매일 같이 싸우고 도박을 하는 삶을 살았다. 7년이 지나 최승권은 박새로이가 보낸 시간의 농도와 자신이 보낸 시간의 농도가 어떤 차이를 만들었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결국, 최승권은 제대로 된 삶, 나쁜 짓 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서 사는 삶을 살고 싶다고 박새로이에게 고백을 하게 됐고, 그런 그를 박새로이는 '단밤' 직원으로 받아들였다.
드라마의 맥락을 설명하다 보니 이야기가 길어진 듯하다. 사실 <이태원 클라쓰>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박새로이와 최승권이 보낸 ‘시간의 농도’이다. 두 사람은 교도소에서 전과자로서 같은 출발선에 있었지만 7년이 지난 후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드라마와 같이 극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에서 이러한 비슷한 상황을 종종 발견한다. 학교에서 또는 사회에서 함께 어울렸던 친구의 소식을 몇 년이 지나 알게 됐을 때, 그가 예상치 못한 위치에 있는 것을 알게 되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나랑 엄청 까불며 놀았던 친구인데, 언제 공부를 그렇게 했었나? 정말이지 그 친구가 교수가 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 또 어떤 경우는 전혀 반대되는 상황에 놀라기도 한다.
박새로이와 최승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가 보내는 시간의 농도의 차이에 달려 있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목표)이 조금만 달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위치)는 매우 벌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차이는 시간이 지난다고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목표와 시간 사이의 공간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결과의 차이가 생겨난다. 바로 시간의 농도가 인생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당신은 현재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지금 이 순간을 보내고 있는 시간의 농도가 앞으로 5년, 10년 후의 당신의 모습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꿔 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