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근 Apr 16. 2018

직장에서 단순함으로 차별화하기

단순함으로 차별화하기


회사에서 기획이나 제안업무를 하는 직원은 3단계로 성장한다. 기획이나 제안업무를 처음 하는 직원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것저것 모두 모아놓은 자료를 바라만 보고 있다. 그 속에는 장단점이 뒤섞여 있어 정리되지 않는다.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면 이제는 장단점을 구분한다. 그런데 중요성에 대한 판단 감각이 부족해 장점이란 장점은 모두 나열한다. 그야말로 ‘백화점식 기획과 제안’이 나온다. 

좀 더 경험이 쌓이면 프로젝트 중요성과 회사가 가진 장점을 연결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강조하는 단계에 도달한다. 전쟁터에 나가 싸워 볼 만한 단계가 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기획이나 제안업무에 5년 이상 경험이 쌓이면 이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 그동안 경험을 통해 기획과 제안 업무에서 단순함을 이룰 수 있는 몇 가지 Tip을 제시한다.


단순함을 위한 Tip-1 : 전략이든, 해결책이든 3가지 이상 제시하지 마라

장점과 해결책을 너무 많이 제시하면 고객은 무엇이 진짜 중요한 것인지 모른다. 미국마케팅협회(American Marketing Association)가 2014년 발표한 논문을 보면 제품의 장점을 3가지로 제시할 때 제품에 대한 호감도와 인상이 가장 높아진다고 한다. 장점이 3가지 이상 되면 제품에 대한 호감은 낮아지고 의심은 상승한다.

[ Suzanne B. Shu, ‘When three claims but four alarms’, Journal of Marketing, 2014, Vol 78(Jan) ]

프로젝트에 대한 제안 기획 단계부터 전략 3가지, 각 전략에 대한 전술이나 해결책 3가지 등 ‘3-3-3 법칙’을 적용해 기획하면 제안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단순함 속에서 차별화를 이룰 수 있다. 이런 제안 방식은 고객의 기억 속에도 쉽게 정리되어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단순함을 위한 Tip-2 : 장점의 우선순위는 고객 입장에서 정해라

우리가 가진 제품과 서비스의 장점만을 강조하는 제안을 많이 본다. 이런 제안 PT를 듣는 고객은 3분이 지나면 관심을 잃기 시작한다. 5분이 지나면 PT를 멈추고 이런 질문을 한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입니까?”, “우리 프로젝트가 뭔지는 알고 계신가요?” 아무리 좋은 장점과 해결책도 고객이 필요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고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은 고객이 생각하는 중요도를 파악해 순위를 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장점은 고객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과 글로 설명해야 한다. 


단순함을 위한 Tip-3 : 슬라이드 여백을 두려워하지 마라

기업에서 파워포인트나 키노트 등을 활용해 보고 자료를 만든다. 워드 프로그램 보다 파워포인트나 키노트로 작성된 보고서의 가장 큰 약점은 슬라이드 한 장 한 장이 개별적으로 인식되어 연결이 되지 않는 것이다. 각각의 슬라이드를 개별적으로 인식하다 보니 슬라이드에 여백이 생기면 무언가를 채워 넣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아무런 의미 없는 내용, 이미지 등이 추가되어 보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한다. 잘 정돈된 슬라이드 여백은 보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준다. 그리고 발표하는 사람이 주장하는 내용에 집중하게 만든다. 

슬라이드 여백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전체 슬라이드의 기준 그리드를 먼저 만들어 체계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제목과 내용, 텍스트와 이미지 배치 등을 반영한 그리드를 설정하여 체계적으로 활용하면, 허전한 공간이 아니라 ‘의도된 비어있음’으로 인식된다.     


제안에서 단순함을 통해 차별화를 이룬 사례를 살펴보자. 2010년 수원에 있는 농진청 5개 기관이 전주혁신도시로 이전하는 건설사업관리 프로젝트 입찰을 준비했다. 이 사업은 부지면적이 6백만 제곱미터, 공사비가 8,900억이 소요되는 건설사업이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 사업 중 최대 규모였다. 이 사업에 대한 건설관리 기술제안을 15분 동안에 해야 했다. 평가자는 이 사업에 대한 잘 모르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되었다. 이런 평가자에게 이 사업의 규모와 중요성을 짧은 시간에 설명하고 왜 우리가 해야 하는지를 이해시켜야 했다. 

며칠을 고민했다. 결론은 숫자로 사업 특성을 표현해 1분 내 설명하기로 했다. 숫자로 표현하면 간결하고 명확하게 사업의 특성을 강조할 수 있었고, 이런 복잡한 사업은 준비된 회사가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평가자에게 강하게 인식시킬 수 있도록 PT 준비를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나중에 평가에 참여한 교수에게 “조달청 역사상 최고의 프레젠테이션이었다.”라는 평을 들었다. 준비부터 발표까지 단순함을 통한 차별화를 끝까지 추구한 덕분이었다.    

[ 숫자로 사업의 특성을 정리한 프리젠테이션 ]



요약하기 _ 한눈에 보여주어라


회사에서 기획이나 제안업무를 할 때 파워포인트를 활용하면서 보고서 분량이 방대해졌다. 초기에는 보고서의 양이 많으면 열심히 일한 것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10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는 핵심도 없이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잡다한 내용으로 채워져, 보는 사람을 짜증 나게 한다. 짜증이 난 경영진은 ‘한두 페이지로 요약된 자료로 보고 하라’고 지시한다. 짜깁기만 했던 실무자는 난관에 봉착한다. 요약한다는 것은 전체를 다 이해하고 해결책을 스스로 세우지 않는 한 불가능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 일화가 있다. 한 출판사에서 마크 트웨인에게 이틀 내 2페이지의 단편소설이 필요하다고 요청이 오자 이렇게 답장을 썼다. “이틀 내 2페이지 소설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30페이지는 가능합니다. 2페이지 소설은 30일이 필요합니다.”

[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필명이다. 본명은 새뮤얼 랭혼 클레먼스(Samuel Langhorne Clemens, 1835 ~ 1910) ]

이처럼 요약은 힘들다. 100페이지 보고서를 잘 작성하는 사람은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 하는 사람이다. 이런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진정한 고수는 어려운 이야기를 한두 마디나 한 페이지로 쉽게 정리할 줄 아는 사람이다. 

요약한다는 것은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서 디자이너가 디자인 개념을 찾아내는 과정과 유사하다. 디자이너는 주어진 조건을 분석하여 향후 작업을 이끌어 갈 디자인 개념을 찾아내기 위해 스케치하고, 모형을 만들고 최적의 디자인 개념을 도출한다. 이렇게 도출된 디자인 개념은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세부 작업의 가이드 역할을 한다. 이런 디자이너의 초기 스케치가 최종 결과물과 거의 일치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2002년 서울 월드컵 경기장을 설계한 건축가 류춘수(1946~)가 설계 초기 단계인 1998년 8월에 스케치한 도면을 보면 현재 지어진 경기장과 거의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요약된 한 장의 개념 스케치(concept drawing)가 전체 설계·시공과정을 이끌어 가는 중요한 가이드 역할을 한 것이다.     

                 

[ 월드컵 경기장을 설계한 건축가 류춘수의 초기 스케치 ]


기획이나 제안업무에서 요약을 잘하기 위해서는 본문 내용을 다 정리하고 나서 하면 안 된다. 제안 전략이 수립되면 본문과 함께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만 전략이 요약에 정확하게 포함될 수 있고 본문 작성 때에도 제안 전략이 흔들림 없이 녹아 들어간다. 기획과 제안 작업에서 요약을 쉽게 하려면 다이어그램 그리기를 활용하면 된다. 프로젝트의 조건과 예상문제점 분석을 통해 제안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해결 전략 3가지를 도출해 낸다. 각각의 전략의 세부 추진 전술을 하위 단계로 표시한 다음, 지원 시스템 등을 순서대로 다이어그램을 활용해 한 장의 종이에 정리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전략을 통해 고객에게 줄 수 있는 혜택, 이익 등을 정리하면 전체 작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가이드 맵이 완성된다. 이 가이드 맵은 프로젝트 작업 기간 내내 수정, 보완되면서 흔들리지 않는 방향을 유지해 준다. 이것을 글로 정리하면 한 페이지 요약이 되는 것이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한마디로 정리를 잘하는 직업이 있다. 카피라이터(copywriter)다. 카피라이터의 한 줄로 요약된 설명은 그 제품이나 서비스 성공을 좌우하기도 한다. 애플은 아이팟(iPod)을 출시할 때 복잡한 말로 홍보하지 않았다. 단지 “당신 주머니 속의 노래 1,000곡”이라고 했다.      

이 말 한마디에 아이팟의 기능, 성능과 용량이 다 담겨있다. 하지만 이런 카피는 책상에 앉아서 나온 것이 아니다. 발로 뛰고, 눈으로 관찰하고, 제품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기획과 제안의 요약도 그저 본문을 간단하게 정리한 것이 아니다. 프로젝트 초기부터 전략을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고 어떤 방법으로 고객을 설득할 것인가를 고민한 모든 과정을 한눈에 보여주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단순하게 일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