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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준비물 - 아빠의 선물

길동이 쉭키한테 다 하라고 시켜 ...

by 바보


우리집은 언제부턴가 김치를 담그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아무 김치나 먹지도 않습니다

입맛이 무지하게 까다롭거든요

나만 그런게 아니라 나를 닮은 두 녀석은 당연하게 그렇다치더라도 결혼하기 전까지는 장인 장모님의 손맛에 길들여진 안사람까지도 맛있네 없네 그러다 어찌어찌하다보니 우리 집 입맛으로 바뀌어 버려

똑같아졌거든요

우리집 식구들 전부는 집사람이 담근 김치 깍두기 아니면 손도 대지않아 바깥이든 안이든 어디든지 당연하고 음식점 김치는 당연하게 거들떠 보지도 않았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은 수없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나마 입맛에 맞는 김치를 찾아 사.먹.습.니.다

아마도 계속 그럴것 같습니다

대문에 찌개가 첫 김치 찌개이고 위 그림은 다음에서 찾은 함경도식 김치입니다 ... 국수 생각 납니다 ... 아버지도요



'오늘 저녁 뭐해 먹지?'

'글쎄 뭐 먹으면 좋을까? 아까 낮에는 칼국수 해 먹었으니까 저녁은 쌀을 먹어야겠지 ...

뭐가 좋을까? 니들은 뭐 먹고 싶은거 있니?'

아빠! 오랜만에 아빠표 김치찌개해주면 안돼?

' ......... '

'야! 이게 미쳤나 무슨 김치찌개야 ... 그냥 밥먹어'

'어제 언니도 김치찌개 먹고 싶다고 해놓고선 무슨'

'내가 언제...'

'이것들이 ... 김치찌개는 무슨 ... 안돼!

계란말이 해줄테니까 아빠보고 마른김 궈 달라해서 달래장하고 김치싸서 그냥 먹어'

'.....'

'김치찌개하면 할아버지 생각난다하고 김치도 안 담근지 얼마고 김치찌개는 처다보지도 않던게 벌써 얼만데 새꼽맞게 십년넘게 안해먹던거를 왜 갑자기 해달라고 재랄이야?'


그랬습니다

신기하게도 우리집은 아버지와 고모가 가신후 정말 많은 변화가 생겼고 지금도 그런것들이 많습니다

가자미식해도 창란젖도 이북식 김치도 동치미도 밥상에서 사라졌고 결혼하고 20년 넘게 온가족이 모여서 김장해온날도 몇해를 넘기지 못하고 생태가 없어지고 오징어가 없어졌어도 집사람 손맛 그대로 김치맛은 그대로인데 예전 우리가 먹었던 김치맛을 느낄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 누구도 알수 없었고 그냥 중단된거지요


'아빠! ...요번 오월 연휴때 길동 오빠네 부모님께서 시골 오라한거 기억 하세요...'

'으잉 왠 존댓말?'

'....'

'그게 왜? 엄마도 허락하고 아빠도 오케이 했으니 같다오면되지 ... 펜션 간다메? 뭐가 걱정인데?'

'걱정이 아니라...'

'길동이 부모님도 보고 싶어 하신다니까 그냥 가서 너무 잘하려고도 나서지도 그렇다고 바보처럼 있지 말고 있는 그대로 하고 오면 되는거지 ... 먼저번에 한번 뵜다메 ... 인사만 잘해도 반은 따는건데 뭘'

'그게 아니라 ... 펜션가면 길동이 오빠네 식구들 다 모이고 거기는 딸이 없어서 길동 오빠 엄마가 음식 다 할텐데 ~~ 알다시피 아빠 딸은 음식은 고사하고 상추 한번 안 씻어봤으니 하는 말이지 ㅋㅋㅋ

완전 매미처럼 옆에 그냥 서서 있는거 보다 뭐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해서'

'... 원래 그런데 가면 남자들이 다 하는건데 무슨 걱정이야? 길동이 쉭키한테 다 하라고 시켜 ... 그리고 아빠보다 엄마한테 말해서 훈수 받아야지 아빠가 뭘 아는게 있니? 너도 알다시피 크고 작은 사고나 칠줄 알지 뭘'

'엄마한테 물어보고 벼락치기라도 뭐 한가지라도 배워가지고 가서 직접 해봐 .... 그래도 다 알겠지만

... 예전에 니 엄마 아빠 군대 갔을때 시골에 와서 할아버지께 라면도 끓여 드리고 점수도 따고 그랬어 ... 그땐 라면도 다 불어 터졌다지만ㅋㅋㅋ'

'니 엄만한텐 비밀'


한번 터지니까 빠르기가 엄청난것 같습니다

어렴풋이 남친이 있고 나이가 있으니 진솔하게 서로를 만나다가 양가 부모에게 자신들을 소개하고 알리더니 완전 번개불에 콩궈먹듯이 요것들(?)이 작전을 펼치고 있고 또 우리는 그 놈들 작전대로 넘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서 마음 한편으로는 사랑스럽기도하고 또 한편으론 화도 나는겁니다


'민정아빠! 얘 도대체 어떡하지? 나이 서른이 넘어 가지고 라면도 제대로 못 끓이는데 도대체 가서 부모 욕이나 먹이고 오는거 아닌지 모르겠네 ..정말

내가 진즉부터 하나하나 배우고 니들이 해먹어보고 연습하라고 했지 ... 으이고 큰거나 작은거나 ㅉㅉ'

'왜 나는 또 갑자기 껴 넣어?난 결혼 안 할거니까 나한테 뭐라하지말고 쟤한테나 뭐라 하세용 ㅋㅋ'

'몰라 기집애들아! 니들이 알아서해'

'....'

'아빠! 이번에 펜션에 가서 고기 궈먹고 논다니까 아침에 김치찌개하고 계란찜만해도 김하고 한끼는 될것 같은데 ... 아빠 ~~ 아빠가 김치찌개 하는 방법만 말해주면 안돼?엄마가 아빠한테 물어 배우래 ... 방법만'

'....'


잠시 아버지가 옛날 주고 가신 가지찜처럼 또 선물을 주실려고 그러나 생각했지만 그것도 잠시

완전 여우한테 홀린것이 맞는것 같습니다

아니 홀렸던것 같습니다

우리집 큰여우 작은 두여우 합이 셋에게 말입니다

아니 사실 나나 큰여우도 말은 못해도 속으로는 걱정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빠 선물이니까 잘들어보고 직접 해봐야 해'

'응'

'뭐든 듣기만 해서는 알수없어 음식도 그런거 같아 엄마가 훨씬 더 잘하겠지만 ... 아빠가 말로 할테니 하는거는 직접 해보는거야 ...

시간 없으니까 전체적으로 말할께 적을 필요도없어 잘듣기만 해 ... 네가 아무리 잘해도 길동이 부모님은 이미 알고도 모르실꺼야 침착하게만 해'

'아빠 나도 같이 할래'

'언니는 다음에 해! 어떻게 둘이 한꺼번에 해'

'야! 나도 같이 배울거야 까불지마'

'.....'


'아빠 김치찌개가 개운하고 시원했던 이유는 너무 간단해 할아버지가 아빠한테 끓여주던 방식 그대로 아빠나 엄마가 똑같이 했고 할아버지도 니들도 좋아했으니까 일단 니들도 해봐'

'아빠나 엄마 김치찌개맛이 다른 이유는 우리집 김치가 할아버지 고향인 함경도식 김치였기 때문에 달랐던거야 ... 우리집 김치는 특징이 뭐였지?'

'김치국물이 많았어'

'맞어 그래서 국수도 무지하게 말아먹었지 ... 또'

'맞다! 오징어 오징어가 있었다'

'그래 할아버지 고향이 어촌에 가깝고 추운데라 생태나 오징어가 들어가 삭어서 국물맛이 유달리 시원했던거야'

'호박김치도 넣어서 끓인적도 있었는데?'

'늙은 호박으로 담근 호박김치는 예산 이모가 담궈 보내준거라 이북식은 아니지만 김치찌개에는 대박 완전 대박 맛있던거고 ... 이따 호박김치 대신 묵은 깍두기를 집어넣고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 맛을 기대해보자 ...'

'무튼 이북식 김치로 찌개를 끓이니까 칼칼하고 시원하지만 맵지않아 어려서부터 니들도 먹은거야

지금은 엄마가 담근 김치가 없으니 그냥 해보고 좀 맵고 술안주 삼을수있는 감자를 넣은 할아버지표 김치생선졸임할때 매콤한 맛을 나중에 알려줄테니 지금은 맛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여기에 집중해 ... 집중'


우리집 김치찌개는 아까말한대로 김치국물이 많은 김치라 김치와 김치국물외에는 어떤것도 넣지 않는다는거는것만 생각해...

* 먼저 김치를 큼직 큼직하게 삼등분으로만 썰어

* 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썰어놓은 김치를 넣고 볶음김치 하듯이 김치를 살짝 볶아

(이게 남의집과 조금 다른점이지만 믿어도 돼)

* 냄비에 볶은 김치를 넣고 김치 국물을 김치가 살짝 담기지않을 정도로 부어 넣어

* 물을 낙낙할 정도로 붓고 쌈장과 다시다 있다면 조금 아주 조금 숟가락 반 정도를 넣고 풀어

* 그냥 끓이면서 간을보면서 물을 보충하고 식혀

* 다시 약불로 끓이면 끝난거야


'웅와! 웅와! 대박 완전 대박 맛있어 ㅋㅋ'

'간은 맛네...'

'야! 뭐가 맛있다고 그래 그냥 그런데 뭘'

'김치가 좀 너무 볶아 그렇긴한데 처음인데 뭐 이정도면 가서 해도 좋은소리는 못들어도 못했다고 하지는 않겠다 ... 근데 너 밥은 할줄 아니?'

'아니 햇반 사갈거야 ㅋㅋ'

'아니 나이 서른 넘은게 아직 전기 밥솥 밥도 못해? 으이고 자랑이다 자랑 ㅉㅉ'

'언니 우리 김치찌개 있으니까 옛날처럼 빠다에 밥 비벼서 같이 먹을래'

'오킹 오킹'

'아! 나 이번에 갈때 빠다도 가지고 가서 오빠네 식구들하고도 같이 비벼 먹을까? 그럼 되겠네'

'잠깐만~~ 잠깐만~~~ 요번엔 내 차례 계란찜 할 때랍니당 ㅋㅋㅋ 기다리세용'

'계란찜은 다음에 해 ... 언제 밥 먹을려고 그래'

'잠깐이면 되잖아 ... 기왕 하는거 이것마저 배워 써먹어야징 ~~ 엄마는 내편이야 적이야?'

'기집애들 말하는 뽄새 하고는'


'원래 말 그대로 찜은 스팀이나 증기로 찌는거지만 요새는 정말 인터넷에도 따라하기 편한 레시피가 많아 그중 전자렌지를 이용한 레시피랑 비슷하게 만들면 되는데 다만 그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하면 부드럽지 않은 계란찜이 되는 단점이 있어 그래서 아빤 아빠식대로 솥에 물넣고 찌듯이 만들은거야

잘들어 ... 집중하고 뭐든 직접해 보는게 팁이야'

* 계란 다섯개를 그릇에 넣고 잘 풀어

* 잘 풀린 그릇에 우유 물컵 한컵정도 듬뿍 넣고 거기에 물컵 반잔 조금 넘을 정도로 더해 넣어

* 소금 조금 아주 코딱지 만큼하고 설탕 반수푼을 넣고 될수록 많이 잘 섞어서 전자렌지에 넣고 돌려

* 전자렌지가 돌아갈 시간은 오분으로 맟췄다면 그 중간쯤 그릇을 확인해서 어느정도 되었는지 젓가락 찔러 확인하고 수분이 표면에 남았을때 꺼내면 돼


'주의점은 문을 열면 부풀어 오르던 계란이 다시 내려 앉으며 부드러워지지 않으니 자주열면 안돼 ... 자 먹어봐 어때?'

'아빠 아빠 굿 굿이야 ... 완전 부드러워'

아빠가 찜기에 쪄준것 보다는 아닌데 부드러워 그냥 빠다 말고 여기에 밥 비벼 먹어도 될것같은데 ... 순두부 같아'

'어때 내솜씨 우하하하'

'그래 수고했다 이놈들아 ...

학생때는 그렇게 학교 준비물 해달라고 하더니 이젠 결혼할 나이가 되서도 아빠가 준비물 챙기게 하니까 좋니? 좋아? ....

그건 그렇고 ... 이게 아빠가 니들 결혼 선물 미리 준거다 .. 빨리 밥먹자 배고프다'

'아빤 이걸로 결혼 선물 퉁칠라고? 어림없네용 ㅋ'

'이 놈들이 ... '

'난 그래도 빠다에 비벼 먹어야지'

'난 아버님 생각나서 그런지 옛날 생각나네'


세월이 흐른 만큼 준비물이 많이 바뀐것 같습니다

아마도 집사람이 앞으로 더 힘들겠지요

저도 당분간은 김치찌개와 계란찜을 수없이 먹어야 될것 같기도 하지만 아마 그건 두녀석에게만이 아니라 내게도 선물이겠지요

아직도 바지락 가지찜 뿐 아니라 이번 겨울에는 어쩌면 김장 배추를 다듬어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우리 집사람처럼 우리집보다는 남자집 음식에 길들여지고 김장맛도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그게 제일 큰 준비물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것은 어쩔수 없나 봅니다

무튼 이래저리 묘한 밤입니다




그리움때문에 멀어지고 외면했던 것들이 내가 받았던 선물 그대로 선물로 준비하는것 같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직도 준비해야할 준비물이 아직 시작도 못한것 같습니다


내 딸들이 준비한 김치찌개 정말 짱이었습니다

아버지도 계셨다면 아마 소주한잔 하셨을지도요



2020-5-6 슬픈데 좋은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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