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냄비에 물을 퍼 집어넣고 라면도 함께 집어 넣은 우리 형제는 누가 먼저라고 할것도 없이 그냥 무서움도 잊은채 연탄불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라면이 다 되기를 아니 그냥 다익어서 어서 끓는 연기가 날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었지만 야속한 라면은 신기하게도 하나도 흐트러짐없이 그모양 그대로 우리를 보고 있어서 애꿎은 뚜껑만 열었다 닫었다를 반복하면서난생처음기도가 뭔지도 모르면서 무언의 기도를 드리고있었으리라
'성아 언제 먹으면 되는거야'
'응 이게 끓어서 연기가 나면 먹을수 있는거야'
'성 나 쌀 튀겨준다메 ... 배고파 죽겠는데'
'동생 먼저 해주고 니거 해줄께 며루치도 맛있게 궈 줄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우리 밥먹고나면 형이랑 이불깔고 레슬링할꺼니까 형말 잘들어야해 ... 그러니까 우리 기다리는동안 재밋는 놀이나 하자, 어때?'
'어떤 놀인데?'
'형이 먼저할테니까 따라해봐'
원숭이 똥구멍은 빨게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성아 바나나가 뭐야?'
'응 형도 잘 모르는데 먹는건가봐'
'맛있어?'
'형도 안먹어봐서 몰라... 그니까 계속하자'
'응'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성 근데 있잖아 바나니는 왜 길어'
'형도 왜 긴지 몰라 근데 길대'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 무궁화 이 강산에 역사 반만년 대대로 이어사는 우리 삼천만
....
어느새 막내는 바나나 꿈을 꾸며 잠들어 내 작은 품안에 꾸벅거리고 졸고있었고 둘째는 똘망한 눈만 꿈벅이면서 냄비를 보고 소리쳤던것 같습니다
'성 이거 연기나'
'와 다됬나보다 얼른 막내 깨우고 니 쌀도 튀겨줄께
.... 막내야 밥먹자 일어나봐 얼른'
뜨거운지도 모르고 냄비를 들어 바닥에 땅 바닥에 놓고 뚜겅을 열자 맛있는 라면 냄새가 막내의 잠도 깨운것 같았습니다
'성아 숟가락이 있어야 먹지'
'그래 형이 같다줄께'
'성 나도 이거 먹을래 배고파'
'쌀 튀겨줄께'
'싫어 이게 더 맛있을거 같아'
'그래 그럼 동생이랑 싸우지 않고 나눠먹기 약속해'
'응 약속'
냄비속 라면은 은은한 연탄불 위 찬물 속에서 불고 쫄아서 죽도 이런 죽이 없을만큼 세상에서 다신 볼수없는 넉넉하고 푹 퍼진 라면이 되었지만 뜨거운줄도 모르고 호호 불며 순식간에 먹어치운 동생들이 너무 이뻐 뿌듯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조금 아주 쬐금은 마음 한구석에 국수 한젓가락 남기지 않은 동생들이 밉기도 했던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사 말이지만 뭐가 맛있겠습니까만 배고픔에 우리들만 있다는 무서움에 무엇보다 맛있는 밥이고 정으로 먹는 라면이었던 같습니다
만약 이것이 정이라면 분명 정이 맞을겁니다
그래서 그 후에도 우리는 아니 동생들은 한동안 이 맛있는 라면을 먹을 수밖에 없었으니 미운정 고운정이 들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고말이지요
'배불러'
'응 나 이제 배불러 근데 성은 안먹어?'
'응 형은 배불러서 먹기싫어 이따 먹을거야...
둘째야 너도 배불러?'
'..... 난 아직 배고픈데'
'그래 그럼 메루치 궈줄까? 구면 꼬숩잖아
우리 구워갖고 별 찾기하면서 먹으면 되잖아'
쑥고개 여인숙 옆집 언덕에는 참 하늘에 별들도 많고 맑았던것 같습니다
별을보다 잠이든 막내의 얼굴에 굳은 라면죽을 닦아 낼 즈음이면 구운 메루치를 먹던 둘째도 어느 틈에 꿈나라에들고 소란스럽던 미군들과 누나들도 조용해 별들만 내 동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라면 한 숟가락 먹지 못해 뱃속에서는 앞마당 귀뚜라미와 같이 합창을 하지만 먹다 남은 짜디짠 메루치 덕분에 물이라도 실컷 먹을수있어 행복하게 잠들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꿈속에서나마 물배가 아닌 퉁퉁불은 라면이라도 실컷 먹을수 있는 행복한 꿈을꿀지도 모르기 때문이리라
가끔 아주 가끔 난 라면 죽을 끓여 먹어 보지만 운좋게 동생들이 남긴 죽을 먹을때 그 맛은 볼수가 없습니다
성장후 소원해진 동생들 만큼이나 세월의 때가 묻어 그러려니하면서도 오늘밤 또 미운정이라도 든 그때 그 라면이생각나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