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이라는 우산을 버렸다. 그동안 비닐우산, 찢어진 우산 그리고 네 식구 비 피할만한 조금 튼튼한 우산도 있었다. 어느 날, 비도 오지 않는데 우산 들고 비가 올까 봐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이 저 건널목 너머 보였다. 싫었다. 이렇게 살려고 제주에서 육지로 올라온 것이 아닌데….
그런 내가 보이는 순간, 손에 들고 있는 우산은 내 것이 아니었다. 이제껏 남의 우산을 들고 서 있었던 거다. 머리만 우산 속에 있었지, 몸은 그대로 비를 맞고 있었다. 그래서 버렸다. 그렇다고 거창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가랑비도, 소나기도 기나긴 장맛비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맞겠지. 하지만 햇살이 비추면 비에 젖은 나를 감싸주겠지. 비든, 햇살이든 나 자신이 느끼고 싶은 그 생각뿐이다.
바쁜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을 돌아보기란 정말 어렵다. 기껏해야 새해 다짐하는 정도가 아닐까. 며칠 전 책상을 정리하다 그림(?) 아닌 그림 두 장을 발견했다. 어쭙잖은 솜씨로 그린 자화상이다. ‘2012년’이란 메모가 있는 것을 보니 그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삶이 힘들었나? 기억을 해봐도 왜 그렸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잉크와 파스텔로 그린 것으로 봐서는 아내를 졸라서 90색 파스텔을 산후에 그린 것 같은데….
아마 이때부터 거울에 비친 모습이 아닌 마음속에 있는 나 자신을 보기 시작한 것 같다. 그런데 한 장은 눈을 감고 있고 한 장은 눈을 뜨고 있다. 직장에서 눈 감고 4년 보내다가 5년째 눈을 뜨고 ‘직장이라는 우산’을 버리고 자신을 바라보라는 건가. ‘꿈보다 해몽’이라고 지금 나의 상황에 끼워 맞춘 것 같지만 분명한 것은 요즘만큼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 시간이 나와 주변을 모두 행복하게 했으면 좋겠다.
'평범한 사람의 소소한 인생이야기'라는 매거진으로 글을 시작합니다. 작지만 소중한 이야기를 조용히 쓸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