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주말 저녁 식사 중 아내와 심하게 다투었다. 다툼은 이 한 마디 질문으로 시작했다.
“자기야 올해 8월에는 귀국할 수 있겠지?”
해외 근무 중 작년 3월 아버지께서 갑작스레 췌장암을 진단받으셨다. 다른 암과 달리 워낙 병세가 좋지 않은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어쩌면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회사에 나의 사정을 충분히 설명하고 원래 임기보다 1년을 앞당겨 올해 2월에 귀국하겠다고 했다.
회사는 내가 임기 3년을 다 채웠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내 사정을 이해해줬고 곧이어 나를 대신할 후임자 선정 절차를 진행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외국 생활이 힘든 상황이고 내가 있는 곳이 생활 여건이 좋지 않은 곳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는지 세 번에 걸친 공모에도 불구하고 결국 적임자를 뽑지 못했다. 회사는 다음 기회인 8월에 귀국할 수 있도록 힘써보겠다고 했다.
이런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던 아내였다. 그런데 아내의 대답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꼭 8월에 돌아가야 돼? 여기에서 자기 임기 채우고 내년 2월에 들어가면 안 돼? 왜 나랑 민석이는 생각 안 해?”
아내의 설명은 초등학생인 아이가 중간 학기에 전학을 하게 되면 적응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교사인 아내 역시 8월에 복직해야 하는데 어느 곳으로 발령이 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말 예상치 못한 곳으로 발령이 나게 되면 집이나 아이 학교 문제 등 여러 가지가 꼬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내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남편과 아빠로서 우리 가족이 힘들 수 있다는 말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내 이어진 아내의 말과 태도에 화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자기가 한국에 들어간다고 뭐가 달라져?”
“아버님은 지방에 계시고, 자기도 그렇고 나도 일한다고 바쁠 텐데 몇 번이나 아버님 찾아 뵐 수 있겠어?”
“평소에 연락도 자주 드리지도 않고, 살갑게 대하지도 않으면서…”
평소 누구보다 따뜻하고 이해심이 많은 아내라 생각했는데 나는 아내의 대답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게 진심으로 아내의 속마음이었을까?”
비록 한국에 돌아간다 해도 일 때문에 아버지를 자주 찾아뵙기는 힘들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 곁에 있어도 병이 낫거나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도 내가 한국에 있더라면 언제든 필요할 땐 한 걸음에 달려갈 수 있지 않은가. 어머니 혼자 지방에서 장사하시며 아버지 모시고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치료받으러 다니시는 모습도 너무 안쓰러웠다. 간혹 응급 상황이 생겼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며 애를 태우지는 않을 것이니까. 무엇보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만들고 싶었다.
나는 화가 치밀어 올라 더는 아내와 대화하고 싶지도 않았다. 식탁에 그대로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내 역시 화가 났는지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