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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솔은정 Oct 06. 2024

나의 헤롯왕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노하였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그 박사들에게 알아본 때를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가까운 온 지역에 사는 두 살짜리로부터 그 아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였다.”

 (마 2:16)



나의 불안과 긴장을 잠재워 줄 존재는 엄마였다.

잠자고 일어나서 엄마가 없으면 엄마가 올 때까지 울었다.

엄마가 사라져 버릴까 봐 늘 무서웠다.

내게 헤롯왕은 엄마가 없는 세상이었다.

외할머니는 그런 내게

“네가 그리 울어대니 너희 엄마가 아프지!”

이 말이 내게 큰 상처였고, 오래 따라다녔다. 

나 때문에 엄마가 아팠을까 봐 무서웠다.

난 외할머니도 싫었고, 할머니는 더 싫었다.

외할머니는 당신 딸을 힘들게 하는 내가 별로였을 테고.

따박따박 대드는 내가 할머니는 더 싫었을 거다.     

초등학교3학년 겨울이 가까울 무렵

학교 운동장에 서서 조회 중이었던 거 같은데 

엄마가 내 뒤에 와서 조용히 말했다.

“엄마. 병원에 가서 며칠간 집에 없을 거야. 집에 오면 동생이랑 돌보고 할머니도 좀 챙겨.”

엄마는 유방암말기라고 했고, 수술을 해도 6개월은 살기 힘들 거라고 했다. 

엄마가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밥 하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겨울에 나는 빨래도 해야 했다. 

온 식구의 밥그릇을 들고 가서 밥그릇만큼의 쌀을 떠 왔으니 얼마나 쌀 양이 많았는지 할머니에게 혼나고, 

다시 쌀 계량하는 법도 배우고, 빨래를 못해서 엉엉 울었다. 

덕분에 동네에서 가장 먼저 세탁기도 샀지만, 전기요금 많이 나온다고 할머니는 싫어했다. 

내가 4학년이 되자, 밤에 야간고등학교를 다니고 낮에는 우리 집안일을 해주는 화자 언니가 왔다. 언니가 오면서 내 집안일은 다 덜어졌고, 할머니의 분풀이는 내가 아니라 언니에게로 옮겨갔다.

가끔씩 화자 언니가 생각난다. 언니도 겨우 17살이었다.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낮에는 우리 집안일을 맡아서 해주었던 언니다. 언니는 그냥 언니였지, 열일곱의 언니를 그때는 몰랐다.

저녁 늦게 학교 다녀와서 너무 배가 고파 몰래 계란을 삶아 먹던 언니는

나와 친했다. 할머니가 우리의 공동의 적이었으므로, 

언니도 치가 떨리게 할머니를 싫어했다.

언니가 그만둔다고 하면서 할머니 때문이라고 하자,

고모가 며칠 할머니를 모시고 간 적도 있었다.

고모도, 큰엄마도 할머니를 결코 오래 모시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만 지내던 할머니 덕에, 일하는 언니들도 오래 못 지냈지만 화자 언니만큼은 3년 버티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시청에 취직을 했다. 

 엄마가 없는 자리에 번갈아가면서, 숙모도 오시고, 이모도 오시고, 일하는 아주머니, 밥 해주는 언니들도 가끔 왔다 갔다.

늘 낯선 사람이 오가는 거 같아서 난 무섭고 두려웠다.

그들에게 잘 보여야 난 밥도 얻어먹을 수 있고, 내게는 너무나 힘든 집안일에서도 헤어 나올 수 있었다.

 내가 유일하게 집안일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책을 읽는 일이었다. 계몽사. 금성출판사. 전집으로 된 책들이 집에 가득해서 학교에 다녀오면 가방을 던져놓고 책을 읽고 있으면 할머니도 내게 일을 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책을 열심히 읽고 있으면, 칭찬은 덤으로 오니 재밌는 책도 읽고, 인정받을 수 있으니 아마도 더 책을 열심히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의 내 모든 부분은 엄마였다. 엄마를 엄청 사랑하면서도 내 일기장에는 엄마에 대한 원망이 많았다.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서.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아서. 건강한 엄마가 아니라서. 나를 칭찬해주지 않아서. 엄마가 나를 많이 안아주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도 엄마는 수술을 해서 가슴이 없었고, 팔을 잘 쓰지 못했고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어서 엄마를 만지면 부서질까 무서웠다.

돌아가실 때 엄마는 40킬로그램도 안 나갔다.      

내게 헤롯왕은 엄마가 없는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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