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며시 옮겨와 피었습니다
한 겨울에 늙은 사꾸라가 피었습니다
이웃 나라도 아닌 이역만리 먼곳에서 피었습니다
여의도보다 더 진한 사꾸라 향이 납니다
촛불의 냉엄함에도 엄한 사꾸라가 피었습니다
광화문 앞 자리에 탱크가 있던 어느 날
머나먼 나성에도 검은 사꾸라는 피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지성에 올 곧은 무궁화대신
검은 사꾸라가 피었습니다
지하실 어둠과 두려움에 피를 말리는 그 시간
어둠 속 화려하게 만개한 사꾸라는 시간을 거슬러
추위도 녹여버린 촛불 한창인 세종로 한 가운데
검은 사꾸라가 슬며시 옮겨와 피었습니다
굴복하기 싫어 꺽여버린 못다 핀 무궁화 꽃 봉우리
절개없이 어둡고 화려한 늙고 검은 사꾸라
알지모르게 흐른 시간 속
흰 눈 위에 검고 어두운 꽃잎 뿌리는 지금
말 없이 꺽인 무궁화는 지하에서 울고 있습니다
흰 눈 맞은 이 겨울 무궁화 피운 촛불의 밝음으로
굴복보다 한평 반 택한 못다 핀 무궁화를
다시 피우지는 못 할지라도
검은 사꾸라는 이 땅에 피우지 말아야 합니다
그게 살아있는 우리들의 몫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