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의 설득 방법을 배우자
수주산업의 서비스는 계약 후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기 때문에 영업 단계에서 고객을 설득해 계약까지 이르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106~B.C.43)는 설득에 대해 “당신이 나를 설득하려면 내가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고, 내 감정을 느끼며, 내 언어로 이야기해야 한다.”라고 했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이 서로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듯이 하란 말처럼 들린다. 영업에서 계약에 성공하려면 이처럼 고객의 머리와 마음속까지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설득할 때는 말보다 글로, 글보다는 그림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백 번의 ‘사랑한다’라는 말보다, 사랑의 마음을 담은 편지가, 사랑의 편지보다는 상대방을 생각하면서 직접 그린 그림이 더 큰 감동을 준다. 어떻게 하면 서비스를 제공하기 전에 고객이 감동하게 할 수 있을까?
디자인 분야 중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분야를 제외하면 디자이너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수주산업과 비슷하다. 로고를 디자인하든, 건물을 설계하든 계약 후에 디자이너 서비스가 시작된다. 디자이너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고객에게 설명하여 설득시키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고객을 설득시키는 중요한 무기가 있다. 그림이 그것이다. 고객의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과 디자이너가 추구하는 개념을 그림으로 정리해 보여준다.
스케치든, 초기 모형이든 눈으로 보면서 고객과 이야기한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디자이너의 손을 통해 고객에게 전달되고 서로 토론하는 과정을 거쳐 결론을 끌어낸다. 고객과 디자이너, 둘 다 만족하는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스케치, 모형, 3차원 그래픽 등은 남을 설득시킬 때 강력한 도구로 작용한다.
건축 디자인 실무를 시작할 때 일이다. 2층 규모의 주택을 설계하고 공사하던 중에 시공자는 아치로 설계된 부분을 공사하기가 까다롭고 시간도 많이 소요돼 건축주를 꼬드겨 사각 형태로 공사하자고 했다. 건축에 대해 잘 모르는 건축주는 시공자가 하자는 대로 하려고 했다. 대학 선배였던 건축가는 아치로 된 설계된 공간은 주택 내부공간의 전체 분위기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에 물러설 수 없었다. 선배는 내게 현장에 가서 실물 크기의 아치 모형을 만들라고 했다. 나는 투덜거리며 현장으로 가서 두꺼운 스티로폼을 이용해 실물 크기의 아치를 만들어 그곳에 붙였다. 선배는 건축주와 시공자를 함께 불러 아치일 때와 아닐 때의 공간 분위기를 설명했다. 누가 보더라도 아치 형태 공간 분위기가 더 좋았다. 건축주는 시공자에게 설계대로 하라고 지시했고, 시공자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갔다. 디자이너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하는지를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하지만 모든 디자이너가 다 이런 것은 아니다. 고객이 하지는 데로 그냥 예쁘게만 디자인하고, 자기주장이 너무 강해 고객을 무시하는 디자이너도 많다. 이런 디자이너 때문에 사람들은 디자인이라고 하면 ‘예쁘게 치장하는 것’, ‘못난 것은 감추고 잘난 것은 강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디자이너는 ‘꽉 막힌 고집쟁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인은 현실 속의 예술이기 때문에 고객이나 대중을 설득하지 못하면 그 생명을 잃는다. 디자이너의 열정을 가진 설득이 좀 더 나은 디자인과 환경을 만들어 가는 지름길이다. 이처럼 시각디자인 매체들은 고객과 대중을 설득하는 단계까지 이르러야 한다. 설득이란 항상 감동을 담보로 하는데 감동은 디자이너의 통찰력, 직관 그리고 상상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