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수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큰소리 Feb 14. 2023

수리  (1-4)

범생이의 이중생활


작심하고 어두울때 한번 보십시요                                    새로운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4.


효자동에는 신기하게도 골목과 한옥이 묘하게 어울려 있고 유난히 학교들이 많았

아침 등교때나 학교가 파할때 쯤이면 학생들이 어디서 밀려 나오는지 길거리가 온통 검은 교복만 보일 정도로 온통 학생들 뿐이었다

가끔은 경찰들이 도로를 막아서며 검은색 차들이 청와대 옆길을 탱크처럼  휩쓸고 다니기는 했지만 학교가 많은 동네의  특징인 주전부리 음식점들이 많았고 학생들이 붐비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 그때만 피하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관심있게 보거나 참견하는 사람이 없었다


바로 앞에는 경봉고등학교가 있어 저녁 시간과 도서관이 문 닫는 시간을 피해 식당이나 만화방을 다니는게 한결 수월했고 친구들과 마주치기 싫어서 죄 진것도 없으면서 피해서 다녀야만 했다

충영이 형이 학교 갈 시간이면 거의 비슷하게 출근 준비를 해야했다

말이 만화가게지 동네 양아치들 소굴이라 하릴없이 자리를 지키기만 해도 주머니 속에 동전 몇닢을 받아 나올수 있었지만 실질적 수입은 심부름값이 몇곱절 많아 질색 팔색하는 충영이 형 몰래 들어가 심부름을 하기에는 더 없는 좋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공부와 운동만 하라는 말을 믿지 못했지만 진짜로 형은 가끔씩 밤샘을 하고 들어오면 파김치가 되어 하루를 꼬박 이불 덮어쓰고 잠만 자면서도 단 한번도 월사금이 밀리지않게 돈을 주었고 용돈도 주었다

진짜였다

왠지 모를 이유가 있겠지만 가만히 앉아서 신세를 질 수없어 택한 방법이 푼돈이라도 모아서 식대라도 부담을 하겠다는 생각이기도 했지만 실제론 형처럼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지켜야할 힘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만화가게 도착한 시간은 여섯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설거지를 하려고 소매를 걷어 올리려는데 아무도 없어야 할 복도 끝에서 말소리가 두런 두런 거리며 상자를  도끼다시 바닥에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수리의 몸이 먼저 모퉁이를 돌아 피하고 있었다

'오늘 카드 친다는 소리 못들었는데'

머리칼이 곤두서고 소름이 쫙 끼치며 긴장감에 두팔이 팽팽하게 굳기 시작했다

노가다 공사판에서 야방을 서며 도독놈을 처음 만났을때 그랬고 동네 양아치들한테 월사금 털리며 직싸게 맞을때 꼭 이 느낌이었다

만화책 선반 뒤에 몸을 숨기고 있어야하나 아니면 몰래 들어가봐야 하나 망설여질때 다시 상자 끄는 소리가 들렸다

어짜피 만화방에 있는 양아치 새끼들이면 뭔가 쎄비러 온걸테니까 쫒아 버리면 되겠다는 생각에 몸을 바짝 낮추고 조심스럽게 소리난 곳을 향해 한 발짜국씩 다가갔다

수리는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한 노름방 쪽을 노려 보았다

분명 누군가가 커다란 상자를 질질 끌며 옮기는 소리가 맞았다

수리는 그들이 왜 아무도 없는 건달들 놀이터를 침범해 뭔가를 가져가려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맞아 죽던가 병신이 되고 싶지 않았다면 말이다

수리는 그 도둑놈들 얼굴을 볼 수 있을때까지 살살 기어갔다

두명이었다


빌어먹을 발끝에 뭔가 걸리는듯 싶었다

'딸그락'

소리는 생각보다 요란하게 났다

빌어먹을 도둑놈들은 수리쪽을 돌아보며 각목을 치켜들고 쫒아나왔다

제기랄

그사이 수리 손에는 볼펜을 움켜 쥐고 있었지만 오금이 저려 직일수가 없음을 느끼면서도 이미 옆으로 몸을 굴리고 있었다

 먼저 앞으로 달려오는 놈에게 옆의 유리창을 깨버려 손에 잡히는대로 유리 조각을 던져 버렸다

동시에 운좋게도 날아간 유리창 조각들이 얼굴에 뿌려져 멈칫하는 모습이 보였다

제기랄

손바닥이 아린것으로 봐 내 손도 장난이 아닐거란 생각도 잠시 각구목이 잠시 보이는가 싶어 볼펜 든 손을 무의식적으로 휘둘렀다

효과가 있었는지 손에 뭔가가 묵직하게 걸리는 것 같았지만 거기까지 였다


'하! 요 잔잔바리가 꽤 독종이네'

'....'

'야! 이 새끼야 정신 차려 ... 정신 차려봐 ...

그래도 수린지 참샌지 이새끼 아니었으면 너나 내나 아무도 모르게 언땅에 묻혔거나 어디 한곳이 병신되어 있을지 모를뻔 했다 ... 충영이 새끼는 왜 안오는거야! 씨발 ....  사람 보낸지 언젠데'

온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깨진 머리에서는 피가 흘러 내리고 있었다

수리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가누기 어려워 옆으로 드러눕고 말았다

차가운 바닥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충영이 형이 와도 반은 죽은 목숨인데 어짜피 지금 일어나도 깨진 대가리가 안아플것도 아니고 죽지는 않았다는 생각에 그냥 눈을 감고 있기로 했다


학교는 걸어서 십분거리였지만 충영이 형은 거의 한시간만에 도착했다

학교에서 조퇴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분명했다

도망친 도둑놈들은 사직공원 쪽 건달들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그중 한명이 남산공전 모표를 떨구고 가는 바람에 추적이 가능했다고 한다


형은 드러누워 있는 수리를 향해 고함부터 질러댔다

'이 바보 얼간이 쪼다같은 새끼야 안 일어나!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무슨일이 있으면 절대 나서지 말고 내게 연락부터 하라고 했어 안했어'

'....'

수리가 입도 벙긋할 틈도 없이 사각턱이 눈앞에 있고 얼굴에 침이 튀었다

'줘 터지지나 말던가 아주 개판을 쳐놨네

겁이 없는거냐? 무식한거냐? ...

어휴 씨발 잘했다 잘했어'

수리는 잠시 다시 눈을 뜨고 설명할 했다

그러나 형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어이! 용용이 뭐 크게 다친거 아니니까 ...

설레발 그만치고 오늘일 우리가 알아서 덮을테니까 저새끼 잘 치료나 해주고 잘 키워봐라 ... 근성이 좋네'


머리에 난 상처를 대충 치료받고 다시 단칸방 자취집으로 돌아왔는데도 좀처럼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수리는 좀전의 충격에서 벗어나려 애를 썻지만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뭐지?내가 뭘 잘못한거지?

고통과 흥분 때문에 더이상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 빌어먹을 두통만 딱다구리처럼 쪼아대고 있었다

''

'제발 입 다물고 있어! 이놈아 ...

나중에 생각 끝내고 이야기 !'


'수리야 오늘 저녁에 형하고 같이 갈데가 있으니까 신발 단단히 신고 따라와라'

''


왠지 음침해 보이는 건물도 건물이지만 한 밤중의 지하실은 생각보다 훨씬 어둡고 추웠다

전등불 하나는 왜 검벅 거리는지 눈이 아플지경 이었지만 야릇한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뒤 섞인 것처럼 구루마를 차례로 세워 놓았는데도 얽혀있는 것처럼 정신이 없었다

수리는 지하실 복도와 아까징끼 같은 소독약 냄새가 주는 무거운 분위기에 치여 말 한마디를 붙이기 어려웠다

다른 사람들은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굳이 수리만 데리고 와서는 말없이 서류를 확인하는 사각턱이 이상했지만 어쩔 방법이 없었다


'잘들어 우리는 지금부터 이분들을 모시고 망우리 공동묘지로  갈거야!'

'이분들? 공동묘지? 이밤에 ....

내가 사고쳐서 맛이 갔나? 인부들은 밖에 있는데 왜 종이 쪼가리를 흔들지?'

으로만 묻고 있었다

'모든 허가 절차는 확인 해뒀고 밖에 인부 아저씨들 따라서 하라는데로 하기만 하면되는거야!'

'이게 내가 돈버는 이니까 .... 잘 보고 배워!'

'망우리는 왜요?'

'지말고 그냥 따라와!'

'.....'


묘지는 비탈길을 한참 타고 올라가야만 했다

헤쳐진 구덩이 주변에는 술냄새 물씬 풍기는 인부 두명이 애꿎은 담배만 축내고 있었는데

역시나 말이 없었다

주변에는 무너진 비석이며 깨진 화분과 상석들이 훼손된 무덤들 사이 반짝이고 있었는데 신기한것은 무섭다는 생각보다는 공동묘지 밤 하늘에 피어 오르는 초록색 담배불이 너무 아름답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었다

도깨비 불이 끊임없이 도처에서 피어 오르는 사이 통행금지 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일을 마무리하고 소주 한모금을 들이킬수 있었다


'수리야!

난 원주 고아원에서 자랐고 서울로 입양온 집에서 니 나이때 도망쳐 나와 15살부터 이일을 하면서 공부하고 혼자 운동하며 지금까지 아직도 학교에 다닌단다

이유없이 두들겨 맞는게 너무 무서웠거든

다행히도 교수님을 만나 잘 봐주시고 어떻게든 공부해서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한다고 검정고시를 치루게 해주시며  챙겨 주셔서 지금까지 공부할 수 있었던거란다 ...

웃기지? ....'

잠시 말을 멈추고 바라보는 눈 속에는 날카로운 반짝임은 어디가고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이 들어가 빛나고 있었다

'만화가게는 이거 하기전에 알게된 건달들이 소개해줘 집이 된거고 그래서 학교같은 대외적으로 돈 버는곳 이라는 명분도 필요해서 하는거고 ...

널 보는 순간 날보는것 같았어 ...

나도 너처럼 정말 잠잘데가 없었거든 ... '


한겨울 한밤중 망우리 공동묘지는 무서운게 아니라

신기할 정도로 따듯하고 빛나는 곳이었다

'무섭냐?'

'... 저는 그냥 좋은데요'

'미친새끼! ...

앞으로 몰래 가지말고 ... 노름방은 안되지만

저녁시간만 만화방에서는 심부름하면서 공부해라

공부는 반에서 10등안에 무조건 들어야하고 못하면 들을때까지 만화방은 금지다!

학교에 가서나 친구들에게는 언제나 학생신분을 벗어나지말고 학생 신분이 벗어난 불량학생이란 소리를 들어도 만화방 금지다'

멀리서 인부 오야지가 먼저가도 되냐고 물으며 막소주 댓병을 내려놓고 있었다

잠시후 멀리 묘지 나무들 사이로 사이렌과 초록 경광등이 돌아가는것이 보였다

이번에도 이뻤다


'건달 아니고 학생이지만 술담배도 배워라!

사람 죽이는거 빼고 다 할줄 알아야 우리같은 인생들은 살아남을수 있으니까 ....

동안 운동하고 체력을 기르며 맞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 줬는데도 지난번처럼 몸이 반응하지 못하고 허우적댄걸보면 실전 같은 연습을 해서 몸이 반응할 수 있을때까지 니가 돈을 벌든 삥을 뜯든 뭐든 해서   니가 지킬수 있도록 싸움질을 배우든 운동을 배우든 해라 ...

구구절절이 말했지만 앞으로는 이런일 없을거다'


무덤가에 피어오르는 도깨비불은 비단 담뱃불만이 아니었다

나중에 안일었지만 들짐승들에 훼손든 무덤들 사이에서 피어 오르는 인이거나 반디불이가 바로 도깨비불이라고 했다

초록색 별 꽃같은 도깨비불은 뭐든 이쁘기만 했다


****


'이번 문교부 장관배 글짓기 대회 예선에는 너희들이 추천한대로 이소리와 이문제가 우리반 대표로 나간다!

종례 끝나고 교무실로 오도록  ... 반장'

'차렷! 경례!'

'감사합니다'



                                           네번째 그림 마침표






















매거진의 이전글 수리 (1-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