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동물원을 살짝 벗어난 곳에 있는 작은 공터는 먼저번 소풍 때 우리반이 모여서 밥 먹고 장기자랑도 하던 곳이라했다
수리는 일단 동물원의 사람들 소음에서 벗어난 곳이라 마음에 들어 자리에 앉자마자 주변을 찬찬히둘러보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김밥 집을 털어 왔냐? 이게 도대체
.....!'
문제가 메고 온 배낭 안에는 무슨 지니의 마법의 램프 같이 끊임없이 먹을것이 나왔다
'우와와....!'
문제가 배낭을 열고 꺼내기 시작하자 먹성 좋은 성구와 형철이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문제는 여섯명이 배 터지게 먹고도 남을 만큼의 김밥과 야끼만두뿐만 아니라 토스트와 사이다는 물론이고 삶은 계란까지 줄줄이 사탕처럼 꺼내며 말했다
'우 씨 무거워 뒤지는줄 알았네...!'
'문제 ... 너 도대체 이게......?'
문제는 형철이와 재복이가 자기 대신 들어 준다는 배낭을 한사코 거절하면서까지 고집을 피운것은 친구들을 놀래키려는 작은 비밀을 혼자만 알고 느끼고 싶었지 미리 들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 걱정들은 말고 실컷 먹어! 우리가 모은 돈에 내 용돈 모은거 합쳐서 ... 내가 사는거니까!헤헤헤 ...' '이거 모두 합치면 장난 아닐거 같은데...!'
'아 재복아! 아니라니까 그러네 ... 계란하고 사이다는 집에서 울 엄마가 친구들이랑 놀러 간다니까 ...용돈하고 준거고 ... 김밥집 아줌마가 형철이가 너랑 친구들이랑 놀러 간다니까 ... 이만큼이나 더 준거라니까 그러네 헤헤헤... 빨리 먹자! 배고프다'
수리는 갑자기 눈물이 날것 같았다
'야! 이 문제 ....!'
생전 처음 소풍이란걸 왔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이다와 토스트까지 .... 남부럽지 않은 친구들이 있다는 생각에 괜히 눈물이 날것 같아 괜히 소리부터 지른 것이다
'..... 왜 소리는 질러...! 난 좋기만 하구만 ...'
수리가 소리를 지르든 말든 넉살 좋은 성구가 먼저 김밥은 제껴놓고 토스트부터 집어 들었다
'아 소리 지르지 말고 ... 먹어! 지도 좋으면서 그래!
난 생전 첨 본 코끼리보다 이게 훨씬 더 좋다...!
수리 ... 너 빨리 안 먹으면 내가 다 먹고 ... 문제 엄마한테 니가 우덜것까지 다 뺏어 먹었다고 이른다'
한입 가득 베어문 토스트가 입 밖으로 튀었다
'야 이 모지리 슄기야! ... 더럽게.....!'
'.... 더러우면 먹지마 ... 내가 먹어줄께 후후후'
'으이그 ... 돼지 같은 놈'
'아직 따스하다 ... 웅수야 이리와 .... 빨리'
'아 시원한 사이다가 있어요~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떠도 곱뿌 없이는 못 마셔요~~ 김밥 있어요!김밥 ~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김밥 있어요'
가만히 있던 형철이의 갑작스런 서영춘 흉내에 친구들이 생전가야 못보던 형철의 모습에 한동안 어리둥절해 하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크크크큭 드디어 저게 .... 본색을 드러내네'
'응 ... 나 미쳤나봐...!'
'오우~! 백 곰씨 ~~ 좀 하는데!'
'앗사 가오리! ~~~ 삐약 삐약 오~~예!'
와 하하하
그때였다
친구들을 만난지 벌써 한학기가 끝나가는데도 어색해하던 웅수가 형철의 새로운 모습에 용기를 내 배삼용처럼 개다리춤을 추며 손을 흔들고 나섰다
와 하하하 와 하하하
수리 얼굴에도 의외라는 표정과 형철과 웅수의 숨겨져 있던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헛웃음으로 터져 나왔다
그때까지 못 들은 척 하던 문제가 친구들이 허겁지겁 김밥과 계란을 먹는것을 보다 말고 갑자기 배낭을 앞으로 당기며 소중한 물건 마냥 가슴에 안았다
'아 잠깐! 아직 끝난게 아니지롱 ~~ 헤헤헤'
'왜? 왜에? 또 뭐가 있냐? 또 ... 뭔데?'
'헤헤헤 또 있지롱 .... 엄마가 니들하고 나눠 먹으라는거 또 있지롱 ..... 헤헤헤'
친구들 눈이 배낭에 쏠리자 문제는 장난기가 가득한 눈에서 갑자기 수리를 보며 정색하며 말했다
수리보다 먼저 선수를 친것이다
'이 수리 ... 너 이거 내가 자랑하는거 아니다!
분명 엄마가 니들이랑 나눠 먹으라고 준거야....!'
수리는 영문을 몰라 먹던 김밥을 내려 놓았다
'아 정말 뭔데 그래? 감질나게 ....!'
'그래 뭔지 빨리 꺼내봐라! 쫌'
문제가 조심스럽게 배낭에서 꺼낸것은 바나나 한송이와 비닐에 싸여 뭉게진 케익 이었다
'아이 씨 .... 이거 다 뭉게졌네!'
문제의 속상해 하는 얼굴보다 먼저 문제가 꺼내들은 바나나를 본 친구들은 놀란 토끼눈으로 먹던 김밥과 계란도 씹지 못하고 잠시동안 문제와 바나나를 번갈아바라보고 있었다
수리도 놀라긴 마찬가지 였지만 수리 눈은 바나나 보다는 뭉게진 비닐에 머물러 있었다
기억도 희미해진 언젠가 미군부대 앞 구멍가게에서 훔쳐먹던 장교식당 음식쓰레기 중 담배 꽁초만 골라낸 달달한 케익 부스러기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제길 ... 왜 또...!'
'케켁 켁켘 .... 물 물'
저거 책에 ... 저거 ... 그 뭐냐? ... 바나나 아니 야?'
'바나나....?'
친구들 중 바나나를 처음 보는 친구들이 있었고 문제를 제외하고는 먹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에이 씨 ... 그래도 이거 나눠먹....지 말고 ... 헤헤이거 장기자랑해서 왕 뽑자? 왕 맘대로고 어때?
... 죽이지?'
'난 찬성 ... 내가 일등 해야지....!'
으이그 이 돼지 .... 모지리야!'
'.... 짝짹이 너 까불면 이따 국물도 없다!'
성구에게 연신 핀잔을 주던 재복이도 갑자기 돌변하여 찬성하고 나섰다
'야 빨리 하자! 왕 뽑으면 진짜 죽이겠는데 크크크'
'야 ... 다들 그냥 먹어....!'
수리는 어이없어 친구들을 말리면서도 못이기는척 뒤로 자리를 넓혀 앉았다
'크크크 야 이수리 ... 넌 왜 자리를 넓히는데 ...?'
'... 내가 .... 언제?'
'후후후 수리가 자리 편다! 다들 준비하시고'
와하하하하
'아 이제 그만 그만! 헤헤헤 .... 이거 빨리 먹으면서 장기자랑도 같이 해야지 식물원 구경이라도 할 수있어 .... 종묘는 못 넘어 가겠지만'
문제는 쉬운듯 입맛을 다지면서도 친구들의 들뜬 모습에 장난스런 웃음을 지으며 재촉했다
'아 그럼 내가 일번 할거다!'
성구가 벌떡 일어나 개다리 춤을 추면서 앞으로 나섰다
우하하하
'저거.... 완전히 원숭이야? 개다리야 ...'
'개다리는 이렇게 하는거지 크크크 ...앗사 가오리!
웅수가 은근슬쩍 일어나 재복과 성구 사이에 끼어들어 트위스트를 추며 땅바닥을 비비기 시작했다
'앗쮸구리....! 쫌 하는데'
한참이나 신나서 춤을 추던 재복이가 손을 흔들며 친구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내가 모지리보다 나중은 안되겠지...? 그래서 내가먼저 한곡조 꽝 때리겠다!'
'그래 어디 한번 해봐라.....! 박수~'
'춤은 뭐니 뭐니해도 트위스트지 ... 자 무조건 다들나와 주시길 ~~'
와 하하하
'아 조용히 하시고 다들 나와서 마음것 비비시길 바랍니다 크크크'
'오 ... 완전 후라이보인데 ... '
아 ~ 키다리 미스터김은
싱겁게 키는 크지만
그래도 미스터김은
마음씨 그만이에요
세상에 키 크고 싱겁지 않은 이
없다고 말을 하지만
그러나 그이는 그렇지 않아요
정말로 멋쟁이에요 ~~~ 아사 아사
건들건들 걸을 때는
매력이 흘러넘쳐요
키다리 미스터김에게
나 홀랑 반했어요
수리와 문제를 제외한 친구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트위스트를 추면서 놀자 신이 나는지 문제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고 재복이는 연달아 두곡을 연달아 불러제꼈다
'울릉 울릉 울릉도라 트위스트 앗사 ~ '
재복이는 생각보다 까불거리며 노래를 잘해 지나가던 어른들도 박수를 칠 정도였다
'아후 되게 덥다 ... 우 씨'
재복이는 그새 지쳤는지 땅바닥에 주저앉으며 친구들에게 자랑질을 늘어 놓았다
'이거 울 아버지가 쇠주 한잔 걸치시면 매번 하는 노래 내가 따라 배운건데 .... 후후훗 죽이지!'
'앵콜 앵콜 앵콜! 모지리 주란 꽃 주란 꽃도 앵콜!'
친구들은 재복의 노래를 언제 들어 봤는지 계속해서 앵콜을 외치며 주란꽃을 부르라고 외쳐댔다
'아냐 그럼 안돼지! 다음은 내 차례야'
성구가 질수 없다는듯 꼽새 춤을 덩실덩실 추면서 앞으로 나섰다
에헤 에헤야 디야 어 허 음음
어 허~~ 아 허절시구나 들어간다
각설이 춘추가 들어간다
어헐씨구 시구시구 들어간다아~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일자나 한자 들고나 보니
일월이 송송 해송송 밤중에 샛별이 완연하네~
하늘 빠딱 쳐다보니 북두칠성이 돌아갔네
어절시구 시구시구 잘이한다아
품바나 품바나 자리한다
이자나 한장 들고나 보니
진주기생 의암이는 우리나라를 섬길라꼬 왜장청청 목을 안고 진주 남강에 떨어졌네에
어절시구 시구시구 잘도 한다
품바나 품바나 자리한다
삼자나 한장 들고나 보니 삼동가리 늘어졌는데
팔도어사 오신다고 오색 등촉 밝히기가 바빴네
어절시구 시구시구 잘한다
품바나 품바나 자리한다
어절시구 시구시구 들어간다
품바나 품바나 자리한다
때아닌 창경원에 각설이 타령이 구성지게 울리고 꼽새춤에 개다리춤에 친구들의 숨겨졌던 끼가 터져나와 흥이 오르자 지나치던 어른들도 손을 흔들고 어깨 춤을 덩실덩실 추셨다
이에 질세라 자리를 지키던 형철이가 추임새를 놓으며 걸죽한 목소리로 장단을 맞추며 탈 춤을 추듯 앞으로 나가 함께 어울리기 시작했다
아 얼쑤~ 낙양동천 이화자앙 ~~~ 덩덩 덩덕궁
어히 ~ 이놈들아 이리 오거라~ 어휘 ~
아 얼쑤 덩덩 덩덕궁
형철이가 추는 탈춤은 어디서 배웠는지 탈춤을 모르는 수리가 보아도 솟았다 앉았다하며 흔드는 팔과 춤사위가 저절로 흥이 올랐고 언제 더듬거리는 말투였냐는듯 입으로 장단을 맞추는데도 걸죽한 목소리는 지나는 사람들의 귀를 붙잡기에 충분했다
어른들의 어깨춤에 장단을 맞추는 형철의 목소리가 크게 울리자 주변에 구경꾼들이 점점 몰려들었다
동네 잔치가 될만큼 숨겨진 끼들이 넘쳐난것이다
한참이나 놀고 진정할때쯤엔 수리와 친구들 앞에는 어른들이 나눠주고 간 음식들로 또 다시 먹은만큼의 과자와 과일 음료수가 쌓여 있었다
우 씨 이거 다 어떡하지...?'
'... 다 먹어야지 ... 뭘?'
'근데 이제 정말 시간 없는데....'
'아 그래도 수리 노래는 들어야지 ... 왕도 뽑고'
성구는 아직도 노란 바나나가 탐나는듯 문제 배낭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아휴 이 모지리 돼지새끼...야'
'...그건 그렇네 ..... 듣고 싶네 수리 노래하는거...!'
'... 어차피 할거면 ....빨리 할께! ... 근데 내가하면 문제도 해야 한다!'
'야 이수리! 넌 심판이 경기하는거 봤어? 난 안해도 돼 ... 난 심판이야'
'... 쟤 수리 껌딱지더니 ... 쟤도 변호사 됐는데'
와 하하하
수리의 강요에도 문제는 꼼짝도 안했다
결국 수리는 못이기는 척 나섰지만 속으로는 지나는 사람들이 같이 어깨춤을 출만큼 호응이 좋은것에 많이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베사메 베사메무쵸
고요한 그날 밤 리라꽃 지던 밤에
베사메 베사메무쵸
리라꽃 향기를 나에게 전해다오
베사메무쵸야 리라꽃 같은 귀여운 아가씨
베사메무쵸야 그대는 외로운 산타마리아
베사메 베사메무쵸
고요한 그날 밤 리라꽃 지던 밤에
베사메 베사메무쵸
리라꽃 향기를 나에게 전해다오
수리는 옛날 함바집 할매가 술만 취하면 부르던 왠지 마음이 찡해져 입가에 맴도는 그 노래를 불렀다
'오우 ... 아가씨~~~ 흐흐흐'
수리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형철이와 웅수가 손을 잡고 빙그르 돌면서 춤을 추자 또 다시 웃음이 터졌다
와하하하
'아 조용 조용 ... 다음 다음은 우리들의 영원한 문제아아아~~~~ 준비하시고 ~~'
그냥 넘어갈리가 없는 재복이가 설레발을 치면서 문제를 지적하자 문제는 벌써 저만큼 달아나면서 혀를 메롱거렸다
그러나 성구가 한걸음 빨랐다
'우 씨 ... 나 난 심판이란 말이야! 심판!'
문제는 발버둥을 치면서 도망가려했지만 성구와 재복의 집요한 설득으로 결국 노래 한자락을 하고 말았다
'아는 노래가 없는데 ... 이거는 ... 우리 누나가 가르쳐 준건데 가사가 좋아서 가끔 불러 ... 놀리면! 나 ... 니들이랑 안 놀거다...!'
'어이구 ... 무서워라! 크크크'
'자 자 박수 박수 ...'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And in my hour of darkness
She is standing right in front of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Whisper words of wisdom let it be
And when the broken-hearted people Living in the world agree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For though they may be parted
There is still a chance that they will see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오우 이 문제 발흠 오우 죽이ㅂ니이당~~!'
성구의 혀 꼬부라진 소리에 문제는 서둘러 자리로 돌아갔다
'... 연습 했네! ... 그래 앵콜이다 앵콜 앵콜'
'야 근데 문제아 쟤는 ... 뭐가 가사가 좋다는 거야? 순 영어로 된건데...?'
'으이그 모지리 ... 꼭 티를 내요! 티를 ... 팝송이쟎아! 퍕쏭 ... 비틀즈! 모지리야!'
'... 뭘 비틀어...? 비틀긴 ...!'
친구들과의 첫번째 소풍은 그렇게 끝났다
왕이 된 성구는 거드름을 피면서 생전 처음 먹어보는 바나나를 껍질도 안 벗기고 덥석 한입 무는 바람에 놀란 문제가 사래가 들려 애먹은 일 말고는 큰일 없이 소풍을 마칠수 있었다
모두에게 공평히 나누어 주었던 바나나와 뭉그러진 케익을 맛본 친구들은 문제에게 고마워하면서도 부러워하는 모습을 본 수리는 왠지모를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며칠동안을 포식할만큼의 어른들이 놓고간 음식들도 다시 골고루 나누어 줄수 있었다
문제는 친구들에게 보여줄것을 다 보여 주지 못해서 아쉬었지만 수리를 비롯한 모든 친구들이 비록 식물원은 고사하고 동물원 조차도 다 보지 못했어도 친구들을 만난 이후 가장 행복한 얼굴을보고는 만족했다
집으로 걸어오는 도중에 문제의 또 다른 선물 하나는 수리의 걱정을 전적으로 해결해 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반 이상으로 덜어주는 것이었다
한학기동안 친구들과 일하며 모은 돈으로 친구들 때거리는 해결 못해도 형철이와 웅수는 다시 방학동안만 짱꾀 배달하면 걱정 없다는 말과 함께 친구들 6명 교무금은 어느정도 해결된다고 했다
아쉬워 하면서도 어깨를 으쓱거리며 친구들 전부는 어쩔수 없지 않냐고도 했다
그나마 얼굴이 밝아졌던 수리에게 다는 아니더라도 때거리가 해결된 친구들보다 방학 한달동안 또 다시 굶고 배고픔에 다른 친구들이 양아치 짓을 다시 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남아 있었다
오늘 하루 소풍 때문에 잊고 있었던 걱정이 다시 생각나자 수리는 얼굴이 어두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첫 소풍은 잊지못할 기억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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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요 며칠을 밤을 새다시피하며 온갖 생각을 다해봐도 뽀쪽한 방법이 나타나지 않았다
수리가 용용이 형을 만나기 전의 원래 성격은 단순하고 급했던 만큼 무엇이든 빠르게 판단했고 빠르게 행하였으나 형을 만난 후 운동을 같이하고 여러가지 크고 작은 일을 격으며 급한 성격과 성질을 죽이고 숙고해서 행동하는 버릇이 생겼다
특히 결정적으로 가끔 형을 따라 다니며 공동묘지에서 어떻게 표현하지 못할 분위기를 느껴가며 냉정하고 차분한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이지만 이번에는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수리 자신보다 친구들의 때거리 문제의 답을 찾을수가 없었다
그날도 수리는 만화방에서 서둘러 뒷정리를 하고 놀음방으로 들어가는 꾼들 심부름이나 하면서 공돈이나 만지자 하고 있었다
'수리야 ... 오늘 충영이가 안오고 ... 니가 온거냐?'
'네 형 ... 형 청량리에 일 갔어요!... 뭐 필요한거 있어요? ... 제가 준비할께요!'
'그래 ... 그럼 오늘은 학삐리들 판이니까 ... 너 가서 카드 좀 .... 넉넉히 사와라 ... 아 그리고 바둑판 안에 있지?'
'네 바둑판은 싱크대 있는 방 케비넷 안에 돌이랑 같이 있을겁니다! .... 바둑판은 왜...?'
'이따 보면 알아...자식아!'
경렬이 형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몹시 들떠 있었다
콧노래까지 부르는 경렬이형을 뒤로하고 터벅 터벅 발걸음을 옮기는 수리는 왠지 기운이 나지 않았다
'야 수리야 .... 가는 김에 화투도 몇 목 사오고 ... 규수네 쭝국집 ... 아 그건 내가 시킬께 ...'
'네 ... 알았어요!'
늦은 저녁 아무도 없는 만화방은 의외로 학교와는 다른 많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해주었다
더군다나 곰팡내 나는 책들 사이에는 푸른 형광등이 바보처럼 검벅 거리면 누구한테도 방해를 받지않고 무슨 생각이든 할수도 있었고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그곳에서 수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 남는 방법을 배우고 익힐수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도 수리를 애 늙은이를 만든 함바 집 할매 말처럼 조금 늦게 알아도 될 어른들의 일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수리에게는 오히려 늦은 밤 놀음하는 꾼들의 싸움에서 생존을 배우고 익히는 실습장이었던 것이다
탁
탁
어디선가 뭔가 두드리는 소리에 수리는 자신도 모르게 놀음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방에서는 한쪽 구석 테이블에서는 항상 그랬듯이 카드가 오가고 있었고 꽁지 돈을 틀쿼지고 굶주린 삵쾡이처럼 놀음판을 주시하는 전주부터 기도까지 그대로였다
다른 점이라면 경렬이 형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탁
탁
수리는 주변을 살피며 조용히 소리나는 방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싱크대 있는 방을 지나고 항상 자물쇠로 잠겨져 있던 방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고 소리는 그 방에서 나고 있었다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던 수리 눈이 크게 변했다
방안에는 수리가 생각한 것보다 사람이 많았지만 아무도 없는것 처럼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 외에는조용했으며 단지 담배연기만 가득차 있었다
수리는 그런 방 한 가운데 사람들 사이에 경렬이 형을 중심으로 양쪽에 두사람이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풍경이 생소했지만 놀음판과는 너무 다른 진지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뭔지 모르지만 바둑판은 싱크대 옆에 있던 얇은 접이식 판떼기가 아닌 누런 나무색의 네모난 통나무 였으며 바둑통과 검은 바둑알은 담배 가득한 방안에서도 반짝반짝 윤이 나 빛나고 있었다
딱
옆에서 듣는 바둑 돌 놓는 소리는 멀리서 듣는 나무 두드리는 소리가 아닌 사기가 부딛치는 청량한 소리로 들렸다
경렬이 형도 수리가 들어온지도 모르고 바둑판에 시선을 두고 움직일 수 없는 돌부처 마냥 그냥 손 안에든 뭔가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수리는 문득 예전에 경렬이 형이 자랑삼아 했던 말이 떠오르자 눈이 반짝이며 자신도 모르게 방 문을 도로 닫으며 소리쳤다
'찾았다!'
스물 다섯번째 마침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