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가치를 추구하는 삶
생전 처음으로 빗물받이 청소차와 청소하는 분들을 봤습니다. 도로변의 빗물 빠지는 철제 배수로 덮개를 들어내고 한 사람이 물펌프로 물을 쏟아내면 다른 한 사람이 흡입기로 흙과 오물을 다시 빨아들이는 것을 반복하시더군요. 생각해 보면 이런 청소행위가 없다면 계속 오물이 쌓여서 어느 순간에는 빗물이 막히며 물이 역류할 텐데 왜 이걸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어쩌면 그동안 지하철 출퇴근 20년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을 지불하고 돈을 받는 것으로는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고 나발 라비칸(Naval Ravikant)은 말한 바 있습니다. 이건 팩트죠. 월급으로만 부자가 된다는 것, 또는 아르바이트만으로 부자가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이나 온라인 강의, 유튜브, 영화, 소프트웨어 등을 만들고 그걸 무한 복제해 판매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을 만드는 것이겠죠. 이런 걸 패시브 인컴(Passive Income)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듯, 지나치게 수입의 증가에만 신경을 쓰면 결국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나의 10시간의 노력이 궁극적으로 1000만 원의 수입으로 돌아올 것이 보이는 상황이라면 누가 그 1시간을 여유롭게 쓰거나 취미에 쓸 수 있을까요? 돈을 버는 활동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은 돈이라는 목표를 추구하지 않기에 무가치한 활동이 되어버립니다. 행복, 사랑, 즐거움, 공감, 이해, 배려, 등의 모든 것은 가치가 확 떨어져 버리는 거죠.
사람은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킨다면 돈을 더 벌기 위한 노력을 멈출 것이라고 1930년대에 케인즈는 예측했습니다. 일정 단계의 수입이 생기면 삶을 더 즐기는 것에 집중할 것이라고 본 거죠. 하지만 우리는 그가 틀렸다는 것을 압니다. 사람들은 돈을 벌면 벌수록 더 벌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서구권의 사람들이 개발도상국의 사람들보다 휴가가 더 적습니다. 물질적인 욕구는 무제한적입니다.
결국 자유를 찾아 월급쟁이에서 탈피하였더라도 내 시간을 오직 돈을 버는 것에만 투자하게 되는 악순환은 계속될 겁니다. 시점을 완전히 바꾸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런데 돌이켜 보면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100만 원을 더 벌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막내딸이 나를 그 작은 팔로 꼭 끌어안아줄 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내 글을 읽고 공감을 해주는 사람을 보며 행복했습니다. 내가 존경하는 형님이 수고 많았다고 말해줄 때가 행복했습니다. 어? 모두 사람과의 관계가 들어가네요?
There is no value in life except what you choose to place upon it and no happiness in any place except what you bring to it yourself. — Henry David Thoreau
헨리 소로의 명언입니다. 씹어볼수록 더 깊은 맛이 납니다. 인생의 가치는 내가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결정되고, 행복은 내가 스스로에게 가져와야만 느낄 수 있다는 것이죠. 만약 돈에 가치를 둔다면 최대치가 무한하기에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10만 원을 벌면 100만 원을 벌고 싶고, 1000만 원을 벌면 1억이 벌고 싶어 질 것이니 당연하죠.
돈을 버는 것은 절대로 나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돈을 최고의 목표로 생각하는 관점은 스스로를 무가치하게 만들 뿐입니다. 내가 어디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어쩌면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의 시간을 타인에게 내어주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토록 소중한 시간인데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나를 위함이 아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시간을 사용하는 사람들 말이죠.
이런 사람들이 있어야 막힌 혈관을 뚫고 피가 돌아가는 거 아닐까요? 이런 사람들이 빗물받이를 청소해 주어 자동차가 빗길에도 원활하게 운행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저도 글을 통해 사람들이 살아갈 때 한번 더 생각하고 한번 더 위대한 사람이 되고자 시도할 수 있게 만들길 원합니다. 세상은 그런 위대한 사람들이 더 필요합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