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 그리운 소리를 들으며

잠들어 있는 감수성을 깨우는것 같다.

by 바보


여의도라는 회색의 도시에 들어와 살다보니 초록은 콧구멍만한 앞마당과 화분뿐이고 사방이 빌딩들만 빼곡하여 그렇잖아도 삭막한데 오가는 이 많아도 말이없는 적막의 강이 따로 없다. 조금 늦은 밤이되어 빌딩에 불이 들면 그 화려한 불빛 속에 혼자가 되어 느끼는 쓸쓸함은 밤하늘 고요한 한적함에 더욱 더 외로움을 느끼게되고 혹시라도 변죽 좋은 친구들을 만나기 전에는 사람 냄새를 느낄 수 없어 차츰 늙어가는 것을 느끼는 나는 시나브로 사람이 그리워지는 것도 같다. 낮에는 아무렇지 않게 오가며 스쳐 만나던 사람들 속에서 그저 형식적인 말외에는 관심도 없어서 무심하게 지나며 하루해를 보내면서 생활하지만 밤이되어 불켜진 섬이되면 많은 생각이 밤하늘 가슴속에 하나 둘 고개를 들고 그리움의 불을 지피며 잠들어 있는 감수성을 깨우는것 같다.

어쩌다 그마저도 사람이 없을때도 그렇지만 건물 내에 우연찮게 모두들 일찍 퇴근하여 사람이 없을때 건물 층계를 오르며 순찰을 돌때가 있다. 그 지루하고 긴 계단을 오르며 들리는 발자욱 소리와 사이사이 열려있는 조그만 창너머로 지나는 차량의 소음이 섞이면, 어쩌면 고요하지만 적막함에 지난 시간의 그리움은 걷는 발걸음처럼 차곡차곡 가슴에 쌓이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나름 치열하게 세상사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이라 아무리 바쁘고 무감각하게 살아도 자기가 하는 일에서 성취욕과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겠지만 철이 안든 나는 아직까지도 사람이 더 소중하고 그리워서 외로움을 더 타는 것 이리라 ... 늦은 밤 듬성듬성 불꺼진 복도를 터덜터덜 걸어서 퇴근하는 피곤한 젊음을 볼때도, 무엇이 못 미더운지 퇴근후 다시 사무실에 들렀다 나와서는 앞마당 한 구석에 서서 뽀얀 담배 연기를 밤하늘에 뿜어내는 중년을 볼때도 낮설지 않은 안타까움 속에 따스한 그리움도 마음속에 살금살금 생겨나는것을 보면 분명한것 같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예전보다 더 풍족해져서가 아니고 마 오히려 더 궁핍하고 내려놓은 자존심과 시시비비 따지지않고 닫힌 입으로 살고 있음에도 무슨 이유에선지 마음속이 편안해지고 조금은 넉넉해졌다는 것을 느낀다. 얼마전만해도 단돈 십만원에 아둥대며 포기할줄 모르고 살았는데 그러다 다리가 바보가 되어선지 머리도 바보가 되어 버려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책상 앞에서 종이와 펜과 커피와 친구하며 집중하고 며칠밤을 꼬박 세우며 일할때에는 컴퓨터 돌아가는 소리조차도 민감해하고 짜증이 나 누구도 신경쓰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을것 같은 조그만 소리에도 민감하고 불안해 했는데 지금은 발자욱 소리에도 굳게 다문 입에서 지나버린 시절의 잊고있던 그 노래들이 흥얼거려 지는걸보니 이것 역시 늙어가고 있는것 아니면 운전을 하며 치열하게 살고 지내던 몇년간 선물처럼 손을 놓지 않고 그리던 언덕 위 나무들과 좁은 농로길, 너른 주차장 위로 넘어가던 노을, 이름모를 풀벌레들 때문에 나도 모르게 한가득이던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진 까닭일게다. 그래서인지 그리 궁금해하고 이유와 원인을 알려고 하던 생각들이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고 기다리게 되는것 같고 그렇다. 그렇다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태해지고 게울러져서 그런것은 아닌것 같으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기도 하다.


살다보니 세상으로 나온지 불혹은 지나서 그런지 조그맣지만 크게 유혹하는 민감한 소리에 조금은 여유로와지고 넉넉해 졌는지도 모르겠지만 아직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할지도 모른다. 이순의 나이면 순리대로 듣는다 했는데 나는 아직도 늦되고 있어 이제야 불혹의 나이처럼 소리의 유혹을 벗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불꺼진 사무실에서 혼자 긴장하며 민감하게 느끼던 따각리던 소리가,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참으로 열심히 살며 뒤처지지 않으려고 앴던 그 소리가 이젠 하나의 그리움으로 변했고, 또 하나의 높고 지루한 계단을 오르며 들리는 발자욱 소리에도 역시 지난 그리움이 묻어 잠자고 있던 내 숨은 감수성을 깨우고 있으니 어느 쪽이던 조금은 더 사는 아니 지혜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연습이 필요한지도 모를일이다. 사람에게는 언제나 선택이 필요하다고 배웠고 읽었다. 그래서 사람은 외룬 존재인지도 모르겠지만 ...

지금은 아무리 감정에 치우치고 냉정이 무뎌져 손해가 날지라도 조금은 넉넉해져 편안한 지금의 마음에 충실해야 할것같다. 끝으로 정호승시인의 시 한편을 붙이며 그리움에 빠져본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않는 전화를 기다리지마라


<정호승시인 수선화에게>


2018-9-15 기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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