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는 육 남매 중 막내다. 집사람이 다섯 살 때 큰언니가 결혼했고, 큰 언니 첫째 사위가 고등학교 동창이다. 덕분에(?) 오십이 되기도 전에 손자·손녀가 8명이나 생겼다. 장안동 할아버지가 되어 버렸다.
주말에 취미 생활한답시고 먹 갈고 화선지 펴놓고 붓으로 끄적거리고 있는데 용인에 사는 조카 가족이 놀러 왔다. 손녀인 예원이가 할아버지가 놀고(?) 있는 것을 보고 “나도 하고 싶다”라고 엄마를 조른다. 조카인 엄마가 내 눈치를 보길래 “예원아, 이리 와서 네가 그리고 싶은 거 그려”하고 붓을 넘겨주었다. 한동안 망설이더니 이런 그림을 그렸다.
“뭘 그린 거야?”라고 물었더니 “난 공주고, 좋아하는 남자친구는 왕자예요. 둘이 같이 배타고 여행가는 그림이에요. 근데, 아직 배 타기 전이에요.”라고 한다. 옆에 있던 엄마 아빠가 “그럼 우리는?”하고 묻자, “배가 좁은데...”라고 한참 고민한다. 그 대화를 옆에 듣고 있던 난 혼자 속으로 “아이고 우리 딸들, 어찌할까나?”하고 생각하며 내 딸을 쳐다봤다. 내 딸은 “왜, 난 남자친구 없어.”라고 눈으로 대답한다. 그래, 고맙다. 남자친구 없어서….
또 한 번은 할아버지(?)를 그려달라고 했더니 이런 그림을 그렸다.
왜 이렇게 그렸는지 물어 보지 못했다. 난 대머리도 아니고 덩치도 작은데….
어릴 적을 생각해보자.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1, 2학년 때까지 우린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림 안에는 우리가 글로 표현 못 하는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자신의 그린 그림에는 엄청난 꿈이 있었고, 자신이 싫어하는 일을 표현하기도 했다. 어릴 적 그림 속에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있었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언어 능력을 중시하는 어른들 때문에 생각을 손으로 그리는 능력을 키울 기회는 점점 사라졌다. 어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험, 비교, 평가를 위해서는 숫자로 된 점수가 필요했다. 그림은 돈 많이 드는 특기가 되어버렸다.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위한 가장 훌륭한 도구를 잃어버린 것이다. 학교를 마치고 직장인이 된 후 그림 한 장이면 될 의사소통을 위해 수많은 자료와 워드 보고서, 파워포인트에 묻혀 오늘도 헤매고 있다. 이런 생각과 눈으로 어린이 그림을 보면 이해가 안 된다. 오직 하늘은 파랗고, 나무는 녹색이어야 안심이 되는 게 어른이다.
어린이 그림은 어른의 눈과 생각으로 평가하지 말고 이야기를 들어주자. 그리고 잘못됐다고 말하지 말고 “아, 그렇구나.”라고 맞장구치자. 그럼, 애들은 엄마 아빠를 친구처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