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과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한다는 것
필라테스를 한 지 3년이 되어 간다. 처음 필라테스를 배울 때 선생님이 설명하시면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들을 때가 많았다.
"흉곽을 닫으세요!"
"햄스트링 쪽에 힘을 느껴보세요!"
"삼두근에 힘이 느껴지시나요?"
"날깨뼈를 느껴보고, 네발 기기에서 날개뼈가 갈비뼈에 붙듯 손바닥을 날개뼈로 밀어내세요."
외계어 같은 이 말들을 어찌 해석하는지 몰라 결국은 개인레슨을 신청한 것도 있었고,
어느 부위에 힘을 주고, 신경을 써야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선생님의 개인적 손길이 좀 필요했다.
그룹 수업을 하면서 몇 분 선생님이 바뀌고, 겪어보고 나니
필라테스 선생님마다 전달력 차이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동작에 대해 설명을 해 주실 때, 정말 알아듣기 쉽게 딱 와닿을 때도 있어서
몸이 그대로 따라가는 것을 느낄 때도 있으니 말이다.
"팔을 위로 쭈욱 뻗으세요. 나는 하늘로 자라나는 나무다. 그리고 호흡 먼저 하고 가슴 벌러덩 까지지 않게, 내 앞에 커다란 장애물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장애물을 넘어간다는 기분으로 쭈욱 팔을 뻗고 복부에 힘을 느껴보세요."
"팔을 옆으로 주욱 뻗으시고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무지개를 그리듯이 넘어가세요."
그룹 수업에서 어떻게 하라고 직접 보여주시기도 하지만, 아무리 봐도 모르는 나 같은 초보는 말로 설명을 해 준다 해도, 몸을 짚어줘야 조금이나마 알아듣는 편이다.
나중에 보니 필라테스에서 그런 설명을 큐잉이라고 하셨다.
필라테스 강사 시험 볼 때 큐잉시험도 있다고 알려주신다.
큐(cue)는 짧고 직관적으로 동작을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약속된 신호라는 뜻이고,
필라테스에서 큐잉(cuing)은 청각, 촉각, 시각을 모두 사용하여 회원들의 정확한 동작을 이끌어 내는 방법이라고 한다.
동작 하나하나 보여주는 시연이 어렵기도 하고, 각자 근육의 위치가 다르니까 스스로 표현해 내는 것이 중요하니, 설명으로 나타내려면 전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비유적인 표현과, 창의적인 센스까지도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반기저근, 횡격막. 복사근, 복횡근, 기립근, 햄스트링, 중둔근, 대둔근 듣지도 보지도 못한 근육 이름들을
필라테스하면서 알게 되고, 놀랍게도 아주아주 작은 근육들과 신경까지도 모두 다 이름이 있고 서로 연결되어 있음에 놀랄 때가 많다. 나의 엄지발가락 하나가 내 온몸의 뿌리임을 알게 되고 새끼손가락 하나의 신호가 내 어깨와 등까지도 다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니 인체의 신비가 그저 놀라울 뿐이다.
부분의 기억이 전체의 기억을 인지하는 실마리가 되고, 조그마한 감정의 신호가, 내 무의식을 의식화시키는 중요한 동기가 되는 것과 똑같구나 느낀다. 나의 현재는 아주 머나먼 과거의 기억과도 연결되어 있고, 그때 느꼈던 감정과 인식이 지금까지 이어져 있고, 놀랍게도 나의 부모님뿐만 아니라 조상, 그리고 집단의 무의식과도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기분 같았다.
심리검사 해석을 할 때도, 되도록이면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오해는 없도록 해야 하고, 나 혼자 인식한 일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설명하려고 한다.
미세한 감정의 차이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악기 소리를 구별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악기를 만져보고 하나하나 들어본 사람은 그 소리를 구별할 줄 아니 소리의 느낌과 어우러짐을 누릴 수가 있다. 그리고 미술에서 다채로운 색을 도화지에 마음껏 표현해 내는 것과 비슷하다.
"기분이 어때?"라고 물어보면
"짜증 나요!"라는 말로 다 표현해 버리는 아이들에게
불편한지. 짜증이 나는 건지. 지겨운 건지. 못마땅한 건지. 분한 건지. 속상한 건지. 불만스러운 건지. 꼴 보기 싫은 건지. 미운건지. 원망스러운 건지. 신경질 나는 건지. 분노인지, 격노인지 이걸 세심하게 찾아보게 한다.
또한 내 감정표현을 신체부위로 말하는 느낌으로 말해보게도 한다.
목이 메는지. 몸서리가 쳐지는지. 간담이 서늘한지. 가슴이 저미는지. 심장이 두근거리는지. 얼굴이 화끈거리는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지. 가슴이 쑤시는지. 숨이 가쁜지.
이렇게 세세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건 내 감정을 잘 알아차려 자기 인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내 감정을 잘 알아차리는 사람은 타인의 감정도 잘 알아차리니 공감능력도 올라가고 말이다.
글을 쓸 때도, 말을 할 때도 초등학교 4학년 정도 학력을 가진 사람의 어휘로 설명하고 묘사하려고 한다.
듣는 사람들이 알아듣고, 자신의 삶의 모습에서 알아차리고 적용할 수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관념이나 추상적인 대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필라테스 수업하다가 선생님의 멋진 큐잉을 들으며 동작을 표현할 수 있을 때 감탄하게 된다.
"와! 어쩜 이렇게 표현을 찰떡같이 하시지?"
장요근, 내전근이 어디 있는지 나도 모르는데
" 자! 쉬야 마려울 때 꾹 참아보는 힘을 느껴보세요. 똥꼬에 힘 파악 주세요!"
"배를 등에 붙인다 생각하고 숨을 다 내뱉어보세요."
"두 다리를 모아 붙일 때 허벅지 안쪽에 꿀 발랐다는 듯 끈적하게 모으세요."
나의 근육이 어디 있는지 알아차리고 그 근육이 잘 쓰이는지 내가 인지할 수 있는 설명을 하는 선생님의 능력에 감탄하고, 그걸 이제 조금씩 알아듣는 나를 칭찬한다.
내 감정과 느낌을 정확하게 찾아내고 이름을 붙여, 그 감정의 원인이 나의 생각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아차리도록 설명하고, 자신의 생각에서 깨어 나오도록 돕는 일이 바로 심리해석의 출발이고 목적이니,
나의 심리 해석 큐잉도 더 다양하게 쉬운 예를 들며 잘하고 싶다. 내가 잘 알고 있으면 설명도 쉬워지는데,
내가 개념이 잘 안 서 있으면 설명이 길어지니 더 많이 공부해야겠다.
내 마음을 잘 큐잉할 수 있고, 타인의 마음이 어떤지 잘 나타낼 수 있도록 좋은 표현을 많이 찾아내고 싶다.
비유와 상징과 설명과 묘사를 아주 잘 쓰면서 말이다.
하지만. 늘 핑계는 댄다.
설교는 하는 자의 몫이 아니라 듣는 자의 몫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