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영국 시인인 T.S. 엘리엇(Tomas Stearns Eliot, 1888~1965)는 제약조건과 창의력에 대해 “일에 엄격한 틀을 강요받을 때 상상력이 최대한 발휘된다. 그때 가장 훌륭한 아이디어가 나올 것이다. 완전한 자유가 주어진다면 일은 제멋대로 진행되어 버린다.”라고 했다.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나 진리를 찾는 과학자들은 프로젝트 범위가 제한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훌륭한 디자이너는 제약 조건을 기꺼이 수용하는 자세를 취한다. 제약 없이는 디자인이 생겨 날 수 없고, 최상의 디자인은 심각한 제약이 가해진 상태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제약을 기꺼이 수용하고 나아가 열렬히 환영하는 자세야말로 디자인적 사고를 떠받치는 탄탄한 토대다.
기획이나 제안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온갖 제약조건이 튀어나온다. 제안 책임자는 촉박한 마감일, 부족한 예산과 인력 때문에 머리가 아픈데, 담당 임원은 옆에서 팔짱을 끼고 빨리하라고 독촉한다. 다른 건 다 참고 이겨나갈 수 있지만, 옆에서 말로만 독촉하는 임원은 정말 참을 수 없다. 독립된 ‘프로젝트 공간’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다.
제안 프로젝트 책임자는 어려운 상황과 온갖 압박 속에서도 디자이너처럼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제약조건과 창의력에서 갈등하는 동안 마감 시간은 다가오고 진도는 나가지 않는다. 정신적, 육체적인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버틸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지 않으려면 스트레스를 다스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스스로 스마트하게 일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경쟁하는 제안 프로젝트는 끝이 있다. 제출 날짜를 지키지 못하면 그동안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그래서 제출 날짜를 기준으로 모든 일정을 거꾸로 잡는다. 전체 일정에서 중간 데드라인을 잡고 참여자에게 언제까지 콘텐츠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이 단계에서 초보 관리자가 자주 실수하는 것이 있다. 참여자에게 콘텐츠를 제출하는 물리적 데드라인만 주는 것이다. 물리적인 데드라인만 주게 되면 자신이 작성하는 콘텐츠가 제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른다. 자기 본연의 업무에 매달리다가 데드라인이 다가오면 그때야 여기저기서 자료를 끌어 모아 제안 책임자에게 메일로 보낸다. 이런 콘텐츠는 창의력은커녕 쓸 수 없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물리적인 데드라인과 함께 ‘심리적 데드라인’을 주어야 한다. ‘심리적 데드라인’이란 일종의 미션(mission)으로, ‘당신이 작성하는 콘텐츠에 어떤 내용이 담겨야 후속 작업자가 받아 더 발전시키고 제안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라는 사명감을 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면 창의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선 집중할 시간이 필요한데 우리 주변에는 방해요소가 너무 많다. 옆 팀에서 회의하는 소리, 큰 소리로 통화하는 상사, 쓸데없는 일을 도와 달라고 요청하는 동료 등 모든 여건은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그래서 앞에서 이야기한 ‘프로젝트 공간’이 필요하다. 일주일이라도 프로젝트에 집중할 수 있도록 외부와 차단된 공간이 필요하다.
주변 방해요소를 차단했으면 자신 스스로 방해하는 요소를 차단할 차례다. 일정 시간 휴대폰을 끄고 노트북에서 인터넷을 차단한다. 오롯이 주어진 프로젝트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자기 스스로 환경을 만들어야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도전할 수 있다.
아이디어를 도출한다고 10명이 넘어가는 사람들이 모여 1시간 동안 회의를 한다. 한, 두 사람이 준비된 시간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한마디씩 하면 회의 시간이 끝난다. 제안 프로젝트에서 이런 회의는 킥 오프 미팅(kick-off meeting) 한 번이면 족하다. 단체로 모여 느슨하게 진행되는 회의는 회사의 자원을 낭비하고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험 많은 제안 책임자는 콘텐츠 작성자와 개별적인 토론을 즐긴다. 동료와 함께 앉아서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하면 훨씬 더 창의력을 발휘하게 된다. 아이디어를 서로 주고받으면 콘텐츠는 창의적으로 될 가능성이 커진다.
제안 프로젝트는 사람들이 모여 아이디어부터 마무리 인쇄 작업까지 진행하는 일이기 때문에 단계마다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계속 마음속에 담고 있으면 언젠가 터지게 된다. 그래서 중간중간 쉬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주변 공원을 천천히 산책하거나, 회사와 좀 멀리 떨어진 카페에서 음악을 듣는 등 휴식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의 경우는 강남에서 경기도 방향으로 가는 좌석버스에서 음악을 들으며 종점을 왔다 갔다 했다. 버스의 흔들림은 피곤한 몸을 적당히 자극해 주었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자연 풍경들은 사람에게 지친 눈을 정화해 주었다.
쉬는 시간 만큼 체력도 중요하다. “게으름, 짜증, 분노가 생기는 것은 체력이 버티지 못해 정신이 몸의 지배를 받아 나타나는 증상이다”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완벽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강박관념은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물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모든 면에서 완벽해야 한다. 영업도 잘 해야 하고, 제안서로 잘 써야 하고 발표도 잘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 조금 여유를 가져야 한다. 덴마크 과학자 피엣 헤인(Piet Hein, 1905~1996)의 말이 도움이 될 것이다. “지혜로 가는 길? 그것은 평범하고 쉬운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실수하고 또 실수하라. 그러면 점점 줄어들 것이다” 실수에서 배운다는 생각으로 일을 대해야 오래 갈 수 있다.
스트레스는 외부의 자극에 대해 내가 반응하는 정도의 크기를 이야기한다. 스스로 외부의 자극을 제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직장인은 그걸 안으로 감내해야 한다. 혼자 풀어나가려고 하다가 도저히 감당이 안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나왔다. 외부에서 오는 자극을 견딜 수가 없어서... 더 이상 위에서 떨어지는 낙하산 뒤치닥거리 하다간 미쳐 버릴것 같아서...
기업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잠시 모여 일하는 집단이다. 그 속에서 내가 스트레스를 줄 수도 있고,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어쩔 수없다고 하더라도, 내가 받은 스트레스 밑으로는 반만 보내는게 선배, 선임자가 해야 할 일 아닐까?
그게 안되면 위 아래, 앞 뒤 안가리고 서로 욕하기 바쁜 세상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