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하루를 찾아보아야 할것 같다.
가을이라고 찬바람에 코끝이 제법 시린 날이었다. 밤새 병원 벤취에서 쪽잠을 자고 회사에 출근하는 길에 핸드폰 속 간호사의 감정없는 기계음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날은 아무일 없는 것처럼 맑기까지 했지만 바람은 제법 불어대는것 같았다. 비봉에 있는 공기 맑고 경치 좋은 천주교 묘원 한쪽에 빨간 낙엽든 들길 따라 올라가 아버지 생전에 마시지 못하던 쓴 소주 한병을 애꿎게 묘에 붓고 돌아왔다.
묘를 쓰고 산길따라 내려오는 길이 슬픔보다는 떨어지는 낙엽이 이쁘다는 생각이 드는것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지만 슬픔보다 먼저 왠지 낮익지않은 풍경속에서 하루는 의미없이 가버렸고 모든 기억은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몇해가 지나고 집도 절도 없이 떠돌다가 속없이 누렇게 물든 들판을 보면서 아버지 생각이 났다. 한동안 꿈속에서 그렇게 보이던 아버지가 저녁 한상 드시고는 언제나처럼 아무런 말씀없이 가신 후 다시는 꿈속에서도 나타나질 않더니 뜬금없이 누런 들판 고개 숙인 벼를 보며 생각이 난것이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잘 살고 계실까? 살아 생전에 낙태 수술을 많이 해 벌 받으신거라고 자조적으로 하던 말이 귀를 스치는 이유도 있고 당신 살아생전 자식보다는 시장구석에서 좌판 편 노인네들, 미군부대 주변의 양공주들을 거의 주사비만 받고도 치료해주며 헌신하고 살았슴에도 죽음앞에서 늙고 초라해진 모습으로 지난 삶을 돌아보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느끼는 알지못할 미움보다는 말못할 애증이 더 큰 까닭일게다.
이북에서 혈혈단신으로 월남해 가마떼기 뒤집어 쓰고 징그럽게 고생만 하다가 늙으막에 하늘나라에 간다는 생각마저 없으면 당신 나름으로는 아마도 한심하고 허탈했을지도 모르겠고 아마 그래서 하늘 나라에서라도 당신이 원하는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알면서도 많은 욕심을 부린다. 멀리 갈 것 없이 내가 그랬다. 조금 더 나은 삶과 책임의식 때문에 '참는게 이기는거다' 라는 말에 길들여져 살아온 아버지에 이유도 없이 반항하고 대들며 아둥바둥하며 살았고 더 나아지는것이 없다는 것도 모르고 혼자 물적이든 정신적이든 가난한 삶이 되지 않으려 되지도 않는 욕심을 쉬지않고 부리다 이제서야 겨우 트럭 위에서, 해저문 농로길 위에서, 그림처럼 하나 하나 떨어지는 언덕 단풍나무를 보며 조그만 비밀 한가지를 가지게 된것 같다.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이었을까?하는 생각이 아직도 조금은 남아있지만 평생 고집스럽게 피붙이보다는 남에게 퍼주기만 하고 사시던 아버지는 마지막에 내게 그러셨다.
'큰애야! 미안하구 고맙구나'
아버지 이제야 깨달아요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더 이상 쓸쓸해 하지마요
이제 나와 같이가요
당신을 따라 갈래요
싸이 - 아버지 노랫말 중
당신의 사랑을 뺏겨 버렸다는 생각으로 보상받을 수 없는 시간을 보낸 내 마음을 아버지는 가슴으로 안고 계셨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것은 어쩌면 내 삶이 저 밑바닥으로 떨어져 도로를 떠도는 시간이 많아지고 하루 하루 힘들게 이어지는 찌든 생활 속에서 멍든 내 마음속에 누구에게인지 모를 그런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고개를 들어 필연이 되었기 때문인것도 같다.
하루해를 보내고 노을 든 들판을 지나며 주차장을 향할때, 횡한 주차장에 홀로 앉아 풀벌레 소리를 들을 때, 떨어지는 낙엽에 집생각에 눈물 삼키며 쓴 소주를 삼킬때 앞만보고 살아온 당신의 생 위에 슬며시 내 생의 그림자도 덧 씌워져 겹쳐져 간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그랬듯 나도 똑같이 아버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제 조금은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돌아보고 다시 돌아서 돌아보아도 콕 집어 알 수없는 생이지만 억울하지는 않을 일을 한 당신이 그랬던것 처럼 나도 좋은날을 기약하며 다시 찾아 보아야 하지 않을까? 설사 욕심 때문이었다 하더라도 그래야 공평하지 않을까? 똑같은 듯 다른 오가는 생의 길목에서 지혜로운 삶의 지혜도 필요하지만 조금은 여유롭게, 행복하지는 않아도 불행하지는 않게, 꽉 막힌 하늘에 떠 다니는 구름처럼 때때로 자유롭게 하루 하루를 찾아보아야 할것 같다.
오늘처럼 낙엽이 지는 날이면 아버지의 흰머리만큼이나 더도 덜도말고 꼭 그만큼 흰머리가 된 내 가슴속에 힘든 '오늘 하루를 무사하게 보내게 해달라고' 기도하듯 부탁을 드리며 아버지를 만난다. 왠지 낮설은 말이지만 그냥 입속에서 투정부리듯 부탁을 드린다. 입 밖으로 새어 나오지는 않는 말일지라도 여직까지의 삶이 어찌 되었든 내것이었으니까, 앞만보면서 달리고 살아왔으니까 이제 내일은 더 좋은 날을 만나게 될거라고 덕담을 나눠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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