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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로 Aug 20. 2024

여름. 204호 (하)

가족이란 무엇인가

민규는 한동안 말 없이 식사만 했다. 그러면서도 옥 선생, 은화, 일연, 그리고 누군지 모를 남자의 대화를 열심히도 엿듣고 있었다. 그 중엔 이런 내용도 있었다.


 “그래서 은화 씨, 어머님은 요즘 어떠신가?”


 일연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안 그래도 걱정이에요. 나이도 나인데 또 식구들한테 폐가 될 순 없으니……”


 은화는 고개를 반쯤 숙였다. 민규는 은화의 어머니에 대한 걱정거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최근 관절염으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한 십 년쯤 되면 은화 어머니의 나이가 될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자신의 어깨가 무겁다는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되었다. 딴 생각에 잠시 빠진 민규의 옆으로 조용히 듣고 있던 어떤 남자가 은화에게 말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잘 되겠죠. 저 잠시 담배 좀 태우겠습니다.”

 “어이, 나도 같이 가겠네.”


 은화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넨 남자는 자리를 털고 옥 선생과 함께 일어났다. 남자가 자리에 없는 틈을 타 민규가 일연에게 물었다.


 “저… 저 사람은 누구에요?”

 “아, 준영 씨라고 404호 사는 청년이야. 애랑 와이프가 다 미국에 있어서, 항상 우리랑 저녁 먹지.”

“아…”


 민규는 꽤 가까운 데서 사는 준영의 존재를 이사온 이래로 지금까지도 몰랐었다. 아마 새벽에 출근해 밤에 오는 그를 민규가 모르는 건 당연한 처사였다.


 “아저씨! 아저씨는 어디 살아요?”


 은화의 어린 아들이 민규에게 물었다. 은화는 아들을 가볍게 다그쳤다.


 “민규야! 아저씨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아저씨……?’


 20대 후반에 ‘아저씨’라는 말을 들어 살짝 섭섭해진 민규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 나는 402호 살아. 그러고 보니 네 이름도 민규니? 나도 민균데…”

 “이런 우연이 있나! 그러고 보니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한데?”


 준영과 함께 담배를 태우고 온 옥 선생이 호탕하게 웃으며 거들었다.


 “이렇게 또 식구가 생긴 거 같아 좋구먼. 나눔아파트 가족이 된 걸 환영하네.”

 “에이, 선생님. 누가 보면 동대표인 줄 알겠어요.”


 준영이 옥 선생의 곁에서 살짝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민규는 ‘가족’이라는 말에 조금은 마음이 붕 뜬 느낌이다. 취업 준비며 이사 준비며 요즘 들어 홀로 바쁘게 산 민규에게 이웃사촌이 생겼다는 것, 민규로서는 꽤나 과분한 일이었다. 점점 날이 저물고 있었다. 뜨겁고 습한 여름이지만 민규는 가슴 속에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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