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단순함이 비즈니스 성공 요인
범죄 수사를 다룬 영화를 보면 수사관들이 모든 정보와 진행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에서 일하는 모습이 나온다. 벽에는 용의자의 사진, 관련 자료 등이 붙어있고 커다란 화이트보드가 있어 동료들 간 의사소통이 쉽게 이루어진다. 2016년 개봉된 영화 「마스터」에서 그 사례를 볼 수 있다. 수사관 김재명(강동원 분)이 범죄자 진 회장(이병헌 분)을 추적하기 위해 한 공간에 모든 정보와 자료들을 벽과 화이트보드를 이용해 정리한다. 이런 공간에서는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따로 떨어져 있는 정보 간 연관성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전쟁에서 지휘본부(commander room), 비상시 종합상황실(control center)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디자이너는 이런 공간을 좋아한다. 책임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분야별 디자이너가 모여 스케치하고, 모형을 만들어 보면서 서로 의견을 교환한다. 벽에는 그동안 검토했던 자료들이 붙어있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지난 자료들을 보면서 다시 생각할 수 있다. 신입 디자이너가 모형을 만들고 있으면 지나가던 선배 디자이너가 조언한다. 모든 작업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이런 공간에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다 있을 필요는 없다. 세부적인 작업은 분야별 전문가들의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는 2~3명이, 막바지 작업에는 10명 내외의 인원이 모여 작업한다.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프로젝트 공간에 참여하는 인원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효율이 떨어진다. 내 경험으로는 7명을 넘어가면 그들을 관리해야 하는 업무가 추가되어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차라리 따로따로 일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경험 많은 책임 디자이너는 업무 진행에 따라 적절히 참여 인원을 조정함으로써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을 알고 있다.
기업에서 기획이나 제안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이런 공간을 활용하면 매우 효과적이다. 그들이 머무는 프로젝트 공간은 축적된 연구 자료와 사진, 스토리 보드, 모형 등이 모두 쌓여 있어 쉽게 찾을 수 있고 한눈에 프로젝트 자료를 볼 수 있다. 프로젝트 자료들이 한 번에 시야에 들어오면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는 게 수월해진다. 또 이러한 자료는 서류철이나 노트 또는 파워포인트에 담겨 있을 때보다 창조적인 조합 작업이 훨씬 더 쉽다. 이렇게 적절히 디자인된 공간은 프로젝트 웹사이트 등을 통해 더욱 확장될 수 있다.
이런 공간에 있으면 프로젝트 관련자들은 오롯이 그 프로젝트에 집중할 수 있다. 그 공간에 있으면 동료들과 이야기하는 모든 대화가 서로에게 프로젝트에 관한 정보가 되고, 굳이 시간을 정해 회의를 하지 않더라도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기업의 경영자들은 회사의 중요한 프로젝트라고 하면서 직원에게 이런 공간이 필요함을 못 느낀다. 자기 시야에서 일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노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까? 정말 중요하다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직원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몰입할 수 있고 창의적인 생각이 하나라도 더 나올 수 있다. 회사가 관료주의, 대기업 병에 물들수록 임원들의 공간은 커지고 실무자들의 공간은 줄어든다. 정작 8~10시간 일하는 실무자는 채광도, 환기도 되지 않는 작은 회의실에 모여 일하고, 하루에 2~3시간 앉아있는 임원들은 창가에 넓게 자리 잡고 있다. 직원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인지, 회사의 사활이 걸려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실무자 업무 환경이 중요한 것인지 CEO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